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메뉴를 정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결재는 조직도를 따라 흐르지만, 사람은 질문을 따라 일어선다.

by시선

열두 시 십 분 전이 되면 사무실의 소리가 한 칸 내려간다. 자판 소리가 뜸해지고, 서랍이 한 번씩 열렸다 닫힌다. 그래도 아무도 일어서지 않는다.


그 사무실에서 나는 가장 늦게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러니 내 몫의 일이 하나쯤은 있다고 믿었다. 수첩 뒷장에 식당 세 곳을 적어 두었다가, 열두 시 구 분 전에 일어나 말했다. "오늘 제가 예약해 둘까요." 모니터 세 대는 그대로 켜져 있었다. 한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그게 전부였다.


다음 주에는 아예 메뉴를 적어 왔다. 칼국수, 백반, 중식. 셋을 소리 내어 읽고 기다렸다. 아무도 고르지 않았다. 종이를 들고 선 내 팔꿈치 옆에서 누군가 마우스를 두 번 눌렀다.


그다음에는 전날 저녁에 식당 두 곳의 전화번호까지 받아 두었다. 퇴근길에 일부러 그 골목을 한 바퀴 돌며 간판 아래 번호를 수첩에 옮겨 적었다. 글씨는 삐뚤어졌어도 숫자만은 틀리지 않게 썼다. 다음 날 열두 시 십이 분, 그 수첩은 펼쳐진 채 내 바카라상 위에 남아 있었고 나는 혼자 일어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나는 그 침묵을 다들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이라고 읽었다. 틀린 독해였다는 것을 안 건 한참 뒤였다.


그 몇 분을 처음으로 끝까지 지켜본 것은 수첩에 아무것도 적어 오지 않은 날이었다. 마음먹고 본 것이 아니다. 내밀 것이 없으니 가만히 앉아 있었고, 그래서 보였다.


열두 시 사 분 전. 창가 자리에서 한 사람이 일어났다. 외투는 집지 않았다. 그는 먼저 통로 쪽으로 반 보 나와 섰다. 우리 쪽 바카라상은 아홉 개였다. 복도 끝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바카라상이 비어 있었고, 두 자리의 의자는 바카라상 밑으로 바짝 밀려 들어가 있었다. 아침에 일찍 나간 사람의 의자는 그렇게 들어가 있고, 화장실에 잠깐 간 사람의 의자는 어정쩡하게 빠져나와 있다.


다음으로 그는 통화 중인 사람을 봤다. 그 사람은 바카라상 전화의 수화기를 어깨와 귀 사이에 끼운 채, 거래처가 불러 주는 숫자를 왼손으로 받아 적고 있었다. 금방 끝날 통화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벽시계를 봤다. 그러고는 한 마디만 했다.


"골목 끝 칼국수, 오늘은 좀 걸을까요."


열두 시 삼 분 전. 의자 다섯 개가 거의 동시에 뒤로 밀렸다. 내 의자도 그중 하나였다. 어디냐고 묻는 사람도, 다른 데를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수첩을 서랍에 넣고 뒤따라 섰다.


횡단보도까지 그는 반 보 앞에서 걸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한 번 뒤를 돌아봤다. 사람 수를 세는 눈이 아니라, 뒤처진 사람이 없는지 살피는 눈이었다. 맨 뒤에서 오던 사람이 가방을 고쳐 메는 것을 보고서야 그는 다시 앞을 봤다.


그는 식당 유리문을 어깨로 밀고 들어서며 주인 아주머니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한 손은 다 펴고, 다른 손은 검지 하나만 세웠다. 아주머니가 턱으로 안쪽 상을 가리켰다. 우리가 앉기도 전에 수저가 먼저 놓였다. 여섯 벌이었다.


숭늉 주전자가 상 가운데로 오고, 김치 접시가 두 개 놓였다. 여섯이 앉으면 김치는 두 접시. 그 집은 그렇게 내온다. 나는 외투를 벗어 등받이에 걸고, 상 끝에 몰려 있는 수저를 한 벌씩 밀어 나눴다. 손끝에 닿는 쇠가 아직 차가웠다.


여섯은 아주머니가 눈대중으로 집어 온 숫자가 아니었다. 그가 통로에 서서 본 것은 메뉴가 아니었다. 바카라상 아홉 개에서 아침에 비운 두 자리를 빼고, 쉽게 끝나지 않을 통화 하나를 더 뺐다. 벽시계는 그 셈을 언제 꺼낼지 정하는 데 썼을 것이다. 그는 일어서기 전에 이미 여섯을 손에 쥐고 있었다. 나는 그 상에 앉아 수저를 집으면서, 세 번에 걸쳐 수첩에 적어 온 것들이 한 번도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여섯 벌 — 아무도 세라고 하지 않았는데 이미 세어져 있던 수. 오늘 몇 사람이 함께 일어설 수 있는지 아는 사람만 손에 쥘 수 있는 수


그가 메뉴를 잘 고르는 사람이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답하겠다. 그는 고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르기 전에 물어 두는 사람이었다.


그날 아침 탕비실에서 그가 종이컵 두 개를 꺼내며 옆 사람에게 묻는 것을 들었다. "오늘도 매운 건 못 드시죠." 복도에서는 서류 가방을 든 사람을 불러 세우고 "몇 시 차예요" 하고 묻는 것도 봤다. 점심 무렵 바카라상 밑으로 밀려 들어가 있던 두 의자 중 하나가 그 사람 자리였다. 그가 받은 답은 늘 한 줄씩이었다. 그는 그 한 줄들을 어디에도 적지 않고 들고 다녔다.


