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체험
강원도 양양군 귀촌 체험 프로그램에 선정된 뒤, 입소 날짜가 되자 체험 기간 동안 사용할 물건들을 차에 한가득 싣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서면에 있는 펜션으로, 홍천군 내면과 양양군 서면을 잇는 해발 1,013m의 구룡령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펜션에는 총 9개의 객실이 있었고, 귀촌 체험 참가자들은 그중 6개 객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내가 배정받은 방은 2층 건물의 1층 가운데에 있었다.
방 안에 들어서자 펜션이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짙은 자주색에 은색으로 포인트를 준 싱크대, 금사로 장식된 금색 꽃무늬 커튼, 옹이무늬가 도드라지는 목재 무늬 루바로 마감된 벽이 눈에 들어왔다. 구식 인테리어를 보자 숙소에 대한 기대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방도 1층에 있어 햇볕이 잘 들지 않을까 봐 걱정스러웠다.
귀촌 체험 기간에는 직접 요리해 식사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곧바로 주방 기물부터 확인했다. 1인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전기밥솥이 너무 컸고, 냄비는 바닥 코팅이 심하게 손상된 데다 지저분해 보여 도저히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전기포트도 오래되어 낡은 상태였다. 주방 기물들을 살펴보고 나니 이곳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펜션이니 기본적인 주방 기물은 갖춰져 있을 거라고 생각해 따로 챙겨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방 기물들을 살펴보다 막막해진 나는 숙소를 관리해 주시는 사무장님께 전기포트와 작은 냄비가 여분으로 있는지 여쭈었다. 사무장님은 다음 날 확인해 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다. 숙소에 덩그러니 홀로 있으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왔는데, 앞으로 이곳에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낯설고 막막했다. 평소 머무는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에게 이곳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곳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직접 경험해 보기 위해 찾아온 곳이 양양이었다. 운전이 익숙하지 않아 먼 거리를 운전하는 일이 두렵고 부담스러웠지만, 마음을 다잡으며 이곳까지 왔다. 어렵게 도착한 숙소마저 기대와 다르자 내가 과연 옳은 선택을 한 것인지 자신이 없어졌다. 휑한 숙소 안에 혼자 있으니 불안함에 휩쓸릴 것 같았다. 이 불안을 가라앉히려면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지도를 찾아보니 차로 25분 거리에 있는 양양읍에 다이소와 슈퍼마켓이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읍내에 나가 필요한 물건과 먹을 것을 사 오기로 했다.
낯선 곳에 대한 불안함이 쇼핑에 대한 기대로 바뀌자 마음이 편해졌다. 다이소에는 크기와 종류가 다양한 냄비가 5천 원에 판매되고 있었고, 주방 조리 도구도 여러 가지 갖춰져 있었다. 코팅이 잘된 작은 편수냄비를 고르기로 했다. 노란색으로 할지 흰색으로 할지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하다 보니 숙소에서 봤던 코팅이 벗겨진 대용량 냄비는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냄비 문제는 겨우 5천 원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숙소의 주방 기물 중에는 지저분해 보여 사용하기 꺼려지는 것들도 있었다. 우선 깨끗하게 설거지해 보고, 그래도 사용하기 꺼려지면 다이소에 다시 와서 사면될 일이었다. 숙소에서 마주한 다른 문제들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될 것 같았다. 쇼핑을 하니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마음이 풀렸다. 결국 흰색 냄비를 골랐는데, 크기와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으로는 슈퍼마켓에 들러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담았다. 빈 냉장고를 채우는 일이었기에 냉장고에 남아 있는 식재료를 고려하지 않고 먹고 싶은 것부터 자유롭게 고를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냉장고에 이미 식재료가 있었다면, 남아 있는 재료로 무슨 요리를 할지 고민하며 필요한 것들을 골랐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머무는 동안 먹을 식재료를 새로 구입하는 것이었기에, 먹고 싶은 음식을 먼저 떠올리고 필요한 재료를 자유롭게 고를 수 있었다.
