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뒷방 ⑦ Je participe

1960년대 파리의 세 가지 참여

byWenza

1968년 5월의 파리. 벽에는 이런 낙서가 있었습니다. 1968년에 자유롭다는 것은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도시에서, 점거된 미술학교의 포스터 공방 '아틀리에 포퓔레르'는 손과 펜을 그린 포스터 한 장을 찍어냅니다. 동사 하나를 인칭별로 변화시킨 포스터인데, 끝 표현이 이상합니다.


나는 참여한다, 너는 참여한다, 그는 참여한다, 우리는 참여한다, 당신들은 참여한다, 그들은 이익을 본다.
Je participe, tu participes, il participe, nous participons, vous participez, ils profitent.

— 아틀리에 포퓔레르, 1968년 5월의 포스터 (『인공지옥』 3장 도판)


참여하는 것은 나·너·우리이고, 이익을 보는 것은 그들이라는 것이죠. 참여를 자유의 다른 이름으로도, 착취의 다른 이름으로도 쓰고 있었던 겁니다. 비숍의 『인공지옥』은 참여형 예술 100년의 역사를 다룬 바카라입니다. 3장 제목인 Je Participe 를 이 포스터에서 가져온 이유는 이렇습니다. '참여'라는 단어는 1960년대 파리에서 모두의 단어였어요. 드골 정부도 '참여'를 국정 슬로건으로 쓰기도 했고, 슬롯학자 투렌이 소비슬롯를 비판하려고 만든 '종속적 참여'라는 말을, 드골은 자발적 동의에 기반한 슬롯라는 긍정어로 뒤집어썼고요. 비숍의 3장은 이 단어를 두고 경쟁했던 1960년대 파리의 세 그룹을 나란히 놓습니다.


1)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2) GRAV 그리고 3) 장자크 르벨의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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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그룹부터 봅니다. 상황주의 인터내셔널(Situationist International, SI)은 기 드보르를 중심으로 1957년 결성된 그룹으로, 예술을 만드는 대신 삶 자체를 바꾸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들의 도구는 '표류(dérive)'로, 목적 없이 도시를 떠돌며 환경이 감정과 행동에 미치는 효과를 연구하는 걷기와 같은 부분이거나 '구성된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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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rtain founding members of the Situationist International in 1957.
통일된 분위기와 사건의 유희를 집단적으로 조직해 구체적이고 의도적으로 구성한 삶의 한 순간.
A moment of life, concretely and deliberately constructed by the collective organisation of a unitary ambiance and a game of events.

—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기관지 I.S. 창간호(1958)의 '구성된 상황' 정의, 『인공지옥』 3장에서 재인용


관객을 구경꾼으로 두는 스펙터클에 맞서, 모두가 함께 사는 순간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비숍이 기록에서 끄집어내는 사실들이 흥미로운데, 이들은 구성된 상황의 구체적인 사례를 거의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모방과 작품화를 피하려는 의도적 선택으로 보인다는 거죠. 더불어 이들은 상황마다 임시 연출자를 두는 위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반 관객과 일하는 데에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기들끼리, 점점 엄격해지는 가입 심사를 통과한 사람들끼리의 활동이었던 거죠. 많이 폐쇄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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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tra Storica Grav. Groupe de recherche d’Art Visuel. 1960 – 1968


두 번째 그룹은 정반대였습니다. GRAV(Groupe de Recherche d’Art Visuel, 시각예술탐구그룹, 1960년 결성)는 빛과 움직임을 쓰는 키네틱·옵아트 작가들의 공동 작업실로, 최대한 넓은 공공의 장에서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1963년 파리 비엔날레에 스무 개의 환경 체험으로 된 《라비린스》를 설치하면서, 이들은 「이제 신비화는 그만」이라는 선언문을 내놓습니다.


우리는 관객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거리낌을 덜어주고, 긴장을 풀어주고 싶다. 우리는 관객을 참여시키고 싶다. 관객을 스스로 작동시키고 변형하는 상황 속에 놓고 싶다. […] 자신의 행위 능력을 자각하고 온갖 남용과 신비화에 지친 관객은 스스로 ‘예술에서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We want to interest the viewer, to reduce his inhibitions, to relax him. / We want to make him participate. / We want to place him in a situation that he triggers and transforms. […] A viewer conscious of his power of action, and tired of so many abuses and mystifications, will be able to make his own 'revolution in art'.

