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데 쓴 힘은 사라지지 않는다. 발끝에 남는다.
낮에는 잘 참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녁 식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목소리가 커집니다. 정작 화가 난 자리에서는 한마디도 못 했어요. 미안하다고 해 놓고 다음 주에 똑같이 반복합니다. 참는 게 답이 아니라면, 화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고3 가을, 저녁마다 택견 도장에 다녔다. 그날은 오래 다닌 선배와 견주기를 했다. 서로 품을 밟으며 간을 보던 중에 선배의 째차기가 내 볼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아프지도 않았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간 정도였다. 그런데 얼굴이 먼저 뜨거워졌다. 당황보다 화가 빨랐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화에 나는 품을 버렸다. 발을 멈추고, 앞뒤 가리지 않고 차고 들어갔다. 막히면 또 들어갔다. 결국 관장님이 둘 사이에 팔을 넣어 말렸다. 그 견주기는 내가 졌다.
견주기가 끝나고 관장님이 나를 불러 짧게 말했다. "스친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네가 진 건 그다음이다." 그 말이 맞았다. 나를 진 사람으로 만든 것은 선배의 발 하나가 아니라, 그다음에 쏟아 낸 내 발 열몇 개였다.
그날 밤 집에 오는 길에 알았다. 볼을 스친 것은 선배의 발이었지만, 터진 것은 그날 하루였다. 아침에 받은 모의고사 성적표, 교무실 앞에서 들은 한마디, 집에서 꺼내지 못한 진학 얘기. 낮 내내 잘 참았다고 여긴 것들이 저녁 도장에서 한꺼번에 나왔다. 선배는 그 시간에 내 앞에 서 있었을 뿐이다.
서른 해가 넘게 지났는데 구조는 그대로다. 회의실에서 한마디도 못 한 날, 저녁 식탁에서 반찬 그릇 하나에 목소리가 커진다. 숟가락 소리가 멈춘다. 사과는 그날 밤에 한다. 그다음 주에 또 같은 일이 있다. 낮에 참는 솜씨는 해마다 늘었는데, 저녁에 새는 자리는 그대로다.
택견에는 품밟기가 있다. 견주는 내내 발을 멈추지 않고, 무릎을 굼실 굽혔다 펴며 몸을 출렁이게 둔다. 처음에는 왜 가만히 서 있지 않느냐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품은 힘을 흘려보내는 자리다. 들어온 충격도, 치밀어 오른 열도 무릎과 발바닥을 지나 바닥으로 빠진다. 그날 내가 진 순간은 째차기를 맞은 순간이 아니라 품을 멈춘 순간이었다. 우리가 참았다고 말할 때, 대개는 흘려보내지 않고 굳혀 두었다는 뜻이다. 굳은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쌓였다가, 아무 상관 없는 발끝 하나에 한꺼번에 무너진다.
화는 상대를 고르지 않는다. 시간을 고른다. 낮에 나오지 못한 말은 저녁에 나온다. 낮에 앞에 있던 사람에게 가지 않고, 그 시간에 앞에 서 있던 사람에게 간다. 가장 만만해서가 아니라 가장 가까이 있어서다. 지난주에 커진 목소리는, 원래 누구 앞에서 나오려던 말이었을까?
그래서 필요한 것은 흘려보낼 자리 하나다. 화를 지우는 훈련은 나에게 아직 멀다. 흘려보낼 자리를 하나 정하는 일은 오늘 저녁에도 된다. 대학에 가서도 택견 동아리를 사 년 했고, 지금은 하지 않는다. 품을 밟을 도장은 없어졌지만 대신 아파트 현관 앞 계단에서 잠깐 선다. 층수를 세면서 한 번 올라갔다 내려오는 날도 있다. 발이 그 리듬을 아직 기억한다.
첫째, 집에 들어가기 전에 들를 한 자리를 미리 정해 둔다. 아파트 계단참, 주차장 옆 화단, 역에서 나와 집 쪽으로 꺾어지는 골목 모퉁이. 화가 난 날에만 쓰는 자리여야 발이 그리로 간다. 오늘 저녁 그 자리를 하나 정해 두면 달라진다.
둘째, 그 자리에서 힘을 흘려보내는 순서를 지킨다. 무릎을 한 번 굽혔다 펴고, 어깨를 내리고, 마지막에 손을 편다. 도장에서 배운 것을 지금 쓸 수 있는 만큼만 줄이면 이 세 가지다. 숨은 그다음에 알아서 내려온다. 문을 열기 전에 한 번 해 볼 만하다.
셋째, 화가 원래 가려던 자리로 짧은 한 문장을 돌려보낸다. 따지는 말일 필요는 없다. 알리는 말로 충분하다. "아까 그 말씀은 저에게 조금 어려웠습니다." 그때 못 했으면 다음 날 아침에 보내도 좋다. 다만 그 자리에 서서 휴대폰부터 꺼내면 소용이 없다. 알림 하나에 굳혀 둔 것이 다시 차오른다.
흘려보낼 자리가 하나 있으면, 화도 갈 데를 안다.
▷ 오늘 하나만 : 집에 들어가기 전 멈춰 설 한 자리를 정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