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사람과도 일은 된다.
화면에 떠 있는 메일은 세 줄이었다. 커피는 식어 있었고, 답장 창 둘째 줄에서 커서가 깜빡였다. 시계를 보니 22분이 지나 있었다.
그 22분 동안 내가 한 일은 '말씀하신 대로'라는 말 한마디를 넣었다 뺐다 한 것이 전부다. 비꼬는 말로 읽힐까 싶어 지웠다가, 너무 퉁명스러워 보여서 다시 넣었다. '말씀대로'로 줄여 봤다가 결국 통째로 지웠다. 23분째에 보내기를 눌렀다. 정작 그 답장에는 납품 일정 얘기가 한 줄도 없었다.
그 메일을 처음 연 것은 오전 10시였다. 점심을 먹고 와서 또 열었고, 4시에 한 번 더 열었다. 문장은 그대로인데 읽을 때마다 무게가 늘었다. 퇴근 무렵 네 번째로 열었을 때는 '검토 부탁드립니다'에서 눈이 멈췄다. 부탁이 아니라 통보처럼 읽혔다. 답장 창을 띄운 것이 그때였다.
퇴근길 1호선 안에서도 나는 이미 보낸 답장을 고쳤다. 손잡이를 잡고 선 채로, 쓰지도 않은 문장 두 개를 머릿속에서 끼워 넣었다. 역에서 내려 집까지 걸으면서도, 현관에서 구두를 벗으면서도 고쳤다. 다음 날 아침 바카라상에 앉아 일정표를 펼쳤을 때, 납품일 칸은 전날처럼 비어 있었다.
그 주에 밀린 것은 내 기분이 아니라 금요일 납품이었다.
메일함에 그 사람 이름이 보이면 나는 다른 메일부터 연다. 급하지 않은 공지, 지난주 회의록, 광고 메일까지 다 읽고 나서야 그 이름을 누른다. 그 사람과는 2년 전 제품 개발 과제에서 처음 같이 일했다. 첫 디자인 리뷰에서 그는 우리 팀이 낸 콘셉트를 두 번 되물었다. "이 손잡이 각도는 근거가 뭡니까?" "사용자 테스트는 언제 하신 겁니까?" 짧은 질문 두 개였다. 그 두 질문을 2년 동안 두고두고 꺼내 본 쪽은 나였다.
같은 날 오후, 협력사에서 다섯 줄짜리 메일이 왔다. 목업에 입힐 색상 샘플이 하루 늦게 들어온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40초 만에 답했다. "좋습니다. 월요일 오전에 보겠습니다." 메일은 그쪽이 더 길었는데, 답장에 걸린 시간은 서른 배 넘게 짧았다. 내 손을 붙잡은 것은 메일의 길이가 아니었다.
22분 동안 내가 읽은 것은 세 줄이 아니라 줄과 줄 사이의 여백이었다. 거기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다. 쓰여 있지 않은 자리는 읽는 사람이 채운다. 나는 그 여백에 '이거 나한테 떠넘기는 거잖아'라고 적어 넣고, 내가 적은 그 문장에 답장을 쓰느라 22분을 보냈다. 여백에 적힌 글씨는 전부 내 글씨다.
여백을 못 견디는 건 회사에서만이 아니다. 미국에 있는 딸에게서 '응' 한 글자가 온 밤, 나는 그 한 글자를 한 시간 동안 들여다봤다. 피곤한가, 돈이 필요한가, 무슨 일이 있나. 다음 날 걸려 온 전화에서 딸은 리허설이 길어져 침대에 누운 채로 겨우 눌렀다고 했다. 한 글자 뒤에 내가 붙인 세 줄은 모두 내가 지어낸 것이었다. 여백을 견디지 못하는 건 성격이라기보다 버릇에 가깝다. 버릇이라면 손쓸 방법이 있다.
열흘쯤 뒤, 그 사람에게서 또 메일이 왔다. "금요일까지 저도 받아야 해서요." 보낸 시각은 밤 열한 시 넘어서였다. 그 사람도 누군가에게 금요일을 약속해 놓고 밤늦게까지 그 약속에 쫓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여백을 채운 건 내 손이었다. 다만 처음으로, 그 자리에 내 말이 아니라 그쪽 사정을 적어 넣었다.
그 뒤로 내가 바꾼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방법은 세 단계다. 단계마다 종이에 적는 것이 하나, 입으로 하는 말이 한마디씩 따라붙는다.
첫째, 기록으로 옮긴다. 비슷한 메일이 또 왔을 때 나는 답장 창을 닫고 서랍에서 이면지를 꺼냈다. 가운데를 접어 왼쪽에는 일어난 일만, 오른쪽에는 내 기분을 적었다. 왼쪽은 두 줄에서 끝났다. 렌더링 시안 확정이 이틀 밀렸다, 금요일 납품일은 그대로다. 오른쪽은 아홉 줄까지 갔다. 왜 나한테만 말을 저렇게 하나, 작년에도 그랬다,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러는 것 같다. 아홉 줄을 다 적고 소리 내어 읽었다. 그중에 금요일을 앞당겨 주는 문장은 하나도 없었다. 종이를 접어 왼쪽만 보이게 놓고 혼잣말을 했다. "막힌 건 납품일 한 줄이다." 오른쪽 아홉 줄은 지우지 않았다. 지우려고 적은 종이가 아니라, 접어 두려고 적은 종이다. 접은 종이는 서랍 맨 위 칸에 넣었다. 월요일 아침에 다시 꺼내 왼쪽 두 줄만 읽었고, 오른쪽은 펴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자 오른쪽에 뭐라고 썼는지도 가물가물했다.
