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를 안 썼을 뿐, 수신인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석 달쯤 뒤였다. 회식 자리에서 그 사람이 내 쪽을 보지 않고 말했다. "저는 꼼꼼한 편은 아니라서요." 젓가락이 접시 테두리에 닿는 소리가 났다. 내가 썼던 단어가 그 사람 입에서 나왔다.
웃음이 한 번 돌았다. 옆에서 누가 잔을 채웠다. 나는 물컵을 들었다가 그대로 내려놓았다. 그 뒤 삼십 분 동안 내가 한 말은 두 마디였다. 더 드세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식당 유리문을 밀고 나올 때 문에 비친 내 얼굴이 보였다. 웃는 모양이 남아 있었다.
그 사람이 왜 그 말을 했는지는 끝까지 모른다. 자기를 낮추는 농담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그 말에서 내가 했던 말을 들었다. 그렇게 들은 게 맞는지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날부터 그 단어는 내 것이 아니게 됐다.
집에 와서 양치를 하다가 거울을 봤다. 입을 헹구고 수건으로 눌렀다. 그 단어를 어디에서 썼는지 떠올리는 데 한참 걸렸다.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이 더 나빴다.
그날 오후로 돌아가면, 탕비실에 사람은 둘이었다. 종이컵 두 개, 커피 믹스 두 봉, 정수기가 물을 올리는 소리. 그 주에 나는 같은 질문을 두 번 받았다. 왜 늦어지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두 번째 대답은 첫 번째보다 길었다.
두 번째로 대답할 때, 묻던 사람은 손목시계를 한 번 봤다. 대답이 길어지면 듣는 쪽은 시계를 보고, 말하는 쪽은 탓할 사람을 찾는다. 나는 그 손목을 봤다.
탕비실에서 나는 그 긴 대답을 한 번 더 했다. 그러고는 한 문장을 덧붙였다. "그분은 마감은 지키는데, 꼼꼼한 편은 아니라서." 같이 있던 직원이 "아, 그래요?" 하고 종이컵을 들었다. 스푼으로 두 번 저었다. 정수기의 물 올리는 소리가 멈췄다.
그 방에는 문이 없다. 정확히는 문이 있지만 닫는 사람이 없다. 복사기 소리가 벽 한 장 건너에서 들리고, 싱크대 거름망에는 커피 가루가 말라붙어 있다. 사람이 하루에 두 번, 삼 분씩 서 있는 방이다. 일 년이면 스무 시간이 넘는다. 나는 그 스무 시간 동안 무슨 말을 했는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한다.
같이 있던 그 직원과는 지금도 같은 층에서 일한다. 그 말을 어디에 옮겼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은 이유가 배려인지 두려움인지는 나도 가려내지 못한다.
그 문장은 내 일정을 하루도 당겨 주지 않았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메일 열일곱 통을 읽었다. 여섯 시에 퇴근했고, 지하철에서 그 말을 떠올린 적은 없다. 잊은 쪽은 나뿐이었다.
그 주 금요일 퇴근길은 가벼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뒤로 달라진 것은 크지 않았다. 메일 참조에서 내 이름이 빠진 날이 있었다. 처음에는 실수라고 생각했다. 두 주쯤 뒤 옆자리 직원의 화면에서 내가 모르는 메일 제목을 봤다. 제목에는 내가 넘긴 자료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내 화면으로 돌아왔다.
복도에서 인사가 반 박자 늦었고, 회의에서 내 안을 두고 묻는 말이 줄었다. 묻지 않는 쪽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연말에 과제를 나눌 때 그쪽 팀과 묶이는 자리에서 내 이름이 한 번 빠졌다. 그때도 일정 때문이라고 들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지금도 짚지 못한다.
회식에서 그 한 마디를 듣고 나서야 날짜를 거꾸로 세어 봤다. 탕비실에서 삼 분. 그다음은 캄캄하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순서로 옮겼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알 수 없는 쪽이 더 무거웠다. 내가 한 말은 한 문장이었는데, 돌아온 것은 그 사람이 자기를 소개하는 말버릇이 되어 있었다.
말은 옮겨질 때 길이가 줄고 각이 선다. 내가 한 말에는 마감은 지킨다는 앞부분이 붙어 있었다. 회식에서 들은 말에는 주어가 바뀌어 있었다. 며칠 뒤 복도에서 다시 들은 말에는 그 앞부분이 아예 없었다.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끝나고, 두 사람의 기억에서 시작된다.
그날 탕비실에 내가 두고 온 것은 말이 아니었다. 접힌 우산 한 개였다. 접힌 우산은 누가 들고 가도 티가 나지 않는다. 손잡이에 이름을 쓴 적도 없다. 그러다 비 오는 날 어느 현관에서 펴진다. 펴진 우산은 접힌 우산보다 세 배는 크고, 그 자리에서 누가 두고 간 것인지 묻는 사람은 없다. 쓰고 있는 사람만 보인다.
돌아온 우산은 내가 접었던 모양이 아니었다. 살이 한 대 휘어 있었고, 천에는 내가 쓴 적 없는 단어가 묻어 있었다.
