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긴 연락은 대개 잠긴 것이 아니다. 아무도 틀지 않았을 뿐이다.
연락이 뜸해진 지 반년이 넘었습니다. 며칠 전 생일 알림이 떠서 화면을 한참 보다가 그냥 닫았습니다. 서운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제가 먼저 하면 되는데 손이 안 갑니다. 이대로 두어도 되는 건지, 붙잡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반년 만에 그 이름을 눌렀던 밤이 있다. 신호가 두 번 가고 목소리가 왔다. 잘 지내냐, 잘 지낸다, 애들은 컸지. 서로 아는 것을 한 번씩 확인하고 나니 할 말이 비었다. 휴대폰 너머로 숨소리만 건너왔다. 내가 먼저 바쁠 텐데 들어가, 하고 끊었다. 화면에 1분 12초가 남았다. 그 뒤로 나는 다시 걸지 않았다.
그 어색함을 오랫동안 내 탓으로도 그 친구 탓으로도 두지 못했다. 며칠 뒤 사무실 복도 끝 청소용 싱크대 앞에 섰다. 몇 달 아무도 쓰지 않은 곳이었다. 개수대 바닥에 마른 흙이 얇게 앉아 있었다. 꼭지를 돌리자 쇳내 나는 붉은 물이 쏟아졌다. 나는 손을 뺐다. 그래도 꼭지는 잠그지 않았다. 삼십 초쯤 지나니 물이 맑아졌다. 손을 담그자 차가웠다.
그날 밤의 어색함도 그런 것이었다. 변심이 아니라, 고여 있던 시간이 먼저 흘러나온 것이다. 싱크대 앞에서는 기다렸는데, 전화 앞에서는 그 몇 초를 받아 보지 못하고 손을 뺐다. 조금 더 두었으면 맑아졌을지는 아직 모른다.
멀어짐에는 대개 범인이 없다. 그 사람이 돌아선 날도 없고 내가 돌아선 날도 없다. 각자 바쁜 몇 달이 있었고, 그 몇 달이 몇 달 더 이어졌다. 서운할 사람을 찾지 못하면 마음은 자기한테로 돌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멀어진 자리에 자기 이름을 적어 두고 혼자 미안해한다.
나도 그랬다. 먼저 끊은 것도, 다시 걸지 않은 것도 나였으니까. 그런데 돌아보면 나는 꼭지를 잠근 적이 없다. 다시 돌리지 않았을 뿐이다. 틀지 않은 것과 잠근 것은 다르다. 잠근 것은 다시 열어야 하지만, 틀지 않은 것은 돌리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멀어졌다고 말할 때, 잠그는 손을 실제로 본 적이 있는가? 서운한 일이 분명히 있었다면 그건 다른 이야기다. 그때는 꼭지가 아니라 배관을 들여다봐야 한다.
붙잡는다는 말이 이 자리에 맞는지도 모르겠다. 붙잡는 일은 가려는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지금은 아무도 가지 않은 자리에서 꼭지를 한 번 돌려 보는 일에 가깝다. 그러니 질문을 바꿔도 된다. 붙잡을지가 아니라, 한 번 돌려 볼지로. 돌려 보지 않기로 해도 된다. 쓸 일이 없어 그대로 둔 수도가 집에도 한둘은 있다. 그것을 버렸다고 하지는 않는다.
나는 자주 연락하는 친구가 많지 않아서 그 한 사람이 뜸해지면 자리가 크게 빈다. 그래서 겁이 나고, 겁이 나니까 더 늦어진다. 지금도 주소록을 그 이름까지 내렸다가 다시 올려 둔다. 그 반년 동안 그 사람도 내 이름까지 내려갔다 올렸는지는 묻지 못했다. 어쩌면 둘 다 서로의 이름 앞에서 같은 높이로 멈춰 있었을지 모른다.
첫째, 처음은 짧게 하고 끝을 먼저 정해 둔다. 생일 알림이 다시 뜨면 축하 한 줄만 보내도 된다. 전화라면 3분을 정하고 알람을 맞춘 뒤 걸어도 괜찮다. 끝이 정해져 있으면 할 말이 비는 몇 초가 실패로 보이지 않는다. 붉은 물이 빠지는 시간으로 보인다.
둘째, 그 사람과 얽힌 물건 하나를 눈에 보이는 데로 옮겨 둔다. 같이 산 컵, 빌려 온 공구, 받은 바카라 한 권. 서랍에서 꺼내 바카라상 위나 식탁 끝에 둔다. 걸지 말지는 화면 앞에서 정하지 말고, 그 물건을 며칠 보고 나서 정한다. 화면은 몇 초 만에 닫히지만 물건은 며칠을 곁에 머문다. 겁이 결정하던 자리를 시간이 대신 결정하게 된다.
셋째, 올해는 걸지 않기로 정하는 쪽도 답으로 남겨 둔다. 그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지금은 내 차례가 아니라고 정해 두는 것이다. 대신 내년 같은 날에 다시 묻기로 달력 끝에 한 줄 적어 둔다. 그렇게 정해 두면 이름이 떴을 때 미안함이 덜 따라붙는다. 버린 것이 아니라 미뤄 둔 것이 된다.
흔한 실수는 첫 통화의 어색함을 관계의 답으로 읽는 일이다. 그 어색함을 메우려고 반년치 안부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도 같은 실수다. 처음 나온 붉은 물을 컵에 받아 들고 이 수도는 이제 못 쓰겠다고 말하거나, 맑아지기도 전에 꼭지를 끝까지 돌려 버리는 셈이다.
그 복도 끝 싱크대는 지금도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지나갈 일이 있으면 나는 꼭지를 한 번 돌려 두고 기다린다. 붉은 것이 빠지는 동안 창밖을 본다. 싱크대 앞에서 배운 것을 아직 그 이름 앞에서는 해 보지 못했다.
그 이름은 지금도 주소록의 같은 자리에 있다.
▷ 오늘 하나만 : 그 친구와 얽힌 물건 하나를 눈에 보이는 자리에 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