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살다 보면 가끔 예상하지 못한 옷을 입게 된다.
정장도 아니고, 생활복도 아니고, 체육대회 단체 티셔츠도 아닌 옷. 평소의 나였다면 절대 입지 않았을 옷을 입고, 복도와 강당 한가운데를 당당하게 걸어야 하는 날이 온다. 특수학교에 근무하던 그해 겨울, 나에게 찾아온 옷은 산타복이었다.
빨간색 상하의에 하얀 털 장식이 달린, 누가 봐도 산타라고 외치는 옷이었다. 모자까지 쓰고 나니 거울 속의 나는 음악교사라기보다 연말 행사 아르바이트생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싫지만은 않았다. 아니, 조금 부끄러웠지만 꽤 재미있었다. 특수학교에서의 1년은 내게 자주 그런 마음을 주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하지만, 막상 해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들.
그 학교는 기독교 재단 학교였다. 그래서 학교 안에는 자연스럽게 예배 시간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도 조금 낯설었다. 일반 학교에서만 생활했던 내게, 학교 일과 속에 예배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풍경이었다. 찬양이 흘러나오고, 기도가 이어지고,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한 공간에 모여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그 학교만의 리듬 같았다. 종소리 대신 찬양이 하루의 한 장면을 여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12월이 되자 학교 전체가 성탄절을 기다리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복도에는 장식이 걸리고, 행사 공간에는 크리스마스 배경막이 세워졌다. 사진을 다시 보면 그날의 공기가 조금 되살아난다. 형광등 불빛 아래 밝은 바닥, 벽면에 붙은 “Merry Christmas” 글자, 흰 풍선과 보라색 풍선, 그리고 빨간 옷을 입은 선생님들. 엄숙한 예배라고 하기에는 조금 들떠 있었고, 단순한 공연이라고 하기에는 마음이 꽤 진지했다.
성탄예배는 그 학교에서 중요한 행사였다. 예배도 드리고, 공연도 하고, 아이들에게 선물도 나누어주는 날이었다. 선생님들은 각자 맡은 일을 했다. 누군가는 음향을 챙기고, 누군가는 선물을 정리하고, 누군가는 아이들을 자리로 안내했다. 그리고 몇몇 젊은 선생님들은 산타가 되었다.
“하 선생님, 이번에 산타복 입으셔야 해요.”
“제가요?”
“젊잖아요.”
또 그 말이었다. 젊다는 이유는 참 많은 일을 가능하게 했다. 배구 선수도 되고, 봉고차 운전사도 되고, 휠체어 인솔자도 되고, 이제는 산타도 된다.
“춤도 춰야 해요?”
“조금만요.”
그곳의 “조금만”이라는 말은 대체로 조금이 아니다. 특히 행사 담당 선생님들이 말하는 “조금만”은 거의 무대에 올라가서 망가질 각오를 하라는 뜻에 가깝다.
성탄예배 공연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몇 번 연습을 했다. 크레용팝의 '빠빠빠' 였다. 아이들이 보고 웃을 수 있을 정도의 율동과 노래였다. 하지만 산타복을 입고 몸을 움직이는 것은 생각보다 민망했다. 옷은 두껍고, 모자는 자꾸 흘러내리고, 허리에 찬 벨트는 생각보다 존재감이 컸다. 산타는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보이지만, 막상 산타복을 입고 춤을 추려면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선생님, 표정이 너무 진지해요.”
옆에 있던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원래 춤출 때 진지합니다.”
“그러니까 더 웃겨요.”
그 말에 나도 웃고 말았다. 음악을 전공했다고 해서 춤까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은 아니다. 플루트는 손끝과 호흡으로 하는 악기지만, 율동은 온몸이 악기가 되어야 했다. 문제는 내 몸이 생각보다 둔탁한 타악기 같았다는 것이다.
행사 당일,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어떤 학생은 산타복을 입은 선생님들을 보자마자 손뼉을 쳤고, 어떤 학생은 크게 웃었다. 또 어떤 학생은 평소보다 훨씬 밝은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들을 보는 순간 부끄러움이 조금 사라졌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우리는 무대 앞으로 나갔다. 누군가는 무릎을 꿇고 포즈를 취했고, 누군가는 손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빨간 산타복을 입은 선생님들과 빨간 외투를 맞춰 입은 선생님들이 함께 움직였다. 강당인지 식당인지 모를 그 밝은 공간이 잠시 작은 크리스마스 무대가 되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모였고, 웃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처음에는 안무를 틀리지 않으려고 정신이 없었다. 어느 타이밍에 손을 들고, 어느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언제 옆 사람과 맞춰야 하는지 머릿속이 바빴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런 생각들이 흐려졌다. 대신 아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학생, 박자에 맞춰 손을 흔드는 학생, 선생님을 따라하려고 몸을 들썩이는 학생. 그 얼굴들이 눈에 들어오자 마음이 놓였다.
