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옛날의 '나'들이 떠올랐다

by석은별

어버이날이면 학교에서
‘엄마, 아빠 낳아주고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카네이션을 만드는 게 필수 코스였다.

‘어버이 은혜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문구가 차라리 조금 더 나았다.


나의 카네이션에는 ‘엄마, 아빠’ 대신 ‘고모, 고모부’라고 써야 했고, ‘낳아주고’는 생략한 채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썼다.


국민학교 시절, 아빠가 돌아가시고 고모네 집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고모 부부는 나의 법적 후견인이자 보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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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아주 어렸을 적, 어린이집에서 ‘엄마, 아빠 낳아주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쇄된 종이에 색칠한 카네이션을 갖고 와서 나와 남편에게 달아주던 날이 떠오른다.

출근하는 남편은 처음 받은 카네이션을 옷에 달고 나섰다.

다 인쇄된 종이지만 그 위에 싸인펜으로 알록달록하게 한 글자씩 따라 쓴 그 정성 자체가 감동이라 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옷에 붙이고 사진을 찍은 후 떼어 놓았다.


어쩐지 어색하다.

낯설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그리고 다짐했다.

아이들이 크는 동안 어버이날에 ‘엄마, 아빠’를 꼭 적을 수 있도록 살아야겠구나.
죽지 말아야겠구나.


사소한 그 다짐으로 큰아이는 성인이 됐고, 둘째도 고등학생이 됐다.

그간 아이들이 챙겨 준 어버이날의 소소한 흔적들을 내심 부러워하는 내가 있다.


그건 학창 시절, 어버이날이라고 편지를 쓰거나 카네이션 만들기를 하면서 쭈뼛쭈뼛 눈치 보고 움츠러들어 있던 나다.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교실에 켜진 환한 불빛이 내 자리만 비껴간 것처럼 느껴진다.

그 어둠 속에서 ‘이런 걸 왜 학교에서 만들라고 해서…’ 입 밖으로 투덜대지도 못하고,

‘고모, 고모부’라는 글자를 누가 볼까 봐 왼손으로 가리고 오른손은 분주한 척하던 나.


고등학교 때는 가정의 달이라고 ‘가족’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야 했는데, 마음이 넓지 못했던 나는 그 ‘가족’이라는 글자가 아파서 결석하기도 했다.

지금 떠올리면 마음 그릇 큰 아이처럼 고모 내외를 떠올리며 적어도 됐을 텐데,
고모 내외에게 살갑게 굴려는 마음이 없었던 건지,
부모 없는 내 처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건지 결석했다.


오늘은 그 시절의 ‘나’들에게 전한다.


그렇게 그 시절을 살아 내 준 덕에 지금은 내게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마음을 전해 주는 아이들이 있단다.

그 아이들에게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엄마가 되려고 무던히 애쓰며 살아 낸 지금의 내가 있지.

우리 참 잘 살아내고 있어.

고마워. 많은 은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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