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쓸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내가 속한 집단의 흉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 학교라는 공간의 허점과 아픈 곳을 굳이 들춰내는 것 같기도 했다. 교사는 교사를 제일 잘 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누군가의 부족함을 말하는 일은 결국 내 부족함을 함께 드러내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은 누군가를 고발하기 위해 쓰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배우면 안 될 것 같은 교사의 모습이 아니라, 그런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한 교감선생님의 모습이다. 지금은 퇴직하셨고, 십 년도 훌쩍 지난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그분의 얼굴과 목소리는 아직 선명하다. 초임교사였던 내게 그분은 조금 무섭고, 조금 피곤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엄격한 관리자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니 그 엄격함 안에 학교를 지키려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립학교에 처음 발령받았을 때, 내 자리는 본교무실에 있었다. 학교에는 교무실이 여러 개 있다. 교감선생님과 부장선생님, 비담임 선생님들이 근무하는 본교무실, 담임선생님들이 모여 있는 학년교무실, 생활지도부나 특정 부서가 따로 사용하는 연구실 같은 공간들. 그중에서도 본교무실은 학교의 중추신경 같은 곳이었다. 전화벨이 울리고, 결재 서류가 오가고, 교감선생님의 시선이 학교 안팎을 조용히 살피는 곳이었다.
나는 하필 그 본교무실에서도 교감선생님 컴퓨터 시야에 아주 잘 들어오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좋은 자리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초임교사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살짝 딴짓을 하기도 어렵고, 멍하니 앉아 있기도 어렵고, 전화 한 통도 괜히 조심스러워지는 자리였다. 아마 내가 자리를 고를 수 있는 권한은 없었을 것이다. 남은 자리였거나, 신규교사니까 그냥 배정받은 자리였을 것이다.
다행히 바로 옆자리에는 나와 함께 신규 발령을 받은 선생님이 앉았다. 우리는 같은 해에 첫 공립학교 생활을 시작한 동기였다. 수업도 많지 않았고, 담임도 아니었으며, 업무도 크게 무겁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신규교사에 대한 나름의 배려였던 것 같다. 대신 우리는 교감선생님의 이야기를 자주 들어야 했다.
그때의 교감선생님은 한마디로 FM이었다. 정해진 규칙을 정확히 지키고, 공적인 자리에서는 흐트러짐을 싫어하셨다. 말투도 또렷했다.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할 때도 빙빙 돌려 말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꽤 부담스러웠다. 교무실 공기가 느슨해지려 하면 어김없이 그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들, 수업 시간은 꼭 지키셔야 합니다.”
“복무는 기본입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해요.”
특히 그 말,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신규교사인 나와 옆자리 선생님에게는 거의 주문처럼 반복하셨다.
“처음부터 근무태도가 흐트러지면 그 평판이 계속 따라다닙니다. 교사는 수업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을 지키는 게 먼저예요.”
처음 들을 때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들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 열 번쯤 들으면 속으로 슬며시 다른 생각이 올라왔다.
‘또 시작이시네.’
그때의 나는 젊었고, 아직 학교라는 조직을 잘 몰랐다. 교감선생님의 말이 옳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옳은 말을 반복해서 듣는 것은 피곤했다. 특히 그분은 자신의 교직생활을 예로 자주 드셨다.
“나는 30년 가까이 교사 생활을 하면서 수업에 늦게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일찍 나온 적도 없고요.”
그 말에는 자부심이 있었다. 누군가는 고리타분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사실 대단한 일이었다. 수업을 아주 잘했는지, 학생들에게 늘 감동을 주었는지는 다른 사람이 판단할 문제다. 그러나 적어도 정해진 시간에 교실에 들어가 정해진 시간까지 학생 앞에 있었다는 사실은 쉽게 말할 수 없는 무게를 가진다. 그분에게 교사의 기본은 아주 명확했다. 수업 시간, 출퇴근 시간, 복무, 결재. 작은 규칙들이 모여 학교의 신뢰를 만든다고 믿는 분이었다.
