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바카라 한 권이 되다
언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처음은 글이라기보다 메모에 가까웠다는 건 분명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마음에 남는 문구를 적어 두고,
아이들이 순간순간 내뱉던 말들과 엄마와 통화하며 들었던 이야기들도 자주 메모했다.
본격적으로 글을 남기기 시작한 건 코로나 시기였다.
그전까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메모들을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글 하나를 완성하는 데 여덟 시간이 걸린 적도 있었다.
대단한 글은 아니었다.
그저 나의 꿈에 대해 쓴 글이었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창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식어버린 커피를 몇 번이나 다시 데웠는지도 모르겠다.
노트북 화면에는 지웠다 다시 쓴 문장들이 끝도 없이 남아 있었다.
막연하게 떠다니던 생각들을 문장으로 꺼내 놓다 보니,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가 조금씩 선명해졌다.
글을 다 쓰고 나자 정말 그 꿈에 가까워진 것처럼 마음이 벅찼다.
그 뒤로는 무슨 생각이 들면 일단 적어 두는 사람이 되었다.
잘 써야겠다는 마음보다는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나보다 잘 쓰는 사람들은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색깔의 글을 쓰는 사람은 결국 나 혼자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남을 따라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나를 잃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친구에게 처음 문예전 글을 보여주던 날도 기억난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니 온몸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내 마음을 통째로 꺼내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한참 뒤 도착한 답장에는 웃는 표시가 길게 붙어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글을 읽어 내려갔을 친구 얼굴이 떠오르자,
그제야 겨우 나로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잠들기 전 갑자기 쓰고 싶은 주제가 떠오르는 날들도 많았다.
불을 끄고 누워서도 눈만 깜빡이다가,
머릿속에서 문장들이 자꾸 이어졌다.
휴대폰 메모장을 켜 두고 몇 줄 적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었다.
지금도 나는 매주 새로운 글을 쓴다.
여럿이 함께 이어 가는 카지노 게임 글쓰기다.
혼자 쓰는 일이 버겁게 느껴질 때면
함께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상하게 다시 바카라상 앞에 앉게 되었다.
처음에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로 글을 쓰는 일이 꽤 어려웠다.
노트북 화면만 한참 바라보다가
겨우 한 줄 적어 두고 멍하니 앉아 있었던 날도 있었다.
그런데 일 년쯤 지나고 나니,
새로운 주제였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 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풍경도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 사람들의 표정까지도 자꾸 마음에 남았다.
글은 쓰고 또 써도 늘 고칠 것들이 남아 있었다.
쉼표 하나를 바꾸고 문장 순서를 바꾸는 일만으로도 한참을 붙잡고 앉아 있곤 했다.
그래도 이상하게 계속 쓰게 된다.
모두 잠든 밤,
깜빡이는 커서만 조용히 화면 위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앉아
지운 문장들 사이로
오늘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