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체험
귀촌 체험은 입소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장님과 농업기술센터 주무관님, 마을 사무장님이 참석하셨다. 귀촌 체험 참가자는 나를 포함하여 총 6명이었다. 이 마을은 가족이나 부부 단위가 아닌 1인 단위로만 참가자를 선발했는데, 나도 그 점이 마음에 들어 부담 없이 지원할 수 있었다. 만약 부부 단위로 참가하는 곳이었다면 나 혼자 소외될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생겼을 것 같다. 하지만 이곳은 모두 1인 단위로만 참여할 수 있었고, 각자 숙소도 따로 배정받았기 때문에 생활하면서 불편함은 없었다.
귀촌 체험은 두렵고 조심스러운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이 마을에 지원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이전 참가자의 후기 덕분이었다. 이전 기수에 참여한 33세 여성 참가자가 이곳에서 잘 지내다 갔다는 글을 읽고 나도 용기를 얻었다. 누군가 무심히 남긴 몇 줄의 기록이 낯선 길을 가려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용기가 되는지, 내게 얼마나 다정한 이정표가 되어 주었는지 모른다. 이것은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어떤 선택을 앞두고 두려움이 앞설 때, 이미 그 길을 걸어 본 사람이 건네는 ‘괜찮았다’는 한마디는 막연한 걱정을 덜어 주고 한 번 해 볼 수 있겠다는 용기를 준다.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혼자 낯선 곳에서 생활하는 일은 걱정스럽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린대로는 농림축산식품부와 관련 기관이 운영하는 귀농귀촌 플랫폼이었고, 귀촌 체험은 양양군 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을 받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사무장님도 귀촌 체험을 시작하기 전 전화 통화를 했을 때, 불안한 요소가 있을 수 있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런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곳에 올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무장님은 알고 보니 40대 여성이셨고, 나와 나이 차이도 그리 크지 않았다.
귀촌 체험 입소식에서 처음으로 함께 생활할 참가자들을 만났다. 이번 기수의 참가자는 나를 비롯해 60대 여성 한 분과 60대 남성 세 분, 50대 남성 한 분이었다. 나는 평소 50~60대 남성들을 편하게 대하지 못했다. 온라인 게임생활을 하면서 만난 이들 대부분이 관리자나 임원이었기 때문이다. 내 업무 평가와 커리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들 앞에서는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래서 업무상 잘못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지적하고 바로잡기보다는 지시를 따르고 조직의 분위기에 맞추려 했다.
30대 후반에 경영대학원에 입학했을 때도 비슷했다. 50대 혹은 60대 남성분들 앞에서는 선뜻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상사나 임원의 눈치를 보며 지냈고, 대학원에서도 나보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남성분들을 동등한 동료 학생으로 대하기 어려웠다. 온라인 게임생활을 하면서 그 나이대의 남성들이 나보다 직급이나 지위가 높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원에서도 그들을 동등한 동료로 대하기보다 나도 모르게 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귀촌 체험 입소식에서 그 나이대의 남성 네 분을 처음 마주했을 때, 온라인 게임이나 대학원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이전의 경험 때문에 이번에도 비슷한 관계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귀촌 체험에서 만난 분들은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모습과는 달랐다. 이곳에서는 온라인 게임이나 대학원에서처럼 상대의 직바카라이나 직급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기 위해 이곳에 온 분들이었다. 새로운 공간에서 생활하는 일에 진지하게 임하셨고, 프로그램에도 열의를 갖고 참여하셨다. 나이가 들면서 어디를 가도 내가 어린 축에 속하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었는데, 이번 귀촌 체험에서는 내가 가장 어렸다. 나이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분과는 25살이나 차이가 났다. 내가 이번 귀촌 체험의 최연소 참가자라는 사실 때문인지 모두 편하게 대해 주셨고, 덕분에 처음의 긴장도 금세 풀렸다.
귀촌 체험을 하는 동안에는 40대 여성분인 사무장님, 그리고 이장님의 사모님과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게다가 숙소 바로 옆방에는 60대의 여성 참가자분의 숙소가 있어서 든든했다. 덕분에 혼자 생활하면서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귀촌 체험에 오기 전에는 안전에 대한 걱정이 많았고,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막상 생활해 보니 걱정했던 것보다 안전하다고 느껴졌다.
함께 생활하면서 참가자들의 배려를 느낄 수 있는 순간도 많았다. 이번 기수의 대표를 맡은 회장님은 단체로 이동할 일이 있을 때마다 운전을 도맡아 해 주셨고, 다른 참가자들도 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하면 서로 나누어 먹었다. 함께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하고, 회를 사 먹기도 했다. 그렇게 누군가 먼저 내어준 음식과 시간, 작은 도움들이 모여 낯선 곳에서의 생활을 채워 주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낯선 곳에서도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었다.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살아온 이야기가 오갔다. 어떻게 귀촌 체험에 오게 되었는지, 이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이야기하다 보면 참가자들이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도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남들 못지않은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스무 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살아온 시간은 아직 짧게 느껴졌다.
