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 그 두 글자

조회 버튼 위에 마우스 커서가 멈춰 있었다.


누르기만 하면 끝이었다. 지난 몇 년의 실패, 중국으로 떠났던 시간, 특수학교 옆 시골 원룸에서 지네와 거미와 함께 버티던 밤, 경주 보문단지 스타벅스까지 차를 몰고 가서 커피 한 잔에 기대어 외우던 문장들, 새벽 찜질방에서 일부러 불편하게 잠들던 시간들이 모두 저 작은 버튼 하나 앞에 모여 있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분명 교무실은 따뜻했다. 겨울방학이 끝난 2월의 학교였고, 난방도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끝만 얼음장 같았다. 모니터 속 화면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수험번호를 입력했고, 비밀번호도 넣었다. 이제 정말 누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해 2월, 특수학교에서의 1년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고, 나도 학교라는 공간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처음 학교에 들어섰을 때 나를 당황하게 했던 냄새도 이제는 학교의 공기처럼 느껴졌고, 휠체어 손잡이의 무게도, 저녁 컴퓨터실의 불빛도, 축제 부스의 뜨거운 철판도 내 안에 오래 남을 기억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시간의 끝에서 나는 또 다른 문 앞에 서 있었다.


임용시험.

대학교 졸업반 때 처음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중국에 있던 해에는 응시조차 하지 못했던 시험. 특수학교 기간제 교사로 일하며 퇴근 후마다 나를 몰아붙였던 그 시험이었다. 감사하게도 1차에 합격했고, 다음 관문인 실기시험, 면접, 수업실연까지 치러야 했다.


1월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실기시험은 생각보다 무난했다. 어릴 때 배운 사물놀이가 그때 빛을 발했다. 장구 반주는 자신 있었다. 어린 시절 두드리고 또 두드렸던 장단이 먼 길을 돌아 내 시험장까지 따라와 준 셈이었다. 민요는 단기로 레슨을 받았다. 짧은 시간 안에 몸에 넣어야 했기에 마음이 급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피아노 범창은 솔직히 말해 피아노 반주 실력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노래를 크게 불렀다. 반주가 부족하면 목소리라도 앞으로 나가야 했다.


시험장 안에는 고요한 긴장감이 흘렀다. 순서를 뽑았는데 하필 1번이었다. 가장 먼저 들어가야 했다. 대기실에 앉아 있을 시간도,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볼 시간도 없었다. 그냥 문이 열리면 들어가야 했다.


“1번 들어오세요.”


그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은 움직였다. 시험장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심사위원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내게 꽂혔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틀려도 좋다. 작게 하지는 말자.’


장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첫 순서로 들어가 노래를 시작하자 심사위원들이 꽤 놀라셨다고 한다. 거의 8년 만에 남자 음악교사가 실기고사장에서 노래를 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음악교사 세계는 여초 슬롯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쩌면 그 반가움 덕분에 점수가 조금 후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때의 나는 그런 사정을 알 리 없었다. 그냥 목청껏 불렀다. 살아남기 위해서.


면접과 수업실연도 그렇게 지나갔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자신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붙잡았다. 조금 틀리더라도 위축되지 말자. 모르면 모르는 대로, 준비한 것은 준비한 대로 또렷하게 보여주자. 면접 당일 아침에는 출장 메이크업까지 불렀다. 내 인생에서 출장 메이크업을 받은 것은 딱 두 번이다. 한 번은 결혼식, 그리고 또 한 번은 임용시험 면접 날이었다.


거울 앞에 앉아 얼굴이 조금씩 정리되는 모습을 보며 묘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내가 정말 중요한 사람처럼 보이네.’


그날만큼은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적어도 시험장에 들어가는 순간만큼은 피곤에 절은 기간제 교사가 아니라, 당당히 교사가 될 준비가 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모든 시험이 끝난 뒤,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기다림은 늘 시험보다 길다. 시험은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나지만, 기다림은 마음속에서 계속 연장된다. 밥을 먹다가도 결과 생각이 나고, 수업을 하다가도 문득 발표 화면이 떠오른다. 잠들기 전에는 ‘혹시나’가 찾아오고, 아침에 일어나면 ‘설마’가 따라온다. 합격과 불합격 사이에서 사람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건너뛴다.


드디어 최종 발표일이 되었다.


그날 아침부터 수업이 두 시간 있었다. 특수학교는 2월에도 학교에 나오는 날이 많았다. 아이들이 방학을 너무 길게 보내면 오히려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학교에 오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 일반적인 학교의 학생들과는 조금 다른 아이들이었다. 나 역시 그 점이 참 좋았다. 방학 끝 개학이라는 말에도 아이들은 의외로 밝았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아이들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분명 음악수업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목소리도 들렸고, 악기 소리도 들렸다. 그런데 정신은 자꾸 교무실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있었다. 학생 하나가 내게 뭔가를 물었다.


“선생님, 이거요?”

“응?”