규칙만 잘 지키면 교감선생님이 화를 낼 일은 거의 없었다. 문제는 어느 조직이나 그렇듯, 모든 사람이 그 규칙을 같은 무게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데 있었다.
그 학교에는 체육과에 운동부를 맡고 있는 한 선생님이 계셨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학교 안에서 그분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오갔다. 출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는 이야기, 아침에 늦게 와도 교무실로 오지 않고 곧장 체육관 준비실로 간다는 이야기,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공만 주고 제대로 수업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 말들이 얼마나 사실인지 알 수 없었다. 그분의 자리는 따로 마련된 교무실이었다. 체육관 쪽에도 별도의 공간이 있었고, 운동부 숙소도 있었기 때문에 학교 안에 계신지 아닌지조차 분명히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초과근무도 마찬가지였다. 야간에 운동부 지도가 있다는 이유로 늦게까지 학교에 남는 경우가 있었지만,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근무가 이루어지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학교에는 그런 사각지대가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아무도 정확히 말하지 않는 공간.
초임교사였던 나는 그 분위기가 낯설었다. 학교란 늘 투명하게 움직이는 곳일 줄 알았다. 시간표가 있고, 결재가 있고, 규정이 있으니 모든 일이 그 안에서 질서 있게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학교도 결국 사람이 모인 조직이었다. 보이는 곳이 있고, 보이지 않는 곳이 있었다. 누군가는 성실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누군가는 그 틈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교감선생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용했다. 하지만 조용한 움직임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어느 아침, 교감선생님이 본교무실에 계시지 않았다. 결재를 받으러 온 선생님이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교감선생님 어디 가셨어요?”
누군가 낮게 말했다.
“체육관 앞에 계세요.”
체육관 앞.
그 말만으로도 거기에 왜 가셨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즈음, 교감선생님은 아침 시간 체육관 근처에 서 계셨다. 누가 언제 오는지, 어디로 들어가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우연히 그곳에 계신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비슷한 일이 이어졌다. 체육관 앞에 서 있는 교감선생님의 모습은 말없이 던지는 메시지 같았다.
‘이제부터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곧이어 초과근무 확인 대장 위치도 바뀌었다. 원래는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곳에 있던 대장이 교감선생님 자리 옆으로 옮겨졌다. 초과근무를 확인하려면 교감선생님 옆까지 가야 했다. 서명 하나에도 시선이 따라붙었다. 그 작은 변화만으로도 공기가 달라졌다.
“대장을 왜 저기로 옮겼대요?”
누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뻔하지 뭐.”
다른 선생님이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그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근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확인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정인을 겨냥해 압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교감선생님이 체육관 앞에 서 계시고, 운동장에 나가 수업을 직접 확인하고, 초과근무 대장을 본인 옆에 두는 모습은 젊은 내 눈에는 어딘가 거칠게 느껴졌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교감선생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수업 시간만 되면 가끔 체육관이나 운동장 쪽으로 나가셨다. 정말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교무실 창밖으로 그분이 운동장 방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면, 본교무실 안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돌았다. 검은 구두가 복도를 지나 운동장으로 향하는 소리. 그 소리는 누군가에게는 감시처럼 들렸고, 누군가에게는 경고처럼 들렸을 것이다.
나는 자주 옆자리 신규 선생님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또 가셨네요.”
“그러게요.”
그 짧은 말 속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조금 무섭기도 했고, 조금 불편하기도 했고, 솔직히 말하면 조금 흥미롭기도 했다. 초임교사에게 학교는 모든 장면이 공부였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조직의 작동 방식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당사자인 선생님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아침마다 체육관 앞에서 교감선생님을 마주치는 일이 편할 리 없었다. 수업 시간마다 관리자가 운동장을 살핀다면 누구라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학교 안에는 묘한 긴장이 흘렀다. 누군가는 교감선생님이 맞다고 했고, 누군가는 너무한다고 했다. 말은 조심스럽게 오갔지만, 모두가 그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어느 쪽에도 확실히 서지 못했다. 교감선생님의 엄격함이 이해되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불편함이 올라왔다. 사람을 저렇게까지 몰아붙이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학교라는 곳이 그래도 동료 교사들의 공동체라면 조금 더 부드럽게 해결할 수는 없었을까. 젊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본다.