숙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침구에도 있었다. 처음 며칠간은 낯선 침구에 적응하는 데다 요도 얇아 잠자리가 불편했다. 계속 불편함을 느끼다 보니 두꺼운 요를 하나 사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다. 마침 귀촌 체험에 함께 참여한 다른 참가자도 요가 얇아 잠자리가 불편했는지 요를 하나 더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다. 나도 이때다 싶어 잠자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요를 하나 더 받을 수 있는지 여쭈었고, 덕분에 요를 하나 더 받을 수 있었다. 바닥에 요를 하나 더 깔자 잠자리가 한결 편안해졌다.
사용감이 많아 제대로 작동할지 걱정스러웠던 전기포트는 새것으로 받을 수 있었다. 귀촌 생활 내내 전기포트를 유용하게 사용했기에 새것으로 받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사용하기에 적당한 크기의 냄비도 하나 받을 수 있었다. 다이소에서 직접 고른 냄비까지 두 개를 갖추고 나니 요리할 때 한결 여유가 생겼다. 냄비 하나로 모든 요리를 해결하지 않아도 되니 취사도 훨씬 편안해졌다.
숙소에 있던 전기밥솥은 혼자 사용하기에는 너무 커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밥을 직접 짓는 대신 즉석밥을 먹었는데, 처음에는 맛있게 느껴졌던 즉석밥도 매일 먹다 보니 점점 물렸다. 갓 지은 따뜻한 밥이 그리워진 나는 결국 쌀과 1인용 전기밥솥을 새로 구입했다. 새 밥솥으로 처음 밥을 지어먹었을 때는 늘 먹던 밥맛에 안도감마저 들었다. 비로소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직접 쌀로 밥을 지어먹으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숙소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청소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나는 새로운 공간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았던 집들을 떠올려 보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져 과연 그곳에 애정을 가질 수 있을까 싶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곳에서 생활하다 보면 어느새 그 공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막상 이사할 때가 되면 정든 공간을 떠나는 것이 늘 아쉬웠다.
공간에 정이 든다는 것은 그곳을 내 생활에 맞게 조금씩 바꾸고 가꾸어 가는 일이기도 했다.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갖추고 불편했던 점들을 해결해 가자 생활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그러자 문득 방바닥을 걸레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했어야 하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제는 이곳도 내가 생활하는 공간이 되었으니, 그동안 미뤄 두었던 방바닥을 깨끗하게 닦기로 했다. 발밑에 먼지가 느껴지던 방바닥을 물걸레로 깨끗이 닦고 나니 그제야 이곳이 내 공간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비로소 이 낯선 방과 진짜 첫인사를 마친 기분이었다.
공용 세탁기를 이용하는 일에도 익숙해지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갖추면서 일상의 윤곽도 잡혀 갔다. 하지만 한결 편안해진 생활에도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 앉은뱅이 밥상에서 식사는 물론 노트북 작업과 글쓰기, 독서까지 하다 보니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바닥에 앉아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세를 바꾸거나 일어설 때마다 손으로 바닥을 짚어 몸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 불편했다. 다리가 저리기 시작하면 찌릿한 느낌이 가실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잠시 머무는 곳에 부피가 큰 테이블과 의자까지 사는 것이 맞을지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결국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를 마련했다. 앉은뱅이 밥상에서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불편함이 점점 커졌기 때문이다. 테이블과 의자까지 갖추고 나자 방 안에서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비로소 편안해졌다.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다 보면 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같다.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숙소의 장점도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층에서 지내는 것이 괜찮을까 염려했지만, 막상 생활해 보니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무척 편했다. 짐을 옮기거나 급히 무언가를 가지러 방에 들어갔다 나와야 할 때도 문만 열면 바로 드나들 수 있어 좋았다. 게다가 주변에 건물이 없어 1층인데도 햇볕이 잘 들었다.
샤워기 수압이 강한 데다 기다릴 필요 없이 따뜻한 물이 바로 나오는 것도 최고였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나오는 따뜻한 물과 시원한 수압 같은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냉난방도 빠르게 작동해 무척 편리했다. 기본적인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 좋은 숙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건 생각보다 중요했다. 사소한 불편함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일상이 한결 편안해졌다.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졌던 공간이었지만,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갖추고 내게 맞게 바꿔 가면서 이곳에도 조금씩 정이 들었다. 완벽하지 않은 낯선 공간이라도 내 손길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가다 보면 그곳이 어디든 나만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을 조금씩 꾸려 나가면서 앞으로 이어질 귀촌 생활도 기대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