“이거요. 이렇게 해요?”

“아, 미안. 다시 한 번 말해줄래?”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었다. 아이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평소보다 멍한 선생님. 눈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선생님. 나는 속으로 계속 시간을 세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로 돌아왔다. 다행히 발표 시간에는 수업이 없었다. 나는 내 자리에 앉아 인터넷 창을 열었다. 결과 조회 페이지를 띄워놓고, 혹시 누가 볼까 봐 창을 작게 줄였다. 오늘이 발표일이라는 사실은 옆자리의 친한 선생님 두 분에게만 조심스럽게 말해두었다.


학교에 너무 소문이 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나 개인에게 임용 합격은 말할 수 없이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학교 입장에서는 한 명의 기간제 교사가 재계약하지 않고 떠나는 일이기도 했다. 기간제 교사가 많은 학교였다. 누군가의 합격이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빈자리와 업무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나 마음은 전혀 조용하지 않았다.


시계 초침이 유난히 크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모니터 오른쪽 아래의 시간이 바뀔 때마다 심장이 같이 뛰었다. 발표 예정 시간이 가까워지자 손이 자꾸 마우스 위를 맴돌았다. 페이지를 새로고침하고, 다시 확인하고, 수험번호를 다시 들여다봤다. 혹시 잘못 입력했을까 봐 수험표도 다시 꺼내 보았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나는 수험번호를 입력했다. 비밀번호도 넣었다. 이제 조회 버튼만 남았다.


차마 눈을 똑바로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정말 중요한 순간에 눈을 감고 싶어진다. 보지 않으면 결과도 잠시 늦춰질 것 같아서일까. 나는 눈가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두 눈을 찡그리고 조회 버튼을 눌렀다.


딸깍.

끝났다.


그런데 화면은 바로 넘어가지 않았다.

동그라미가 돌았다. 하얀 화면이 멈춘 듯 흔들렸다. 브라우저는 나에게 조금만 시간을 달라는 듯 버티고 있었다. 전국의 수험생들이 동시에 접속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손을 모으고 있었을 그 시간. 내 컴퓨터는 느릿느릿 다음 장면을 불러오고 있었다.


‘제발. 제발.’


짧은 몇 초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몇 초는 이상하게 길었다. 시골 원룸에서 보낸 밤들이 그 안에 다 들어 있었다. 보문단지로 달리던 차 안의 암기 녹음도, 특수학교에서 아이들과 보낸 시간도, 잠을 줄이며 굳어버린 몸도 모두 그 로딩 화면 속에서 함께 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두 글자였다.


축하.

아직 아래 문장은 다 뜨지도 않았다. 페이지는 완전히 로딩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두 글자만으로 충분했다. 축하합니다의 ‘축하’. 더 볼 필요도 없었다.


합격이었다.

순간 몸에서 힘이 빠졌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교무실이었기 때문이다. 박수를 칠 수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도 없었다. 나는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겨우 숨을 내쉬었다.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무너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아주 오래 버티고 있던 것이 드디어 내려앉고 있었다.


가장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무실에서는 할 수 없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복도를 지나 야외 비상계단으로 나갔다. 2월의 공기가 얼굴을 찔렀다. 차가웠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추운 줄도 몰랐다.


통화 연결음이 울렸다.

“여보세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짧게 불렀는데 목이 막혔다.


“왜? 결과 나왔어?”

“응.”


잠깐의 침묵.

“됐어?”

“응. 붙었어.”


그 말을 하는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엄마가 울었다.

나는 엄마가 그렇게 우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엄마는 강한 분이었다. 쉽게 흔들리지 않고, 웬만한 일에는 담담한 분이었다. 그런데 그날 전화기 너머의 엄마는 울고 있었다. 기뻐서 우는 울음이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마음도 함께 무너졌다.


“고생했다.”


엄마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 지난 시간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불합격했던 날, 중국으로 떠나던 날, 특수학교 원룸에서 혼자 밥을 먹던 밤, 새벽까지 녹음 파일을 듣던 시간들. 다 괜찮은 척 지나왔던 순간들이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비상계단에서 한참 동안 전화를 했다. 엄마에게, 아버지에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손은 차가웠지만 얼굴은 뜨거웠다. 몇 통의 전화를 돌리고 나니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겨울바람이 옷깃 사이로 들어왔지만, 몸은 이상하게 뜨거웠다.


교무실로 돌아오자 옆자리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다. 눈빛으로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나는 조용히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입을 가리고 작게 박수를 쳐주셨다.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박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작은 박수가 더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소문은 조용히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날 퇴근 전까지 내 합격 소식은 학교 전체에 퍼졌다. 복도에서 만나는 선생님들이 하나둘 축하해주셨다.


“하 선생님, 축하해요!”

“드디어 됐네요!”

“고생 많았어요.”