회식이 있고 며칠 뒤, 다른 팀 직원이 복도에서 내게 말했다. "그분, 꼼꼼한 쪽은 아니라고들 하네요." 아니라고들, 하고 그 직원은 복수로 말했다. 나는 "그런가요" 하고 대답했다. 그 자리에서 내가 한 일은 그 네 글자가 전부였다. 내가 접어 두고 온 우산이 다른 손을 거쳐 내 앞에서 펴졌고, 나는 그것이 내 것인 줄 알면서 접지 않았다.
“접힌 우산”
사람 이야기 끝에 덧붙인 한 문장. 두고 온 사람은 접힌 채로 기억하고, 받은 사람은 펴진 채로 기억한다.
그 뒤로 나는 내가 들었던 말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몇 해 전 어느 아침, 복도에서 커피를 받아 들며 한 사람이 내게 짧게 말했다. "그쪽 팀 과장님, 일은 잘하는데 말이 좀 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오후 회의에서 그 과장이 목소리를 높이는 자리가 있는지 유심히 봤다. 그 전까지 나는 그 사람 말이 세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반년쯤 뒤 그 과장과 같은 과제를 맡았다. 첫 회의에 들어가면서 나는 어깨를 한 번 올렸다 내렸다. 그 회의에서 그 사람은 두 번 말했고, 둘 다 질문이었다. 자료를 받은 다음 날 아침에는 수정 의견을 한 장으로 정리해 보내 왔다. 그 한 장에는 글머리 기호가 다섯 개 있었고, 마지막 줄은 이렇게 끝났다. "제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조용한 사람이었다. 시끄러웠던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미리 쥐고 들어간 한 문장이었다. 남이 접어 건넨 우산을 들고 그 회의실에 들어갔던 셈이다.
그때는 고마웠다. 나를 아껴서 미리 알려주는 말로 들렸다. 지금은 그 자리가 다르게 보인다. 알려준 사람의 손에도 접힌 우산이 하나 들려 있었을 것이다.
험담이 돌아오는 이유가 옮기는 사람의 입이 가볍기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둘만 있는 자리에서 한 사람에 대한 문장을 들으면, 듣는 쪽은 그 문장을 쥐게 된다. 쥔 것은 어딘가에서 쓰인다. 쓰이는 자리는 대개 그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와 둘만 있는 탕비실이다. 우리는 그곳을 하루에 두세 번 지나간다.
나도 그곳에서 듣는 쪽이었던 적이 많다. 들을 때 나는 거의 늘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는 데는 힘이 들지 않는다. 끄덕인 뒤에 그 문장을 내려놓는 데 힘이 든다. 내려놓은 적보다 주머니에 넣은 적이 많았다.
말을 옮겼을 사람을 원망해 본 적도 있다.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원망은 사흘쯤 갔다. 사흘째 저녁, 그릇에 남은 밥을 긁으면서 나는 그 사람이 옮기지 않았어도 그 문장이 세상에 있었다는 쪽을 생각했다. 만든 쪽은 나였다.
여기서 한 번 멈춰 보면 좋겠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한 자리에는 몇 사람이 있었을까? 그 자리에서 우리가 접어 두고 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좋은 말도 같은 길로 간다. 친구 근이 몇 해 전 어느 모임에서 내 이야기를 했다. "OO이는 모르는 걸 묻는 데 부끄러움이 없어."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반년쯤 뒤 다른 친구가 삼겹살집에서 그 문장을 내 앞에 그대로 옮겼고, 나는 집게를 내려놓았다. 근은 그 말이 내게 닿았다는 걸 지금도 모른다. 근의 우산도 접혀 있었다. 다만 그 우산은 펴졌을 때 나를 가려 주었다.
회식 다음 날 아침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그 사람은 먼저 고개를 숙였다. 나는 반 박자 늦게 숙였다.
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가지 못했다. 미안하다고 말하려면 무엇이 미안한지를 입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 문장을 소리 내는 일이 안 됐다. 사과는 입이 아니라 용기에서 나온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나는 용기가 모자랐다.
그래서 대신 다른 것을 했다.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 이름이 나오면 한 문장을 보탠다. "그분 자료 정리는 빠릅니다." 두고 오는 우산을 바꿔 든 셈이다. 펴졌을 때 그 사람을 가려 줄 쪽으로. 이게 사과가 되는지는 모른다.
흔히들 험담을 말조심의 문제로 여긴다.
겪어 보니 그게 아니었다. 험담은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내 이름 뒤에 어떤 말이 붙어 다니느냐의 문제였다.
지난주에도 나는 한 사람의 이름 뒤에 한 문장을 붙였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는 복도에서, 옆에 있던 팀원에게. 팀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한 번 움직였다. 그 고개가 무거웠다. 말하고 나서 걸음이 반 보 느려졌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여기 적지 않겠다. 적지 않는 쪽이 정직한 자리도 있다. 나는 그 문장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다. 그 자리에서 할 다른 말을 아직 찾지 못했다.
어제 아침에는 비가 왔다. 현관에서 아내가 우산을 건네줬고, 나는 손잡이를 쥐고 역까지 걸었다. 승강장에서 우산을 접으면서 손잡이를 봤다.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열차가 들어올 때까지 나는 그것을 손가락에 걸고 서 있었다. 올라타서 자리에 앉으니 접힌 끝이 무릎에 닿았다. 차가웠다.
두 번째 사규 제15조 험담은 반드시 배달된다. 주소를 안 썼을 뿐, 수신인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