‘아, 이러면 됐구나.’
완벽한 공연을 하려고 올라간 무대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웃으면 그걸로 충분한 무대였다. 선생님이 조금 망가지고, 평소보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그 모습에 아이들이 마음껏 웃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탄예배의 한 장면은 충분히 따뜻해졌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선물을 나누어주었다. 산타복을 입은 채 아이들 앞에 서니, 정말 내가 산타라도 된 것 같았다. 물론 수염도 없고, 배도 그리 나오지 않았고, 루돌프 대신 학교 복도와 교실을 오갔지만 말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네며 말했다.
어떤 학생은 두 손으로 선물을 꼭 받았다. 어떤 학생은 포장지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또 어떤 학생은 선물을 받자마자 내 얼굴을 보고 엄지를 들어주었다. 특수학교에서 나는 엄지손가락의 힘을 자주 배웠다. 말보다 빠르고, 설명보다 정확한 감사의 표현이었다.
“선생님, 산타예요?”
한 학생이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대답했다.
“오늘만.”
그러자 학생이 웃었다.
“내일은요?”
“내일은 다시 음악 선생님.”
그 짧은 대화가 떠오른다. 오늘만 산타이고, 내일은 다시 음악 선생님. 그런데 생각해보면 교사라는 일은 가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모습으로 잠시 변신하는 일. 어떤 날은 수업하는 사람이고, 어떤 날은 휠체어를 미는 사람이고, 어떤 날은 또띠아를 마는 사람이고, 어떤 날은 산타복을 입고 춤추는 사람이다.
그때는 그런 일을 하면서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해야 하니까 했고,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했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겠지만, 막상 무대에 서고 나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들이 웃는 얼굴은 사람을 쉽게 무장해제시킨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라는 부끄러움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네”라는 마음이 더 커졌다.
지금 학교에서 이런 행사를 한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선생님들이 산타복을 입고 공연을 준비하고, 선물을 나누고, 아이들 앞에서 춤을 추는 일. 누군가는 촌스럽다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우리가 왜 이런걸 해야하냐고 생각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요즘의 학교는 예전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공간이 되었다. 교사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름답지만, 때로는 위험한 말이기도 하다.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수고가 당연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마음 한쪽이 따뜻해진다.
그때의 우리는 대단한 교육 이론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거창한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이들이 성탄절을 조금 더 즐겁게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빨간 옷을 입었다. 평소의 체면을 내려놓고, 조금 우스워지고, 조금 부끄러워지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아이들을 위해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귀한 경험이었다. 망가진다는 말이 스스로를 낮추는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 앞에서 너무 단단하게 굳어 있던 나를 잠시 풀어놓는 일이었다. 선생님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어른의 체면을 벗고,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 나는 그날 산타복 안에서 그런 자유를 조금 느꼈다.
사진 속의 나는 빨간 산타복을 입고 있다. 옆에는 함께 무대를 꾸민 선생님들이 있고, 뒤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려 있다. 어떤 선생님은 활짝 웃고 있고, 어떤 선생님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은 움직이지 않지만, 그날의 소리는 아직 들리는 것 같다. 찬양 소리, 아이들의 웃음, 선물 포장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산타복을 입은 선생님들이 서로를 보며 웃던 소리.
특수학교에서의 겨울은 그렇게 지나갔다.
교실 밖에서 배운 것이 많은 해였다. 나는 그곳에서 음악수업만 한 것이 아니었다. 축제 부스에서 또띠아를 만들었고, 체육대회에서 배구공을 받았고, 수학여행에서 휠체어를 밀었고, 성탄예배에서는 산타가 되었다. 그 모든 일들이 이상하게도 나를 조금씩 교사답게 만들었다.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늘 멋진 모습일 필요는 없었다. 어떤 헌신은 박수받는 강연처럼 근사하지 않고, 산타복 바지춤을 추켜올리며 무대에 오르는 우스운 모습에 가까웠다. 어떤 사랑은 진지한 문장보다 서툰 율동에 더 잘 담기기도 했다.
그날 우리는 산타였다.
진짜 산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순간 아이들에게는 꽤 그럴듯한 산타였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웃어주었으니,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그 짧은 겨울이 지나가고 또 다른 학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