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었다. 그래서 기댈 사람도 없었다.
"견적서부터 보내 주시겠어요?"
밤 10시 40분, 수화기 너머에서 그 말이 왔다. 다음 날 아침이 경쟁 발표였고, 제본해 온 스무 권의 간지가 한 장씩 어긋나 있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오 년 넘게 같이 일한 인쇄소 실장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도 그에게 늘 그렇게 말해 왔다.
사무실 형광등은 절반만 켜져 있었다. 어긋난 스무 권을 바닥에 펼쳐 놓고 주소록을 위에서 아래로 내렸다. 이름이 삼백 개쯤 있었다. 두 번을 오르내리고 전화기를 바카라상에 내려놓았다. 이 시간에 눌러도 되는 번호가 하나도 없었다.
그 밤에 나는 혼자 간지를 뜯어냈다. 스프링을 풀고, 노란 간지를 빼내고, 다시 끼웠다. 새벽 3시에 끝났다. 손끝이 종이에 베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 밤, 기댈 사람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발표장 앞 복도에서 스무 권을 다섯 권씩 네 줄로 쌓았다. 맨 끝 한 권의 간지가 아직 뒤집혀 있었다. 손끝으로 눌러 펴면서 전날 밤의 수화기를 다시 생각했다. 발표는 떨어졌다. 간지 때문은 아니었다. 다만 그 밤에 알게 된 것이 오래 남았다.
나는 도움을 받으면 그 주 안에 갚는 사람이었다. 옆 팀 과장이 지난해 예산 양식을 보내 주면 그날 점심을 샀다. 실장이 교정지를 들고 와 주면 다음 발주 단가를 조금 올려 적었다. 받은 날 저녁이면 휴대폰으로 커피 기프티콘부터 보냈다. 받은 것을 하룻밤 넘겨 들고 있으면 잠이 얕아졌다.
먼저 부탁한 적은 거의 없었다. 야근을 혼자 했고, 모르는 양식을 혼자 찾았고, 처음 거는 전화도 혼자 걸었다.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정산한 관계는 그 자리에서 끝난다. 계산을 마치는 순간 그 거래는 닫히고, 다시 열 이유도 같이 사라진다. 나는 십 년 동안 성실하게 닫아 왔다.
□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먼저 부탁한 일이 하나라도 있는가
□ 받은 도움 중에 그 주에 서둘러 갚아 버린 것이 있는가
□ 밤 열 시에 번호를 누를 수 있는 이름을 셋 댈 수 있는가
사람들은 나를 신중하다고 했고, 나도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신중함은 아니었다. 거절당할 자리에 나를 세우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 컸다. 빚이 없으면 아쉬운 소리 할 일도 없다고 계산했고, 그 계산은 한동안 잘 맞는 듯 보였다.
몇 해 전, 아버지께 암이 발견되었다. 의사는 1년 정도라고 했다. 의사인 매형이 누나와 함께 부모님께 상황을 이미 설명드린 뒤였다. 나는 그 설명을 누나에게서 전해 들었다. 큰 줄기는 알았지만 궁금한 것이 남았다. 어떤 치료를 하는지, 얼마나 힘든지,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매형 번호는 주소록 맨 위에 있었다. 그런데 사흘을 누르지 못했다. 바쁜 사람을 붙잡는 것 같았고, 이미 설명을 들은 일을 또 묻는 것이 염치없게 느껴졌다. 그 사흘 동안 나는 밤마다 인터넷 검색창에 병명과 생존율을 쳤다. 화면을 내릴수록 숫자는 나빠졌다.
사흘째 밤에 전화를 걸었다. "매형, 아버지 일로 좀 더 여쭤봐도 될까요?" 매형은 사십 분 동안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검색창이 알려 준 것과는 많이 달랐다. 전화를 끊기 전에 매형이 말했다. "진작 전화하지 그랬어."