둘째, 연락 창구를 하나로 줄인다. 그 사람은 같은 건을 전화로 한 번, 메신저로 한 번, 메일로 한 번 보내곤 했다. 세 번의 말이 조금씩 달랐고, 나는 그 다른 부분마다 속뜻을 찾느라 진을 뺐다. 다음 날 나는 그 사람 자리로 가서 모니터 옆에 서서 말했다. "이 건은 메일로만 주고받으면 어떻겠습니까. 전화랑 메신저로 같이 오면 제가 놓칩니다." 그 사람이 화면에서 눈을 떼고 한 번 끄덕였다. "그게 낫겠네요. 저도 어디까지 말했는지 헷갈렸습니다." 그날 이후 그 건은 메일 한 곳에서만 오갔고, 내가 의심할 문장도 그만큼 줄었다.
셋째, 합의만 남긴다. 그 주 회의가 끝날 무렵 나는 수첩을 덮으며 말했다. "정리하면 최종 도면 납품은 금요일 오전, 고객사 검수는 월요일입니다. 이 두 줄만 메일로 보내 드릴게요." 수첩에 적힌 것도 그 두 줄이었다. 자리로 돌아와 보낸 메일의 제목은 '금요일 오전 납품 / 월요일 검수'였고, 본문도 두 줄이었다. 회의실에서 들고 나와야 할 것은 합의 두 줄뿐이다. 그 메일에는 '말씀하신 대로'가 들어가지 않았다. 넣을 자리가 없었다.
그 주 금요일 오전 11시, 도면과 렌더링 파일 납품이 끝났다. 그날 그 사람과 나눈 말은 세 마디였다. 파일 보냈습니다, 받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이가 좋아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은 됐다.
종이는 한 장이면 된다. 금요일 퇴근 전 15분, 그 주에 가장 자주 떠오른 사람 한 명에 대해서만 적는다. 왼쪽 칸이 세 줄을 넘으면 사람이 아니라 일이 꼬인 것이고, 오른쪽 칸이 열 줄을 넘으면 그 주에 내가 많이 지쳤다는 신호다. 처방도 다르다. 앞의 경우는 일정표를 다시 짜야 하고, 뒤의 경우는 토요일에 좀 자야 한다.
지난주 그 사람 때문에 쓴 시간을 한번 셈해 보면 좋겠다. 메일을 다시 열어 본 시간, 지하철에서 답장을 고친 시간, 동료에게 하소연한 시간. 그중 일정표에 한 줄이라도 보탠 시간은 몇 분이나 될까. 그리고 지난주 미뤄진 그 한 줄은, 정말 그 사람 때문에 미뤄진 걸까.
물론 종이 한 장으로 매번 풀리지는 않았다. 일이 다시 꼬인 날을 돌아보면, 내가 저지른 실수는 늘 비슷했다.
첫째는 오른쪽 칸을 건너뛰는 것이다. 일어난 일만 적고 기분은 적지 않는 쪽이 어른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적지 않은 기분은 사라지지 않고 집까지 따라온다. 토요일 아침, 접시를 닦던 아내가 수도를 잠그며 말했다. "그 얘기, 지난주에도 했어." 식탁 밑에 있던 포가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 나는 행주를 받아 들었다. 그날 오후 이면지를 한 장 더 꺼내 오른쪽 칸만 채웠다.
둘째는 창구를 줄이면서 사람까지 줄여 버리는 것이다. 메일로만 하자고 해 놓고 복도에서 인사까지 건너뛰면, 상대는 창구가 줄어든 게 아니라 자기가 밀려난 줄로 안다. 줄이는 것은 연락 경로지 사람이 아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층수 버튼을 대신 눌러 주는 데는 삼 초면 된다. 지난달에는 그 사람이 먼저 눌러 줬다. 내가 양손에 샘플 박스를 들고 탔을 때 몇 층이냐고 물었고, 나는 층수를 말했다. 그 삼 초 덕분에, 다음 메일의 여백에 내가 적어 넣는 말이 조금 순해졌다.
셋째는 합의 두 줄을 머릿속에만 두는 것이다. 회의에서 다 정했다고 믿고 메일을 보내지 않은 적이 있다. 다음 주에 우리는 같은 회의를 다시 했다. 같은 안건을 두 번 다루는 자리에서는 둘 다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진다. 그날 회의록에는 '협의 완료' 네 글자만 적혀 있었다. 같은 네 글자를 두고, 둘은 서로 다른 내용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회의가 끝나고 내가 보낸 메일은 역시 두 줄이었다.
여백을 채우는 손은 늘 내 손이었다.
지난주 수요일에도 나는 보내지 않은 답장을 머릿속에서 세 번 고쳐 썼다. 퇴근길 1호선에 서 있는 동안에. 그래도 다음 날 아침에 내가 한 일은 서랍에서 이면지를 꺼내 가운데를 접는 일이었다.
어제 오후, 그 사람이 보낸 네 줄 앞에서 커서가 또 둘째 줄에 와서 깜빡였다. 나는 답장 창을 닫고 종이를 꺼냈다. 왼쪽 칸에 두 줄을 적었다. 오른쪽 칸은 아직 비어 있다.
두 번째 사규 제14조 싫은 사람과도 일은 된다. 감정을 처리하려 들지 말고, 일을 처리하면 된다. 순서를 바꾸면 둘 다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