칼국수 집에는 맑은 국물과 얼큰한 국물이 따로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 주문을 한 번에 하지 않고, 왼쪽에서 세 번째 자리부터 봤다. 아침에 탕비실에서 그가 물었던 그 사람이었다. "여기 하나는 맑은 거로요." 그 사람은 고개만 끄덕이고 물컵을 끌어당겼다. 둘 사이에 설명은 없었다.


내 수첩의 식당 세 곳에는 그런 칸이 없었다. 상호와 거리, 맛있다는 소문만 적혀 있었다. 맑은 국물이 있는지는 적지 않았고, 그걸 적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 했다. 지금도 그 수첩의 그 장이 눈에 선하다. 세 줄이 가지런하고, 여백이 넓다.


그러니 열두 시 사 분 전의 그 한 마디는 제안이 아니었다. 아침 내내 한 사람씩 받아 둔 대답을 한 줄로 묶어 우리에게 돌려준 것이었다. 아홉 시부터 열두 시 사이에 그는 다섯 번쯤 짧게 물었고, 우리는 각자 한 번씩 답했다. 답해 놓고 잊은 쪽은 우리였다.


나는 그 사람의 직급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는 것은 그가 일어서면 상이 차려졌다는 것뿐이다. 그가 휴가를 낸 날에는 열두 시 십오 분이 되도록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 자판 소리는 한 칸 내려간 채 그대로였고, 창가 자리의 의자만 바카라상 밑으로 바짝 밀려 들어가 있었다. 결국 한 사람이 혼자 나갔고, 삼 분쯤 뒤에 또 한 사람이 나갔다. 둘 다 편의점 봉지를 들고 돌아왔다. 그날 점심, 바카라상 위에서 비닐 소리가 다섯 번 났다. 늘 한 상에 둘러앉던 바로 그 다섯이었다.


그가 돌아온 다음 날 열두 시 사 분 전, 창가 자리의 의자가 뒤로 밀렸다. 그 소리에 네 사람이 거의 동시에 서랍을 닫았다. 그때 내 손도 서랍 손잡이에 가 있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우리는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지를 벽에 붙은 조직도에서 찾는다. 나도 입사 첫 주에 그 앞에 서서 이름과 칸을 외웠다. 거기 적힌 것은 허락의 순서였다. 서류가 어느 칸을 거쳐 어느 칸으로 가는지, 도장이 몇 개 필요한지. 허락의 순서는 벽에 적혀 있지만, 동의의 순서는 어디에도 적히지 않는다. 그 순서는 아홉 시부터 열두 시 사이에, 종이컵과 복도와 한 줄짜리 질문으로 만들어진다.


내일 점심, 지금 내가 앉은 사무실에서는 누가 먼저 일어설까. 그 사람의 이름은 조직도의 몇 번째 줄에 있을까.


집에서도 나는 그 숫자를 쥐고 있지 않다. 토요일 저녁, 아내가 냉장고 문을 열어 둔 채 반찬 두 가지를 말하고 "오늘은 국 말고" 하고 한마디를 붙인다. 아들이 일어나 수저를 놓기 시작한다. 나는 왜 국이 아닌지도 모른 채 앉아 있다. 금요일 밤늦게 내려온 아들이 라면을 끓여 먹었다는 것을 아내만 알고 있었다. 국물 있는 걸 이틀 연달아 먹이지 않으려는 거였다. 냄비는 이미 씻겨 제자리에 걸려 있었다.


포는 그 시간이면 식탁 밑으로 들어와 아내의 발치에 엎드린다. 내 쪽이 아니다. 누가 먼저 일어서는지는 강아지도 안다.


그날 저녁, 나는 뒤늦게 식탁의 수저를 세어 봤다. 세 벌이었다. 멀리 있는 딸의 수저는 놓지 않는다. 아내는 접시를 세 개만 꺼냈고, 아들은 수저를 세 벌만 놓았다. 그 숫자를 누가 정했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집에서, 나는 밥을 먹었다.


그 사무실을 떠나 몇 번 회사를 옮기는 사이, 내 바카라상은 통로 쪽에서 창가로 갔다. 이제는 사람들이 나를 기다린다. 그런데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허락이다. 서류를 들고 와 바카라상 옆에 서 있는 팀원은 내 대답을 기다리고, 대답을 들으면 돌아간다.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가 오늘 점심을 어디서 먹을지 모른다는 것을 안다. 같이 일어서는 일은 여전히 내 자리가 아닌 곳에서 만들어진다. 지난달 우리 팀이 저녁을 먹은 날, 식당을 정한 사람도 내가 아니었다.


그게 누구였는지는 그날 저녁 상의 끝자리에 앉아서야 알았다. 그 사람은 아침부터 사무실을 두 바퀴 돌았다. 한 번은 커피를 들고, 한 번은 빈손으로. 나는 그 두 바퀴를 보면서도 무슨 일인지 묻지 않았다. 상 위에 수저가 놓이고 나서야 그 두 바퀴가 무엇이었는지 알았다.


결정권 없는 사람의 말은 가볍다고들 한다. 내가 본 것은 달랐다. 가벼운 말은 결정권이 없는 말이 아니라, 미리 물어 두지 않은 말이다.


그가 쥐고 있던 것을 나는 지금도 매주 놓친다. 지난 화요일, 내가 잡은 점심 자리에 수저가 다섯 벌 놓였다. 앉은 사람은 넷이었다. 그날 한 사람이 휴가였고, 나는 아침 회의에서 그 말을 분명히 들었다. 듣고도 세지 못했다.


국이 나오고 나서야, 나는 남은 한 벌을 보았다.



두 번째 사규 제12조 메뉴판을 든 사람이 메뉴를 정하는 것이 아니다. 아침에 먼저 물어 둔 사람이 정한다. 결재는 조직도를 따라 흐르지만, 사람은 질문을 따라 일어선다.

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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