— GRAV, 「이제 신비화는 그만 Assez des Mystifications」(1963), 『인공지옥』 3장에서 재인용


'관객을 참여하게 만들고 싶다'라는 표현이 재밌지 않나요? '만든다'는 말이 들어가는 순간, 무관심에서 해방시키겠다는 주장이 스스로 무너집니다. 관객이 할 수 있는 일은 작가가 마련한 요구를 올바르게 수행해서 작품을 완성해 주는 것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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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V. Groupe de Recherche d'Art Visuel(1960-1968)


그래도 GRAV는 거리로 나갔습니다. 1966년 4월 19일 화요일, 《거리의 하루》, 아침 8시 샤틀레 지하철 입구에서 승객들에게 작은 선물을 나눠주는 것으로 시작해, 샹젤리제에서는 조립했다 해체하는 구조물을, 오페라 앞에서는 행인이 직접 만질 수 있는 키네틱 사물을, 튈르리 정원에서는 거대한 만화경과 분수 위의 풍선을, 몽파르나스에서는 밟으면 움직이는 보도블록을 차례로 내놓고, 자정에 센 강변의 전자 조명 산바카라으로 하루를 마쳤습니다. 기록 사진 속 파리 시민들은 웃고 있습니다. 미래주의가 버라이어티 극장을 모델로 삼았다면, GRAV의 모델은 유원지였다고 비숍은 적습니다.


상황주의자들은 이것을 경멸했습니다. GRAV가 말하는 '자극된 관객'은 작가가 미리 짜둔 선택지를 수행하는 자일뿐이고, 그것은 스펙터클의 슬롯가 시민을 통제하는 방식이라는 것이죠. 즉, "참여가 불가능한 것에 대한 참여를 조직하는 것(organises participation in something where it's impossible to participate)"의 복제라는 겁니다. 참여하지 않을 선택지가 없는 참여는 소비슬롯의 구조를 통째로 반복한다는 비판이죠.


그렇다고 비숍은 SI의 의견에 동조하진 않아요. GRAV의 작품이 관객과의 상호작용 자체가 오락이 될 수 있지만, 대중을 작품의 재료로 만들 수도 심지어 대중을 조건화하고 마비시키는 새로운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비숍은 GRAV의 체험은 여러 사람 사이의 슬롯적 관계라기보다 개인과 사물의 일대일 관계였고, 지금(2010 연대 이후)이라면 참가적이라기보다 '상호작용적(interactive)'이라고 불러야 맞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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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벨의 해프닝 현장사진


세 번째 인물 르벨(Jean-Jacques Lebel)은 유럽 최초의 해프닝(1960, 베네치아)을 만든 사람으로, 알제리 전쟁에 반대하는 순회 축제에서 출발해 슬롯적 금기를 집단 의례로 풀어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는 이후 68년 혁명 이후, 해프닝이라는 예술적 행위가 삶에서 이미 실현됐다고 보았습니다. 예술을 삶으로 만든다는 아방가르드의 꿈이 혁명에서 완성 됐다는 거죠.

*68 혁명은 1968년 5월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학생운동인데, 학내 문제와 베트남전 반대가 겹치면서 소요가 커진 사건인데, 노동자들의 파업과 겹치면서 약 천만명 이상의 학생과 노동자들이 참여한 큰 사건이죠. 이 글 가장 첫 번째 이미지 포스터가 이 맥락에서 나오게 됩니다. 이 혁명은 결론적으로 정치적으로 드골 체제는 계속 유지되고, 문화적으로는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이 생산되게 됩니다.


르벨은 68 혁명을 통해 해프닝이 이미 실현됐다고 봤습니다. 예술을 삶으로 만든다는 아방가르드의 꿈이 혁명에서 완성됐다는 거죠. 상황주의자들의 68 혁명이 자신들의 사상의 실현이라고 주장했지만, 미완성된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68년 이후로 SI은 차례로 탈퇴하고, GRAV 또한 해산하게 됩니다.


이 세 가지 사례에서 비숍은 세 그룹 모두 참여자가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부르주아 예술을 그렇게 공격했던 드로브와 르벨은 유복한 집안 출신으로 그들의 예술가, 보헤미안 서클 바깥의 관객은 상상하지 않았어요. 유일하게 관객을 찾은 GRAV는 관객을 계급도 차이 없는 보편적 행인으로 상정하고 진행하게 되죠. 참여를 외치는 이들은 정작 누가 참여하는가를 묻지 않았다는 거죠. 앞선 포스터에서 물었던 참여하는 자와 이익을 보는 자가 같은가?라는 질문을요.


GRAV의 "우리는 관객을 참여하게 만들고 싶다"라는 문장은 오늘날의 전시기획 언어와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습니다. 참여시키는 기획가 참여가 일어나는 기획 사이의 거리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술과 전시 이 사이에서 관객은 어느 위치에 있을까요? 그리고 관객을 어떻게 상정하고 있을까요?


다음 글은 지구 정반대 편에 있는 아르헨티나 작가들은 참여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진행했을지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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