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덮은 먼지를 치워 내는 중

by석은별

오랫동안 꿈속에서의 내 역할은 물속에서 사람들을 건져 올리는 구조자였다.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구하지 못해 가슴 아파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내가 구하기도 전에 이미 탈출해 있기도 했다.


꿈분석을 배우고 나서는 나에 대한 탐색이 정교해지며, 내가 자처한 무의식적 역할에 대해 거부와 타협, 수용의 과정을 거쳤다.


나는 꿈에서마저 구조자 역할을 하는구나 싶을 때면 내 삶에서 나를 도와주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원망을 마주했다. 나는 그들처럼 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나의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지켰다.

반대로 내 구조가 필요 없이도 스스로 탈출한 사람들을 볼 때는 묘한 좌절감과 박탈감에 혼란스럽기도 했다.

마치 내가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두려움.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이후에는 그렇게 구조해 낸 여러 상태의 사람들이 흩어진 나 자신의 일부였음을 발견하게 됐다.

그제야 나는 구조자에서 구조당한 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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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올해 들어 꿈에서 나타나는 물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의 나는 늘 물속에서 누군가를 구조하는 역할이었다면, 최근의 나는 물이 나를 구조하게 두고 있었다.

바닷가 절벽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나는 뛰어내릴 용기조차 없다.

사람들은 뛰어내려서라도 밀려오는 바닷물을 피하는데 나는 그저 밀려오는 물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두렵지만 익숙하다고 해야 맞겠다.

자포자기하거나 모든 걸 내려놓는다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밀려든 물속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진다.


현실에서는 수영을 전혀 못하는 내가 꿈에서는 물고기만큼 자유롭다.

그렇게 해안가로 데려다 놓는 바닷물.

파도라고 표현하기에는 그 질감이 부드럽다.

그저 거대한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온전히 착지할 수 있다는 게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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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쌓아 올린 꿈의 흔적들은 참 묘한 능력을 품고 있다.

꿈을 꾸고 바로 탐색했던 의미와 시간이 흘러 맥락이 생긴 후 다시 바라보는 의미가 달라진다.


어떤 꿈은 이후의 삶을 미리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꿈은 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이해되기도 한다.

그렇게 쌓인 흔적들 중에는 먼지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꿈들도 있다.

도무지 왜 그런 내용이 나왔는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꿈들.


그럴 때면 분석가는 분석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했다.

기록한 모든 것을 다 해석하려 들면 오히려 꿈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고.

그 말 덕분에 집착은 삐친 듯 물러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들여다보면 먼지 쌓인 꿈이 품고 있던 의미가 어느 날 선명하게 다가오곤 했다.

그래서 나는 꿈의 흔적들이 묘한 능력을 품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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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꿈을 꾼 이후 사소한 변화부터 여러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다시 온라인카지노를 찾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 힘으로 끝까지 써내 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전 생애를 분석가와 충분히 나누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초등학교 4~6학년 시절은 통째로 비어 있는 시간이었다.


아주 작은 조각 몇 개만 선명할 뿐 그 시절이 통으로 날아가 있었다.

애써 다루지 않으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세월의 힘을 견딘 분석가였기에 기다려 준 게 아닌가 싶다.

대신 이런 말을 남기셨다.


“스스로 볼 힘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떠오를 테니 그때는 피하지 말고 보게나.
우리에게는 누구나 치유의 힘이 있으니 별일 없을 걸세.”


새로 쓰기 시작한 글에 반응이 바로 왔다.

숨어야만 했던 그 시절의 나를 마주한 이야기를 남편이 읽더니
“아이고 짠해라. 그래서 그랬구나.” 하며 안아준다.

묘하게 시기와 질투의 감정으로 나와 겨루던 남편이었는데 이제는 상처의 아군이 된 듯 끌어안아 준다.

꽁꽁 숨는 데 능했던 초등학교 4학년의 내가 이제 나타난 것을 반가워해 주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자유로워도 된다는 그 말에 갑자기 모든 기억이 다 열려버렸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기억의 쓰나미가 밀려오는 건 두 번째다.

그런데 이미 한 번 연습했기 때문일까.

그때 꿈에서 밀려오던 바닷물을 맞이하듯 이제는 그 기억들도 담담히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흔적을 덮고 있던 먼지들이 결국에는 훌훌 날아가는 시기가 오는구나.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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