혼자 견딘 사흘 동안 내가 지킨 것은 체면뿐이었다. 그 체면은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의지를 갖고 치료를 성실히 받으셨고, 지금까지 살아 계신다. 부모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신다. 그래도 나는 그 시간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믿는다. 우리 집에서 그 기도는 나와 아내의 몫이었다.
몇 달 뒤 인쇄소 실장과 국밥을 먹다가 한 마디를 들었다. "그쪽은 뭘 부탁을 안 하시니까, 저도 뭘 해 드릴 게 없었어요." 숟가락을 든 채로 그 말을 두 번 곱씹었다. 나는 그동안 그에게 나를 도울 틈을 한 번도 내주지 않았다.
첫 회사에서 입사 두 달쯤 되었을 때, 선배 한 사람이 내 자리로 와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것 좀 봐 줄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삼십 분이 걸렸다. 그 삼십 분이 나를 그 팀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부탁은 한 쪽이 아니라 받은 쪽이 더 오래 기억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군가를 도운 자리에서 자기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부탁을 받으면 귀찮기 전에 반가운 마음이 먼저 온다. 수첩을 꺼내 날짜를 적는 손, 전화를 끊고 "그건 내가 잘 알아요" 하고 한 번 더 말해 주는 입. 내가 삼킨 부탁은 상대의 그 반가움까지 함께 삼켜 버린다.
우리는 휴대폰에 쌓인 이름들을 인맥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하나씩 짚어 보면 대부분 저장만 해 두고 한 번도 걸지 않은 번호다. 그 밤에 내가 쥐고 있던 삼백 개가 그랬다. 이름은 해마다 늘어나는데, 실제로 눌러 본 번호는 늘지 않는다. 명함을 받은 날과 처음 전화를 건 날 사이가 몇 달인지 세어 보면, 그 몇 달이 곧 그 사람과 나 사이의 거리다.
번호가 열리는 데 큰일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교회 형님에게 처음 부탁한 날은 이사하는 토요일이었다. "오전에 두 시간만 와 주실 수 있어요?" 형님은 "바쁜데"라고 말하고 아침 여덟 시에 왔다. 돌아갈 때 목장갑 한 켤레를 차 뒤에 두고 갔다. 그 장갑을 돌려주러 간 날, 우리는 현관에 선 채로 두 시간을 더 이야기했다. 갚으러 간 자리가 다시 열린 자리가 되었다.
연락처를 열어 보면 반년 넘게 한 번도 걸지 않은 번호가 수두룩하다. 지우지는 못하고, 걸지도 못한 채 둔다. 언젠가 필요할지 모른다는 마음 하나로. 그런데 한 번도 걸지 않은 번호가 정작 필요한 밤에 눌러질까.
작은 부탁이 통하는 까닭은 상대의 하루를 비집고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15분이면 되는 일, 상대가 이미 알고 있는 일,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일. 그런 부탁은 받는 쪽도 가볍게 들어 준다. 한 번 들어 준 사람은 다음에 조금 더 큰 것도 들어 준다. 첫 통화가 짧았던 번호가 그다음에 길어진다.
밤 열 시에 누를 수 있는 이름이 내 잔고다.
1 - 이번 주에 먼저 꺼내는 작은 부탁 한 번
3 - 이번 달에 받은 것을 적는 세 줄
1 - 한 달에 한 번 펴 보는 수첩 한 면
오늘 저녁에 할 수 있는 것부터 적는다.
1. 수첩 뒷장을 펴고 지난 한 달 동안 남에게 받은 도움을 세 줄 적는다. 적을 것이 없으면 그것이 이번 달의 성적표다.
2. 그 세 줄 가운데 받은 그 주에 서둘러 갚아 버린 것에 동그라미를 친다. 동그라미가 많을수록 스스로 닫아 버린 관계가 많다는 뜻이다.
3. 이번 주에 한 사람에게 작은 부탁을 하나 한다. 15분 안에 끝나는 것으로 고른다. 큰 부탁은 아직 아니다.
4. 도움을 받으면 고맙다는 말은 그날 바로 한다. 다만 갚는 것은 서두르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하는 날까지 들고 있는다.