나는 감사하다고 인사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는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미안한 마음이 함께 들었다. 이 학교에서 일하면서 공부했고, 결국 나는 떠나게 되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컸지만, 동시에 죄송한 마음도 있었다. 좋은 소식인데도 마냥 환하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 뒤로는 합격자에게 필요한 일들이 이어졌다. 공무원채용 신체검사도 받아야 했고, 서류도 준비해야 했다. 이제는 발령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내 이름 앞에 정말로 공립학교 교사라는 자리가 붙게 된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러다 신규교사 연수 일정이 나왔다.


나는 그 연수를 꼭 가고 싶었다. 신규교사 연수는 말 그대로 일생에 한 번뿐인 시간이었다. 동기들을 만날 수 있고, 앞으로 함께 교직생활을 시작할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였다. 게다가 들리는 말로는 이번에 음악 남자교사가 한 명 더 합격했다고 했다. 여초 슬롯인 음악교과에서 남자 동기라니. 꼭 만나보고 싶었다. 외로운 섬에서 옆 섬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연수 일정이 아직 특수학교에 출근해야 하는 날짜와 겹쳤다.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합격자는 이제 나였지만, 나는 아직 그 학교의 기간제 교사이기도 했다. 계약은 끝나지 않았고, 아이들과의 마지막 수업도 남아 있었다. 신규교사 연수를 가려면 학교에 양해를 구해야 했다.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합격한 사람에게 학교도 축하하는 마음으로 보내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하루 정도 고민했다. 연수에 가고 싶은 마음과 마지막까지 학교에 남아야 한다는 마음이 서로 부딪혔다. 새 출발의 설렘과 작별의 바카라임이 한 사람 안에서 싸웠다.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결국 전화를 걸었다. 교육청연수원 담당 연구사에게였다.


“안녕하세요. 이번 신규교사 연수 대상자인데요.”

“네, 말씀하세요.”

“제가 아직 기간제교사로 근무 중입니다. 연수 일정과 출근일이 겹치는데, 혹시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속으로 조금 복잡한 답변을 예상했다. 서류를 내야 한다거나, 학교장 허가를 받아야 한다거나,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았다.


그런데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런 경우에는 참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너무 쿨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허탈했다. 그렇게 고민했는데 답은 너무 쉽게 나왔다. 나는 신규교사 연수에 가지 않기로 했다. 아니, 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 시간에 나는 특수학교에 남아 수업을 했다. 아이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내게는 신규교사 연수의 기억이 없다.


동기들과 처음 만나 어색하게 인사하던 장면도, 연수원 숙소에서 밤늦게 이야기 나누던 추억도, 신규교사로서 들었던 첫 강의의 설렘도 없다. 나중에 생각하면 많이 아쉽다. 교직생활에 대해 기본적인 안내를 들을 기회를 놓친 것도, 동기 교사들을 많이 알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특히 같은 해 합격한 음악 남자교사와 일찍 친해질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웠다.


그럼에도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아마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선택 덕분에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나는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었지만, 아직 끝내야 할 시간이 남아 있었다. 특수학교에서의 1년은 내게 단순한 경력이 아니었다. 그곳은 내가 길을 잃은 겨울에 나를 받아준 학교였고, 아이들은 내 수험생활의 삭막함 속에서 꽃처럼 피어준 존재들이었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나에게는 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지막 수업을 하던 날, 나는 평소보다 아이들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여전히 천천히 악기를 두드렸고, 누군가는 내 눈치를 보며 웃었다. 어떤 학생은 수업이 끝난 뒤 내게 다가와 별다른 말 없이 손을 잡았다. 그 손의 온도가 오래 남았다.


“선생님, 가요?”

누군가 물었다.


“응. 선생님 이제 다른 학교로 가게 됐어.”

“언제 와요?”


그 질문 앞에서는 늘 대답이 어렵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웃으며 말했다.

“생각나면 또 올게.”


아이들은 그 말을 정확히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약속으로 들었을까, 인사로 들었을까.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 순간 알았다. 합격이라는 기쁨도 크지만, 작별이라는 일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깊다는 것을.


그해 2월, 나는 한쪽 손에는 합격 통지의 설렘을, 다른 한쪽 손에는 특수학교와의 작별을 들고 있었다. 어느 하나만 온전히 붙잡을 수 없었다. 기뻤고, 미안했고, 설렜고, 아쉬웠다. 인생의 전환점은 늘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표정을 하고 찾아온다.


교무실 작은 모니터에 떴던 ‘축하’ 두 글자는 내 삶을 바꾸었다.


하지만 그 두 글자만큼이나 오래 남은 것은, 합격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던 특수학교의 마지막 며칠이었다. 비상계단에서 엄마의 울음을 들었던 순간, 옆자리 선생님의 조용한 박수, 복도에서 건네받은 축하 인사, 그리고 마지막 수업에서 내 손을 잡던 학생의 손.


나는 그렇게 특수학교와 아름다운 작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신규교사 연수로 기억될 2월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해 2월은, 합격보다 조금 더 느린 방식으로 교사가 되어가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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