그저 습관처럼 일기를 써왔다.
특별히 정리하려는 마음도, 무언가를 남겨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우연히 노트에 몇 글자 끄적이면서 편안했던 기분이
매일 저녁 나를 바카라상 앞에 앉게 했다.
그냥 쓰고 있었다.
때로는 속상한 마음을
때로는 그리운 마음을
때로는 야속한 마음을
때로는 미안한 마음을
입 밖으로는 나오지 못하는 말들이
손끝에서는 글로 잘 나왔다.
어느 날, 그동안 적어둔 일기장을 다시 읽어봤다.
처음엔 별 생각 없이 넘기다가 몇 장 지나지 않아 멈췄다.
내가 쓴 문장들인데 어딘가 조금씩 다르게 느껴졌다.
말투가 다르고, 감정이 다르고, 같은 일을 두고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적혀 있었다.
그걸 한참 보고 있었다.
그 안에는 마흔 중반의 내가 있었고, 청소년 시절의 나도 있었다.
둘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같은 문장 안에 함께 있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피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가끔은 같은 자리에 멈춰 있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그저 습관처럼 일기를 쓴다고 여겼지만,
늘 함께하던 그 아이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 쓰고 있다고 여겼지만, 그건 혼자 쓰는 게 아니었다는 걸.
서로가 보내는 메시지가 있고
그에 대답하는 반응도 있다.
그 세계가 이토록 견고할 줄은 몰랐다.
때로는 회피했고
때로는 야단쳤고
때로는 눈물 흘리며 직면했다.
때로는 기쁜 가슴으로 설렜고
때로는 묵직한 바카라임감에 단호했다.
그렇게 함께 이 시간까지 함께 했다.
나는 계속 쓰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여기 이곳은 그 일부를 남겨 두는 공간으로 만들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