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데, 글쎄

여자 혼자 떠나는 남미 여행기

by밍이

결제 불가.


늦은 시간, 부에노스아이레스 호텔에 겨우 도착했는데 이대로 쫓겨나는 건가. 평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미리 결제해두는 편이지만, 이 호텔은 사전 결제가 안 되는 곳이었다. 설마 나…… 정말 쫓겨나나?

황급히 다른 카드를 꺼냈다. 이과수 폭포에서 짐을 맡길 때 극적으로 결제에 성공했던 카드였다. 그때도 됐으니 이번에도 좀.


그러나 또 결제 불가.


카드 두 장이 연달아 거절당하자 직원이 결제 링크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 링크로는 달러 결제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건 될까……?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달러로 받는다면 현금도 가능하지 않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달러 현금을 내도 되느냐고 물었다. 다행히 가능하단다! 얼른 가방 안쪽을 열어 달러를 꺼냈다. 투어 비용으로 쓰려고 챙겨온 돈이었다. 혹시 몰라 넉넉하게 가져오길 잘했지. 그렇게 겨우 오늘 밤 잘 곳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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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숙소였지만, 데이터 이슈...

아침에 일어나니 이번에는 데이터가 전혀 잡히지 않았다. 하하. 왜 이러시는 거죠. 숙소 와이파이마저 약했다. 계획한 일정을 소화하려면 우버를 불러야 하는데, 휴대폰은 계속 작동 불가. 조식으로 나온 크루아상과 스크램블드에그를 입에 밀어 넣으면서도 신호 표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제발 극적으로 데이터가 잡히기를.

결국 밖으로 나가 휴대폰을 든 채 몇 걸음씩 자리를 옮겨 다녔다. 겨우 신호가 잡히는 곳을 찾아 차를 불렀다.


그렇게 찾아간 첫 목적지는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렌디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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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개조했다더니, 과연 유럽의 궁전 같은 분위기가 났다. 무대가 있던 자리에는 카페가 들어서 있었고, 객석 발코니마다 관광객들이 휴대폰을 내밀고 있었다. 나도 그 틈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까지인가?


아름답기는 했다. 다만 내 기준으로 세계 1위까지는 아니었다. 생각보다 크지도 않았고, 나는 천장까지 바카라이 빽빽하게 들어찬 서점을 더 좋아한다. 바카라 구경을 하다가 다른 바카라에 눈이 팔리고, 고개를 들면 또 바카라이 있는 곳. 여기는 자꾸 바카라보다 건물에 눈이 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기준은 누가 정한 걸까. 혹시 유럽 사람들이 정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잠깐 들었다. 뭐, 개인 취향이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고 모두가 똑같이 감탄할 의무는 없으니까. 나는 오히려 한옥에 바카라을 가득 쌓아놓는, 그런 분위기를 좋아한다. 이름 앞에 붙은 ‘세계에서 가장’만 잠깐 떼어놓고 보면, 충분히 멋진 서점이었다. 다만 너무 큰 기대를 한 탓이 아닐까.


다음으로 향한 콜론 극장에서는 영어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가이드는 방문객들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일일이 물으며 안내를 시작했다. 이런 자연스러운 대화에 끼게 되면 새삼 외국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나는 낯도 많이 가리고 이런 분위기를 퍽 어려워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외국에서는 평소보다 조금 더 활발하게 굴 수 있다. 정확히는 활발한 척을 할 수 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원래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까. 잠깐쯤 그런 사람인 척해도 괜찮잖아.


극장에서는 대리석의 비밀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데, 그게 퍽 흥미러웠다. 바로 극장 안에 있는 대리석이 전부 진짜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려면 무늬를 보면 된다고 했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진짜 대리석에서 나선형 무늬를 찾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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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자 사람들이 벽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조금 전까지 극장 전체를 올려다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돌의 무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도 손을 뻗어 기둥을 만져봤다. 만져보기만 했는데도, 대리석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된 기분.

천장에도 비밀이 있었다. 샹들리에 위쪽 돔 안에 공간이 있는데, 특수효과를 낼 때 쓰는 곳이라고 했다. 가이드는 꼭 우리에게만 알려주는 이야기처럼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니 더 열심히 올려다볼 수밖에. 화려한 천장도 천장이지만, 저 안에 사람이 들어갈 자리가 있다는 쪽이 훨씬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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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마지막에는 몇 명씩 나뉘어 박스석에 들어갔다. 혼자 온 나는 함께 여행 중인 할머니 두 분과 같은 공간에 들어가게 됐다. 두 분이 가운데 자리를 양보해주신 덕분에 편하게 극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나오는 길에는 내가 먼저 사진을 찍어드릴까요 하고 물어보기도 했다. 평소의 나라면 잠깐 망설였을 텐데, 외국에서는 용기 장착! 자연스럽게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런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외국인들…… 사진 정말 못 찍는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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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있는 100년 된 카페 라 이데알에서는 아메리카노와 작은 샌드위치 두 종류를 주문했다. 그런데 나온 샌드위치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컸다.

이게 정말 5,000원짜리라고?


서점에서도 커피랑 디저트를 시켰었는데 그때는 생각보다 작아서 당황했던 반면, 여기서는 생각보다 커서 불안했다. 작은 샌드위치라고 생각하고 두 종류나 시켰는데, 접시를 보고 있으니 내가 뭘 잘못 주문한 건 아닌가 싶었다. 음식이 넉넉하게 나와도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되다니.

다행히 계산은 현금과 카드를 나눠 써서 무사히 마쳤다. 다행히 가격은 그대로!




오전에 방문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렌디드와 콜론 극장, 카페 라 이데알은 모두 유럽의 건축물을 떠올리게 할 만큼 화려했다.

오랜 역사와 화려한 장식을 품은 건물들을 둘러보고 나니, 이번에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건축물이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다음 목적지인 대통령궁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또 어떤 모습일까.

기대하며 도착한 대통령궁 주변에서는 집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아니, 이번에는 그냥 건물만 좀 보려고 했는데.

설마 뉴스에서나 보던 거친 시위가 벌어지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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