내 인생이 약간 매콤한 까르보 불닭이라면, 그분들의 인생 이야기는 훨씬 매운 핵불닭마라맛쯤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분들이 매운 인생을 살아오신 건지, 아니면 살아온 세월만큼 매운맛이 더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건강이 좋지 않았다가 회복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쉽게 위로의 말을 보탤 수 없었다. 그런 시간을 지나온 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각자 살아온 환경과 경험은 달랐지만,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생활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온라인 게임생활을 할 때는 주변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았다. 각자 맡은 일을 해내고 주어진 자리에서 살아가는 데 집중하다 보면, 앞으로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는 이야기할 여유가 없었다. 혼자서 이런 고민을 오랫동안 해왔는데, 비슷한 고민을 해온 사람들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그리고 나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였다면 나는 이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을까. 온라인 게임이나 대학원에서 만났다면 상대가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 어떤 직바카라을 맡고 있는지부터 의식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판단할 때 현재의 직위나 직급, 재직 회사와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정보보다 각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가 더 궁금했다. 서울에서는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느라 마주칠 기회조차 없었을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게 다가왔다.
함께 지내는 분들에게는 낯선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친화력이 있었다. 동네에서 처음 마주친 사람에게도 먼저 인사를 건네고, 가벼운 안부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동네 사정도 하나둘 알게 되었다. 어떤 가게가 있는지, 가게 주인 분들은 어떤 분인지까지 알게 되었다. 귀촌 체험 참가자 중 한 분은 하루에 세 번 다니는 마을버스를 타고 장날 읍내에 나갈 때마다 함께 버스를 타는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옆 동네에 빈집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셨다. 이처럼 동네 사람들과 나눈 대화는 자연스럽게 동네 소식으로 이어졌다. 낯선 곳에서도 먼저 인사를 건네고 말을 붙이면 조금씩 아는 사람이 생기고, 그만큼 생활의 반경도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분들을 보며 알게 되었다.
평소의 나라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이어갈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지내는 분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고 자연스럽게 말을 붙이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조금씩 따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몇 번 반복하다 보니 모르는 사람과 마주쳤을 때 말없이 눈을 피하고 지나치는 것보다 먼저 인사를 건네는 편이 오히려 더 편하게 느껴졌다. 가벼운 인사에서 시작된 대화가 즐거운 순간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덕분에 동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기도 했다. 먼저 다가가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그렇게 해서 얻는 것도 많았다.
호의를 받아들이는 방식에서도 배울 점이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해 누군가 커피나 음식을 권하면 으레 “아니요, 괜찮아요”라며 사양하곤 했다. 나 때문에 상대방이 무언가를 챙기거나 수고하게 만드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께 지내는 분들은 누군가 호의를 건네면 “감사합니다!” 하고 기분 좋게 받으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괜찮다며 거절했던 호의들이 꼭 사양해야 할 것만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호의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역시 상대방의 마음을 존중하는 방식일 수 있었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그분들의 태도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내 방식도 돌아보게 했다.
귀촌 체험을 하면서 모든 순간이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생활하다 보면 때로는 불쾌한 일을 겪거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혼자였다면 그런 일을 오랫동안 곱씹으며 마음에 담아두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께 생활하던 분들은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감정을 오래 끌고 가기보다 적당한 선에서 털어내고 넘어가셨다. 불쾌한 상황에 똑같이 대응하기보다 마음을 다잡고 품위를 지키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분들을 보면서 나 역시 마음에 걸리는 일을 오래 붙들고 있기보다 적당한 선에서 내려놓는 법을 조금씩 배웠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때 그냥 넘어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귀촌 체험에서 좋은 분들을 만났다고 해서 그 나이대의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공공장소에 머물면서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50~60대 남성들을 여러 번 보았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나도 모르게 그 나이대 남성들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귀촌 체험에서 만난 좋은 분들이 그동안의 불쾌한 기억을 없애 준 것은 아니다. 다만 그분들과 함께 지내면서 내가 경험해 온 모습만으로 그 나이대 남성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겪은 일이 분명한 사실이라고 해도, 그 경험만으로 다른 사람까지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귀촌 체험에서 만난 분들은 내가 살아온 방식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먼저 인사를 건네고, 누군가의 호의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불쾌한 일이 생겨도 감정을 오래 붙들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조건 참고 넘어가는 것만은 아니었다.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면 일단 말을 꺼내 보고, 자신의 의견을 전할 때도 상대방에게 무례하지 않게 이야기하셨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방법을 찾아가다 보면 실제로 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풀리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꼭 하나의 방식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동안 나는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도, 불쾌한 일을 적당한 선에서 털어내는 일도, 필요한 말을 상대에게 전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분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씩 따라 해 보면서, 내가 어렵게 생각했던 일들도 다른 방식으로 해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 온 분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활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시간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삶의 방식을 배워 가는 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