5. 매달 첫 주에 수첩을 펴고, 아직 갚지 않은 이름 가운데 한 사람에게 먼저 전화를 건다.
장부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수첩 한 면이면 된다. 칸은 세 개뿐이다.
받은 날 바로 적는다. 셋째 칸은 비워 둔다. 그 사람이 먼저 무언가 필요하다고 말해 올 때 도와주고, 그날 날짜와 한 일을 채운다. 과장의 줄이 그렇게 채워졌다. 과장이 먼저 전화해 왔고, 나는 그 전화가 반가웠다.
한 달이 지나 이 면을 펴면 비어 있는 셋째 칸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그 빈칸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은 다르게 읽는다. 빈칸은 미안함이 아니라 다시 만날 이유다. 빈칸이 하나도 없는 면은 깔끔하지만, 다음 달에 걸 번호도 없다.
받은 것만 적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준 것은 적지 않아도 날짜까지 기억난다. 받은 것은 고맙다는 말 한 번으로 지워진다. 내 기억은 늘 준 쪽으로 기운다. 종이는 그 기울기를 바로잡아 준다.
빈칸의 맨 위에는 인쇄소 실장의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을 고르고 나서도 바로 걸지는 못했다. 이름을 고르는 데는 십 초, 거는 데는 며칠이 걸린다.
작은 부탁은 말 한 줄에서 갈린다. 시간을 정하고, 범위를 좁히고, 상대가 이미 잘 아는 것을 묻는 말은 쉽게 받아진다.
왼쪽 말은 상대가 시계를 보지 않고도 들어 줄 수 있다. 오른쪽 말은 상대가 먼저 시간을 계산하게 만든다. 마지막 줄의 오른쪽은 그 밤에 내가 들은 말이고, 그 전까지 십 년 동안 내가 해 온 말이었다.
알면서도 매번 놓치는 대목이 세 가지 있다.
첫째, 큰 부탁을 아껴 두었다가 한꺼번에 꺼낸다. 금요일 여섯 시, 가방을 어깨에 건 사람 앞에서 "주말에 혹시"로 말을 시작한다. 작은 부탁을 한 번도 주고받지 않은 사이에서 첫 부탁이 주말이면, 상대는 부탁이 아니라 통보를 받는다. 그 사람은 대개 "알아볼게요"라고 답하고, 월요일이 되면 그 일은 조용히 없던 일이 되어 있다.
둘째, 받은 자리에서 바로 갚아 버린다. 도움을 받은 날 저녁에 기프티콘을 보낸다. "아유, 뭘 이런 걸"이라는 답장이 오고 대화는 거기서 끝난다. 나는 지금도 이걸 한다. 지난주 화요일에도 보냈다. 머리보다 손이 빠르다.
셋째, 장부를 머릿속에만 쓴다. 머리는 내가 준 것을 또렷하게, 받은 것을 흐릿하게 저장한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서운한 목록만 길어진다. 연말 회식 자리에서 자기가 베푼 것만 또렷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되기는 어렵지 않다. 나도 몇 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난주, 팀원이 결재판을 들고 와서 말끝을 흐렸다. "이거 혼자 하긴 좀." 예전 같으면 "해 보고 막히면 와"라고 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 말을 끝까지 듣고, 무엇을 맡기고 싶은지 물었다. 팀원은 두 가지를 말했고, 그중 하나는 내가 삼십 분이면 되는 일이었다. 팀원이 돌아간 뒤 한참을 앉아 있었다. 부탁을 꺼내는 쪽의 목소리가 어떤지, 나는 그날 처음 들은 것 같았다.
밤 10시 40분. 그 밤과 같은 시간에 빈칸 맨 위의 번호를 눌렀다. 인쇄소 실장이었다. 두 번째 신호에 받았다.
"어, 뭐 필요해요?"
휴대폰 너머에서 의자 끌리는 소리가 났다.
두 번째 사규 제13조 부탁은 빚이 아니라 예금이다. 갚기만 하는 사람은 거래처가 되고, 쌓는 사람은 동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