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리에서 네비가 가리키는 길에서 좌회전을 하려다 다른 길로 들어섰다.
언젠가 살아 본 적 있는 듯한 주택가들이 즐비한 골목이었다. 눈으로 봤는데 냄새가 났다.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뇌를 울리는 매캐함. 골목을 빠져나오는 동안 나는 딴 데 있었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괜찮은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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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도 냄새가 있다는 말.
그 말이 한동안 맴돌았다.
40여 년 전에는 주거 환경이 지금의 아파트처럼 편리하지 않았다.
연탄보일러에서 기름보일러로 넘어가던 시대에 살았던 나는 새벽에도 자다가 연탄을 갈기 위해 일어나는 아빠의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늘 잠귀가 열렸다. 아빠의 ‘잘도 쳐 자네’ 라는 새엄마를 향한 투덜대는 소리를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데워진 온수통의 물을 받아 세수하고 밥 먹고 학교 가는 일상 속에서 나의 위생 상태를 눈여겨 챙겨 주는 사람은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마음 붙일 곳 없었던 나는 한 달에 두어번 주말이면 고모 집에 다녀오는 날이 좋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신신당부했던 게 있었다고 한다.
“애비가 허락한다면 은별이는 니가 데리고 키워라.”
하지만 사실 나는 고모 집에 가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저 놀러 가는 게 좋았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동네에는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커다란 입구에 들어서 여러 동을 지나 고모 집을 찾아가는 게 재미있었다.
언젠가 그런 동네에 나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에서 한참 놀이기구를 타다가 고모 집에 도착하곤 했다.
내가 도착하면 고모는 문 앞에서부터 옷을 다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들어오라고 했다.
고모는 내가 갈 때마다 여러 옷을 사 두었다가 집에 갈 때 들려주곤 했다.
눈썰미가 좋은 데다 나보다 디자인 보는 눈도 있어서 고모가 사다 놓은 옷들을 좋아했다.
그렇게 고모가 사 주는 옷이 좋아서, 고모가 사는 아파트가 좋아서 혼자 버스를 타고 가는 그 길도 좋아했다.
그렇다고 고모 집의 모든 게 다 좋은 건 아니었다.
할아버지처럼 생긴 고모부.
그 고모부 앞에서는 조용해야 했고 묻는 말에는 또박또박 크게 대답해야 했다.
오른손에 돋보기를 들고 늘 신문이나 바카라을 읽는 모습.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격동 30년’을 눈 감고 듣던 모습.
가끔 붓과 종이를 펼쳐 서예를 하던 모습.
어쩌면 우리 집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풍경들을 봐야 했기에 나는 열두 살 아이의 모습을 숨기고 스무 살, 서른 살쯤 된 정숙하고 교양 있는 어른 흉내를 내야 했다.
그곳에서 나는 가면놀이를 하는 기분이었다.
고운 새 옷을 입고 부잣집 여자아이의 행색을 한 채 마음속에서는 소방차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중놀이를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았다. 이 세상이 나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걸.
여러 번 고모 집을 드나들던 어느날 고모부가 돋보기로 신문지를 탁탁 치며 말했다.
“은별이 오니까 OO동 냄새가 나네! 오자마자 씻으라 했는가!”
평소라면 신문지를 조용히 넘기던 사람이 돋보기로 탁탁 치는 소리는 심기가 무척 불편하다는 신호였다.
그날도 다른 날처럼 놀이터에서 한참 놀다가 고모 집에 갔다.
나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목이 마르다고 후다닥 들어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그 소란스러운 틈에 고모부의 역정 가득한 표정이 눈과 귀에 함께 들어왔다.
고모는 얼른 나를 현관 옆 욕실로 데려가 말했다.
“깨끗하게 씻고 새 옷 입고 나와.”
그러고 보니 고모 집에 오면 나는 속옷부터 겉옷까지 깨끗하게 빨아 놓은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게 필수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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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영화 <기생충>에서 ‘가난한 냄새’라는 말을 듣고 어린 시절 고모 집에 놀러 가던 내가 떠올랐다.
그런 가난한 냄새를 지독하게 끌고 다니면서도 가난한 줄 모른 척 살았던 나.
고모 집에 가면 늘 새 옷을 사 놓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노라 자랑하던 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건넨 인사 대신 “손은 씻었냐?”라는 말을 듣던 나.
워낙 깔끔한 사람이니까 저러는 거라고 이해시키던 고모.
어느 날,
“쟤 좀 지 엄마한테 보내.”
라며 내가 자는 줄 알고 아빠를 나무라던 목소리와 나를 들쳐 안고 나오던 아빠의 걸음걸이가 한꺼번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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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전, 스무 살 무렵 한창 술에 빠져 살던 나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너 가난한 냄새 알아? 아무리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깨끗하게 씻어도 어딘가에는 꼭 묻어 있나 봐. 그 냄새는 마치 영혼에 밴 것처럼 겉을 아무리 바꿔도 풍겨 나와. 정말 역겨워.”
내가 역겨워한 것은 그 냄새였을까.
그 냄새로 내게 반응하던 사람들이었을까.
그 냄새마저 모르고 살던 나 자신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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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튀어나온 기억에 오랫동안 머물다가는 이 길 끝에서 만나야 할 약속에 늦을 것 같았다. 얼른 머리를 흔들어 잠시 후에 그때의 나를 만나기로 하고 원래 가기로 했던 길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