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떠나는 남미 여행기
남은 것은 탱고 공연.
관심이 있어서 예약한 건 아니었다. 아르헨티나, 그러니까 탱고의 본고장에 왔으니 한 번쯤은 봐야 하지 않나 하는 묘한 의무감이 있었다.
사실 굳이 탱고 공연을 보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탱고에는 관심이 없대도 공연 자체를 좋아하는 내게 나쁠 건 없었으니까.
문제는 공연이 해가 진 뒤, 늦은 오후에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픽업 서비스를 신청해 예약했는데, 호텔에서 픽업한다던 첫 안내와 달리 근처의 제휴 호텔에서 픽업과 샌딩이 이루어질 거라는 통보를 받았다.
남미에서는 어두워지면 절대 밖에 나가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어쩔 수 없이 혼자 밤거리를 걸어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며칠간 골머리를 썩였다. 픽업과 샌딩 비용은 티켓을 구매할 때 이미 지불한 상태였지만, 그냥 우버를 따로 불러서 갈까. 어떻게 할까.
그러나 결국 비용을 두 배로 지불하기가 부담스러웠던 나는 어두운 밤거리를 빠른 걸음과 뜀박질을 섞어 가며 지나갔다. 거리가 너무 위험해 보이면 언제든 숙소로 돌아와 우버를 부를 생각으로 일찍 출발했더니 픽업 장소에 지나치게 빨리 도착해 버렸다.
차를 놓칠 수 있으니 밖에서 기다리라던 제휴 호텔 직원분은 내가 2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친절하게 대문을 열어주셨다. 남미의 호텔들은 대체로 철창으로 된 대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야 했는데, 차가 올 때까지 이 철창 안에 머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위안이 되었다. 뭐…… 그때부터는 돌아올 길을 걱정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도착한 탱고 공연장. 음료 한 잔이 포함된 티켓이라 굳이 뭔가를 먹을 필요는 없었지만, 나는 그동안 먹으려다 못 먹었던 Bife de chorizo(비페 데 초리소)를 기어코 주문했다. 두툼한 등심 스테이크로,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그렇게 고기를 썰던 중 탱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
푸른 막이 열리고, 등장한 사람들.
와.
대박.
첫 곡이 끝나기도 전에 피로가 싹 가셨다. 화려한 의상과 빠른 발동작. 남녀가 어우러져 추는 춤은 남미의 열정을 그대로 형상화해 놓은 것만 같았다.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 폭포에서 나오던 길에 광장에서 이벤트처럼 열린 탱고 공연을 본 적이 있었는데, 역시 공연장에서 제대로 갖추고 선보이는 무대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댄서들의 움직임은 눈으로 따라가기도 벅찰 만큼 빨랐다. 몸을 뒤로 젖혔다가 다시 감아 올리는 순간마다 객석에서는 ‘헉’ 하고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연주까지 어우러지자 정말이지 너무나 즐거웠다.
관심도 없던 춤이었는데, 이 순간부터 나의 최애 춤이 될 것 같았다. 10만 원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게다가 중간 중간 민속 춤이나 노래 공연도 볼 수 있어서 다채롭게 즐길 수 있었다.
다만 공연과 스테이크는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공연을 앞에 두고 스테이크를 썰어 먹는 일은 고역이었다. 공연에 집중하고 싶은데, 또 비싼 돈을 주고 시킨 스테이크는 먹어야겠고……. 결국 배까지 너무 불러 절반이나 남겼다.
돌아오는 길은 어둡긴 했지만, 다행히 아무 사고 없이 숙소에 잘 도착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하게 행복한 일을 경험한 난, 그날 밤 탱고를 배워보고 싶다는 꿈을 품은 채 즐겁게 잠들었다. 몸치라 배우는 과정이 험난하지는 않겠지만.
다음 날은 또다시 비행기를 타고 칠레로 넘어가는 날이었다.
그것도 비행기 경유에, 지역 이동을 위해 버스까지 타야 하는 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