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의 이야기는 누가 쓸까요?
참여형 전시가 끝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요?
공간 안의 전시품은 철수되고, 연출된 공간은 철거됩니다. 참가자분들은 각자 삶으로 돌아갑니다. 남는 것은 기록이겠죠. 전시도록, 결과 보고서, 보도자료, 인터뷰, 그리고 텍스트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추후 누군가 그 프로젝트를 알고 싶다면, 아카이브 된 자료들이겠지요.
클레어 비숍은 『인공지옥』 서론에서 연구자로서 이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힙니다. 참가예술은 일단 사진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미지만으로 참가예술을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하거나 워크숍·상영회·세미나에 참석하는 모습을 담은 일상적인 사진은 특정 프로젝트의 개념과 맥락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아니 사실상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To grasp participatory art from images alone is almost impossible: casual photographs of people talking, eating, attending a workshop or screening or seminar tell us very little, almost nothing, about the concept and context of a given project.
- 클레어 비숍, 『인공지옥』 서론
생각해 보면 맞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하는 사진은 어느 프로젝트나 비슷하게 생겼으니까요. 회화라면 그림을 다시 보면 되고, 조각이라면 작품 앞에 다시 서면 되는데, 참여 프로젝트는 끝나는 순간 작품 자체가 사라집니다. 그러면 연구자는 아카이브 된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비숍은 말합니다.
참가예술을 둘러싼 지배적 서사는 흔히 각 프로젝트를 맡은 큐레이터들의 손에 놓여 왔다. 프로젝트가 전개되는 전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 그들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이 연구를 시작하게 한 중요한 동기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큐레이토리얼 서사 안에서 비판적 거리를 확보할 여지가 차단되는 데 대한 불만이었다.
…the dominant narratives around participatory art have frequently come to lie in the hands of those curators responsible for each project and who are often the only ones to witness its full unfolding […] An important motivation for this study was my frustration at the foreclosure of critical distance in these curatorial narratives.
-『인공지옥』 서론
즉, 참여 프로젝트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본 사람은 대개 기획자-큐레이터뿐입니다. 그렇게 참여 프로젝트의 공식 내용은 기획자가 쓰게 되고, 그 이야기는 당연하게도 실패담이 되기 어렵습니다. 물론 다음 사업을 위한 예산을 받아야 하고, 참가자들에 대한 애정도 있으니까요. 그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마무리는 보통 긍정적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비판적인 관점을 남기기가 사실상 불가능 한 겁니다.
이 진단은 지난 글들과 바로 연결됩니다. 전시 뒷방④ Spectatorship에서 언급한 "수동적 감상을 뛰어넘어"라는 표현도 결국 기획 쪽에서 쓴 글이죠. 우리가 관람하는 전시회에서 관객을 어디에 놓는지를 알고 싶을 때, 전시를 기획하고 판매한 사람의 문장을 그대로 믿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게 언명하고, 실제 배치는 따로 확인돼야 하는 두 개의 층인 겁니다.
흥미로운 건 클레어 비숍이 자기 자신도 이 문제에서 회피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바카라의 연구 대부분은 7년에 걸친 작가·큐레이터와의 대화와 인터뷰였다고 고백하면서, 그는 이렇게 적습니다.
그러므로 이 바카라의 숨은 서사는 회의적 거리 두기에서 관계적 얽힘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제작자들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무력하면서도 비판적 우월감에 기대어 안전을 누리던 나의 안락한 외부자적 위치는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재조정되어야 했다.
The hidden narrative of this book is therefore a journey from sceptical distance to imbrication: as relationships with producers were consolidated, my comfortable outsider status (impotent but secure in my critical superiority) had to be recalibrated along more constructive lines.
-『인공지옥』 서론
이렇듯 비숍은 방금 큐레이터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이 바카라의 재료인 그들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바카라을 작성하고 있는 겁니다. 오랜 기간 관계를 맺다 보면, 그들의 기획이나 내용에 대해 모질게 쓰긴 어려워지죠. 제 3자로서 분석할 때는 마음껏 비판할 수 있었지만 그 비판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고, 안으로 들어가 관계를 맺자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는 대신 그 '마음껏'이 사라졌다는 점이죠. 저는 이런 관점에서 비숍의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기만 빼놓고 하는 비판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다양한 전시공간 혹은 대안공간, 갤러리, 미술관의 서문이나 글을 읽다 보면, 비판적으로 보는 것보다 추앙하거나 온갖 미사여구나 미학적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죠. 결론적으론 해당 전시가 좋다는 겁니다. 부정적 텍스트는 전시장에 놓을 자리가 없습니다. 그런 부분을 알면서도 비숍이 이 범위 안에 들어가서 스스로도 비판의 대상이 되려고 한 점도 인상 깊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TH4wYhWH54
다음 글은 2011년도에 로스앤젤레스의 한 미술관 갈라 디너에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 An Artist's Life MANIFESTO (2011) 작품을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회전판 위로 머리만 내민 여든다섯 명의 사람들이 있는 파격적인 퍼포먼스 작품이었는데, 이들은 참여자일까요? 아니면 노동자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