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대사
지하 주차장이 없는 오래된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이중 주차의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은 지하 주차장이 있고, 아파트 내 공원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했지만, 이전 집에서는 아침마다 테트리스하듯이 차를 밀어서 내 차를 빼내야했다. 특히 겨울 아침에는 손이 시려서 차를 미는 것이 힘들곤 했다. 그랬던 겨울 아침에 일어난 일이다.
여느 날처럼 출근을 하기 위해 내 차 앞을 막은 차를 밀고 있는데, 유난히 차가 무거웠다. 아침을 못 먹어서 힘이 없어서 그런가 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차에 타고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시동이 걸려있지 않은 차에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나는 귀신을 본 듯 움찔 했고, 자동차 앞유리 너머 갑자기 차를 미는 나를 보는 여자에게서도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갑자기 차를 밀었으니 미처 못 내렸을 수도 있겠다 싶어 나는 허리를 펴고 잠깐 기다렸다. 그런데 여자는 고양이를 안은 채 꿈적도 하지 않는 것이다. 출근 시간을 다가오고 할 수 없이 나는 차를 더 밀고나서 운전을 시작했다.
잠시 후 울컥 화가 났다. 아, 이 미련 곰탱이 같으니라고. 그 여자에게 가서 잠깐 내려달라고 했어야지. 바보 같이 그런 말도 못하고 그 여자 몸무게를 감당하며 차를 밀었단 말이야. 속으로 스스로에게 분통을 터트렸다. 그리고 눈치없이 앉아있었던 그 여자에게 다시 화가 치밀었다. 아니, 차를 밀면 내려야지, 그걸 보면서 앉아있어? 마음 속에서 전쟁터에서 총알이 날아다니 듯이 하지 못한 말, 했어야 했던 말, 자바카라하고 후회하는 말들이 휙휙 지나갔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이렇듯 불합리한 일을 겪는다. 그리고 당황한 채 제대로 된 말 한 마디 못하고 지나갈 때가 있다. 이게 벌써 10년도 넘은 일이니 잊혀질만도, 괜찮을만도 하건만 오늘 아침의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차의 촉감과 무게, 얄미운 그 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여자의 무릎에 얌전하게 앉아 있던 고양이까지 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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