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체험
시골에 대해 나름대로 갖고 있던 이미지가 있었다. 나는 혼자 시골에서 집을 짓거나 고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유튜브 영상을 좋아해서 자주 보곤 했다. 영상 속 사람들은 아무리 작은 밭이라도 직접 가꾸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마당 한편에 있는 작은 밭조차 꾸준히 돌보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나이만큼이나 오랫동안 주말농장을 가꾸어 오신 부모님 덕분에 농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 있었다.
겨울에는 이듬해 농사를 준비하고, 봄에는 씨앗을 뿌린다. 작물이 자라는 동안에는 잡초를 뽑고 밭을 돌보며 수확할 때까지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수확이 끝나면 그것으로 농사가 완전히 마무리되는 것도 아니다. 다음 농사를 위해 다시 준비해야 한다. 농사란 이처럼 한 해 내내 노동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처음 귀촌 체험을 떠올렸을 때, 농사일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부모님의 주말농장이나 개인의 텃밭처럼 작은 규모의 농사가 아니라, 농작물을 판매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어쩌면 이번 체험을 통해 귀농이라는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제2의 인생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농사가 힘든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어려움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먼저 직접 경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귀촌 체험은 시골 마을 주민들과 함께 농사일을 돕는 것이었다. 수확물을 조금 얻거나 임금을 받기도 하면서 농사에 직접 참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농작물을 재배하는 과정뿐 아니라 수확한 농산물을 가공하는 일에도 참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농사일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분야를 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곳에서의 귀촌 체험은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달랐다. 나는 귀촌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머문 마을은 양양군 서면에 자리한 산촌이었고, 주민의 절반 이상이 65세 미만이어서 농촌 마을치고는 젊은 층이 많이 사는 편이라고 했다. 그리고 주민 대부분은 펜션이나 야영장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 가고 있었다. 논과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던 내게는 예상치 못한 모습이었다. 이를 통해 내가 귀촌에 대해 얼마나 한정된 이미지만 갖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머문 마을이 자리한 양양군 서면은 동해안 해변으로 잘 알려진 양양군에서도 조금 특별한 곳이었다. 양양군의 다섯 개 면 가운데 유일하게 바다와 접하지 않은 내륙 지역이기 때문이다. 강원도 인제군, 평창군과 접해 있는 이곳은 마을 주변으로 높은 산들이 겹겹이 펼쳐져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에서 내가 경험하게 될 귀촌 체험은 어떤 모습일까. 막연히 농사일을 떠올리며 이곳에 왔지만, 실제로 참여한 프로그램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마을의 사무장님은 참가자들이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여러 프로그램을 정성껏 준비해 주셨다. 덕분에 양양에 머무는 동안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고,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누며 예상하지 못했던 즐거움도 누릴 수 있었다.
귀촌 체험은 크게 양양의 명소 방문, 이장님 댁 사모님께서 준비해 주시는 음식 만들기, 귀촌 후 정착에 성공한 선도농가 방문, 이장님 댁 텃밭 가꾸기, 마을 일손 돕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양한 활동에 참여한 덕분에 양양에 머무는 동안 양양과 시골 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갈 수 있었다.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가보지 않았을 양양향교나 오산리 선사유적지, 양양 스마트팜 같은 곳도 방문했다. 장소 자체도 좋았지만, 귀촌 체험의 일환으로 방문한 덕분에 해설까지 들을 수 있어 더욱 뜻깊었다.
또한 이장님 댁에서 사모님의 지휘 아래 모주와 김치, 곶감, 고추장, 고추장아찌 등을 만드는 체험도 했다. 요리 솜씨가 좋으신 사모님께서 차근차근 알려 주신 덕분에 초보자인 우리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었다. 음식 만들기는 서울에서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이장님 댁에 모여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는 시간은 무척 즐거웠다.
모주를 만들던 날에는 사모님께서 부침개를 부쳐 주셔서 다 같이 낮술도 한 잔씩 곁들였고, 김치를 만들던 날에는 칼국수를 끓여 주셨다. 김치를 만들던 날에는 계곡 앞 야외 테이블에서 배추를 씻고 절인 뒤 겉절이를 만들었는데, 유난히 맑은 날씨에 탁 트인 계곡 풍경까지 더해져 한층 즐거운 시간이었다. 갓 만든 김치도 맛있었지만, 사모님께서 함께 먹으라고 끓여 주신 칼국수도 정말 맛있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고 둘러앉아 먹으며 웃었던 시간은 오래도록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선도농가 방문도 인상 깊었다. 양양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나도 이곳에서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귀촌 체험이 아니었다면 양양에 정착해 자신의 사업체를 탄탄하게 꾸려 가는 분들을 만나 그분들의 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을까. 이런 만남 역시 귀촌 체험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선도농가를 방문하면서 양양에서 살아가는 일뿐 아니라 나만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일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사업을 한다는 것이 내 인생에서 일어날 리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퇴사한 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내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일을 시작하려면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던 때에 양양에 정착해 자신의 일을 꾸려 가는 분들을 만났다. 자신이 선택한 일을 묵묵히 이어 가는 그분들의 모습이 무척 멋있었다. 선도농가 방문은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던 내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 밖에도 방향제 만들기, 시계 꾸미기, 에코백 꾸미기 등 다양한 체험을 했다. 처음에는 이런 활동이 귀촌과 무슨 관련이 있나 싶기도 했고,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 생각이 달라졌다. 에코백에 패브릭 펜으로 그림을 그릴 때는 무엇을 그려야 할지 막막했지만, 어느새 예술혼을 불태우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방향제를 만들 때는 조향사가 된 듯한 기분으로 마음에 드는 향을 만들기 위해 열중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체험에 빠져들 만큼 재미있었다.
이처럼 즐거운 경험을 많이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남았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시골에서 다양한 체험을 해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이곳에서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 가는지, 그 일을 통해 어떻게 소득을 얻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주민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경험한다면, 나 역시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능하다면 산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이 가을철에 이곳의 특산품인 버섯을 채취하거나 손질하는 일에 참여해 보고 싶었다. 펜션이나 야영장을 운영하는 일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더라도 주민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경험해 보고 싶었다. 퇴사 후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양양군에 정착해 살아갈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공식 프로그램에서 생업이나 소득처럼 현실적인 문제를 깊이 다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귀촌 체험에 참가한 모든 사람이 나처럼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 고민하는 것도 아닐 테고, 나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다양한 체험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귀촌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내게는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곳에 와서 생활하게 된 이상, 내가 궁금한 것을 알아가는 일은 결국 내 몫이었다. 주민들이 어떤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 가는지, 이곳에서 정착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싶다면 내가 먼저 묻고 살펴보아야 했다. 귀촌 체험이 그 답을 모두 알려 주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무엇을 더 알아보아야 하는지 깨닫게 해 주었다.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찾아 이곳에 온 내게 이번 체험은 그 가능성을 탐색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