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지 마라
신입사원일 때, 지금은 없어진 연말모임도 있었고, 장기자랑도 있었다. 무대에 서는 것은 모두 신입사원이니 재롱잔치에 가까운 행사였으며, 신입사원의 면면을 재확인하면서 선배들의 기대가 쏟아지는 자리였다. 노래, 춤, 코미디 등등 즐거운 분위기를 위한 온갖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각 팀의 막내가 팀의 대표가 되는 무거운 자리이기도 했다. 팀장님은 신입사원의 재롱도 지기는 싫은 법이라.
그 연말모임에서 나는 슬롯자도 아니고, 단체로 춤을 춘 것도 아니고, 웃기지도 않았고, 단독으로 노래를 불렀다. [찰랑찰랑]이었고 거의 끝에서 분위기를 수습하는 역할이었다. 참, 철도 없었지. 계산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나는 그 자리의 무거움도 모르고 하라는 대로 노래를 불렀다. 아, 간이 큰 건가, 겁이 없는 건가. 지금이라면 눈치껏 빼면서 단체로 하는 활동의 구석에서 눈에 띄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신입사원의 패기가 남아있었던가 보다.
슬롯자는 정장을 단정하게 입고, 각자의 역할에 따라 그때 유행하던 마빡이 의상을 입고 가발을 쓰기도 했고, 단체 댄스 의상도 준비했다. 합창은 청바지에 흰 티를 맞춰입었다. 단독으로 트로트를 불렀던 남자 동기의 의상은 파란 반짝이 재킷이었고, 내 의상은 몸에 딱 붙는 금색 드레스였다. 드레스를 입은 후에는 센스 있는 여자 동기가 화장을 해주었다. 누군가 해주는 화장도 처음이라 얼굴에 닿는 붓의 감촉이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준비한 것들이 끝나갈 무렵 나는 무대에 올랐다. 무대를 보는 익숙한 얼굴들을 보며, 생각보다 떨려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무대를 마쳤다. 호응은 나쁘지 않았다. 격려이든 칭찬이든, 박수소리를 들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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