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절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청소나 빨래를 하면서 수다를 떨다 보면 금세 하루가 다 지나갔다. 함께 공양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순간 서로 어떻게 여기에서 머물게 되었는지를 꺼내놓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회사를 그만둔 이유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퇴사 직후에 칩거를 했을 때에는 회사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퇴사를 했다고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전 온라인 게임 동료들에게도 연락을 할 수 없었고, 나의 이직을 응원해 준 이들에게도 연락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늘 퇴사를 꿈꾸었지만, 그것은 언제나 내 의지로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마지막 온라인 게임에서는 프로젝트가 잘 되지 않았고, 그 이유는 내가 그 프로젝트를 해낼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잘하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울에서 회사를 그만둘 때만 해도 이 일이 오래도록 상처로 남을 것 같았다. 내가 그토록 애를 썼음에도 프로젝트가 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결국 그 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내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이 이런 결과로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는 이 상처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어쩌면 오래도록 안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퇴사 절차를 밟으며 상담을 받았을 때, 상담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주셨다. 프로젝트가 잘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 프로젝트에서의 결과일 뿐, 그것이 내 인생이나 커리어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는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 스스로도 내가 회사라는 환경에 잘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회사에 잘 맞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맞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마치 그동안의 온라인 게임생활에 대한 성적표를 받아 든 것 같았다.
그래서 프로젝트의 실패가 단순히 하나의 일에 대한 결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 내가 원래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동안 쌓아온 능력과 경력까지 되짚어보며 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를 곱씹었다. 나는 16년이나 온라인 게임생활을 했으면서도, 늘 내가 제대로 잘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이번 일은 그 오래된 의문에 마침내 답이 내려진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프로젝트가 잘되지 않았다는 그 사실만을 분리해서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절에 와서는 그 생각을 계속 붙잡고 있을 틈이 없었다. 절에서 지내는 동안 무언가를 특별히 극복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회사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더라면 최근의 실패를 계속 곱씹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럴 틈이 없었다. 매일 예불을 드리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사람들과 밥을 먹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잠들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퇴사를 실패로 받아들이던 마음도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회사는 왜 그만두었냐는 말에 “프로젝트가 망해서요”라고 말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숨기고 싶거나 감추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말로 꺼내놓으니 생각보다 큰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프로젝트가 망했다’는 이야기는 이전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수도 없이 들어봤던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렇구나” 하고 지나갔지, 그 사람의 경력이나 삶 전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내 일이 되고 나니, 나는 이 하나의 결과를 내 능력과 지난 16년의 회사생활 전체에 대한 평가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나 역시 그 일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볼 수 있었다. 프로젝트가 잘되지 않은 것은 그 프로젝트 하나의 결과일 뿐, 그것이 지난 16년 회사생활 전체의 결과는 아니었다.
프로젝트가 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했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 실패를 없었던 일처럼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결과를 계속 붙잡고 나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이 상처가 오래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상처에서 빠져나와 있었다.
절에서 지내며 종무소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전 일할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종무소 직원들은 불편한 것을 발견하면 직접 방법을 찾아보고, 필요한 것을 만들어 개선하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이 생각한 것을 실제로 해보고 큰스님께 보고 드리면, 큰스님은 잘했다며 칭찬해 주셨다.
나도 예전에는 내가 맡은 일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불편한 것을 발견하면 해결할 때까지 방법을 고민하곤 했다. 무언가를 만들어 실제로 사용되게 하는 일에서 재미와 뿌듯함을 느꼈다. 회사라는 환경이 힘들었던 것과, 무언가를 만들고 개선하며 일하는 즐거움은 다른 문제였다. 종무소 직원들의 모습을 보니, 나에게도 다시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예전의 나는 늘 다음을 정해놓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두면 어디로 갈지, 어떤 일을 할지, 앞으로 무엇을 할지 미리 정해놓아야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퇴사 후에도 빨리 다음 일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진공 같은 상태로 존재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어려웠다.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그 상태가 실패한 상태처럼 여겨지고는 했다.
그런데 절에서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 정하지 않아도 하루를 보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침이 되면 일어나 예불을 드리고, 청소를 하고, 밥을 먹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일 무엇을 할지는 몰라도 오늘 해야 할 일은 있었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미래를 정하지 않아도 하루는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나는 그날 해야 할 일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더러운 곳이 보이면 ‘오늘은 그럼 저기까지 한번 청소해 볼까’ 하고 청소를 했다. 청소를 하고 나면 깨끗해진 곳이 눈에 보였고, 그럴 때마다 작은 뿌듯함이 생겼다. 다음 날에도 또 할 일이 있었고, 그 일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하루를 보냈다.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몰라도, 적어도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또렷이 알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오늘 하루를 충실히 보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회향할 시간이 다가왔다. 불교에서는 수행이나 일정을 마칠 때 ‘회향(回向)’이라는 말을 쓴다. 방향을 돌려 나아간다는 그 뜻처럼, 절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회향할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이곳에서 무언가 답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절에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지 계속 떠올렸고, 내가 절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안 작성을 끝내고 싶었다. 절에서의 시간이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답안지를 작성해야 할 것 같았다.
절에 처음 왔을 때에는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나에게 필요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아무런 답도 찾지 못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지도 못한 채 절을 나왔다. 처음 절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처음과 달리 그것이 실패한 상태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해결된 것은 없었지만, 처음부터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가수 잔나비의 노래 <슬픔이여 안녕>에 나오는 “답을 쫓아왔는데 질문을 두고 온 거야”라는 가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를 템플스테이로 향하게 했던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당장은 그 답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는 감사한 마음을 안고 회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