누군가는 나쁜 역할을 맡아야 조직이 건강해진다.
이 말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는 갈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일은 지금도 어렵다. 하지만 학교라는 조직에서 모두가 좋은 사람으로만 남으려고 하면, 결국 성실한 사람들이 손해를 본다. 누군가는 제시간에 출근하고,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 앞에 서고, 기록을 남기고, 바카라임을 다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기본을 흐트러뜨린다. 그때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학교의 공정함은 조용히 무너진다.
교사 슬롯는 독특하다. 직급의 개념이 강하지 않다. 대부분의 교사가 같은 교사로서 동등하게 일한다. 수업이라는 자기 영역이 있고, 교실 문이 닫히면 그 안은 상당 부분 교사의 바카라임과 자율에 맡겨진다. 이 자율은 교직의 중요한 가치이지만, 동시에 사각지대를 만들기도 한다. 누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누가 대충 넘어가고 있는지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학교에는 관리자가 필요하다. 교장과 교감이라는 몇 안 되는 상사가 필요하다. 물론 관리자가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학교가 군대처럼 움직여서도 안 된다. 하지만 기본이 흔들릴 때, 누군가는 선을 그어야 한다. “이거는 안 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은 대개 미움을 받는다. 그래서 더 어렵다.
그때의 교감선생님은 그 싫은 역할을 피하지 않았다.
출근시간에 체육관 앞에 서 있는 일은 그분에게도 편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초과근무 대장을 자기 옆자리로 가져다 놓는 일도 누군가의 눈에는 치사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셨을 것이다. 수업을 확인하러 체육관과 운동장을 오가는 일도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분은 했다. 본인이 악역처럼 보이더라도 학교의 기본을 세워야 한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요즘 학교의 관리자들은 대체로 친절하다. 선생님들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최대한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 한다. 나는 그런 분위기가 좋다.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관리자가 좋은 학교를 만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엄격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늘 웃으며 부탁하는 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다. 누군가가 반복해서 선을 넘을 때, 친절한 권유만으로는 조직을 지킬 수 없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화풀이가 아니라 철퇴다.
철퇴라는 말이 조금 거칠게 들릴 수 있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감정적인 공격이 아니다. 원칙의 무게다. 규정과 바카라임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신호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기준이 있다는 믿음이다. 그것이 있어야 성실한 사람들이 덜 억울하다. 그것이 있어야 신규교사도 학교라는 조직을 신뢰할 수 있다.
나 역시 그 시절 본교무실 구석자리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교감선생님의 잔소리처럼 들렸던 말들, 수업 시간에 늦지 말라는 당연한 이야기, 복무를 철저히 하라는 반복된 강조가 시간이 지나며 다른 의미로 돌아왔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도 그랬다. 초임 때의 근무 태도는 단순한 평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어떤 교사로 살 것인지 스스로에게 처음으로 답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그 교감선생님의 방식이 언제나 완벽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고, 더 세련된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분이 지키려 했던 것은 분명했다. 학교의 기본. 수업의 시간. 학생 앞에 서는 교사의 바카라임. 그리고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바보가 되지 않는 조직의 최소한의 질서.
나는 지금도 가끔 그분을 떠올린다.
본교무실 앞쪽 자리에서 컴퓨터 모니터 너머로 학교를 살피던 모습. 신규교사였던 나에게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고 반복하던 목소리. 그리고 어느 아침, 체육관 앞에 서서 말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던 뒷모습.
그때는 그 모습이 조금 무서웠다.
지금은 안다.
어떤 학교에는 다정한 사람도 필요하지만, 싫은 소리를 대신 해줄 사람도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할 때, 누군가는 기꺼이 미움받을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을.
그런 사람이 있어야 학교가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람 덕분에 누군가는 첫 단추를 다시 꿸 기회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