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하얀 연기를 뿜는 일
내가 스스로 하얀 연기를 뿜는 굴뚝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탁자에 놓여있는 아버지의 담뱃갑에서 몰래 한 개비의 하얀 막대를 꺼내 들었을 때, 나는 연기를 뿜는 굴뚝이 되었다.
나는 이제 익숙한 굴뚝이다.
내가 일상을 보내며 사람보다 하얀 연기를 뿜게 되는 것은 일상 속에 잠시 기대어 짧은 사색을 즐기는 것이 체화되었기 때문이다. 굴뚝을 막아보기도 했고, 칠을 해보기도 했지만, 다시 그렇게 나의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게 되었다.
누군가는 끊기 힘든 중독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싫어하는 냄새를 스스로 뿜고 있지만,
나에게는 사람보다 잠시 기댈 수 있는 한숨 돌리는 일상의 몇 분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뿐이다.
백해무익한 담배가 뭐가 좋다고 먹냐는 사람도 있지만, 딱히 귀에 들어오진 않는다.
나에게는 이 하얀 연기가 만들어내는 것들이 무언가를 만들었다가 사라지는 것이 좋다. 오래 머물지도 않고, 잠시 머물렀다 사라져 버리는 것이 마음에 든다.
누군가는 기호식품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전부 애연가들의 당당한 변호일 뿐이고.
세상은 모두가 갈망하고 소원하는 건강이라는 슬로건 아래 금연이라는 단어를 여기저기 붙여 놓은 세상이 되었을 뿐이다. 이미 공해를 먹고살고 있음에도 말이다.
여전히 나는 카페나 술집에서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 그리울 뿐이다. 이제는 사람이 없는 골목을 찾거나 죄지은 사람처럼 숨어 피기 바쁘고, 스쳐가는 사람이 있으면 손 뒤로 숨겨놓고, 연기를 머금고 있다가 지나가면 뿜는다. 어느 날은 거리에 흡연 부스를 발견하게 되면, 그 안에 서로 다른 숨을 쉬며 하얀 연기를 뿜는 사람에게 동지감을 느낄 때도 있다. 소외 아닌, 소외된 사람들이 모인 곳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같은 사연을 뿜는 잠시 그렇게 숨을 돌리고 가는 사람들처럼.
담배 연기.
아버지의 허공에는 늘 하얀 소용돌이가 살았다. 허리를 구부리고 후, 하고 숨을 내뱉으면 그의 안에서 몸을 부풀린 은빛 뱀 한 마리가 지붕을 뚫고 하늘로 흘러 올라갔다.
그것은 차마 내뱉지 못한 문장들의 뼈대였다. 세상이 거두어 주지 않은 가난의 무거운 무게, 낮 동안 어깨를 짓누르던 타인의 눈총, 아이들에게 차마 넘겨주지 못한 쓰라린 고통이 그 작은 종이대 속에서 불꽃을 태우고 한 줄기 희끄무레한 숨결이 되어 스러졌다.
창가에 앉아 아버지가 뿜는 연기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가장 먼저 피어올라 당당히 형상을 갖추다가도, 손을 뻗으면 어김없이 가락지처럼 흩어져 버리는 것. 생(生)이란 결국 저렇게 잠시 뜨겁게 붉어졌다 사라지는 유령의 무도회가 아닌가.
어둠 속에 홀로 타들어 가는 작은 불씨 하나. 재가 되어 떨어지는 순간마저 연기는 하늘을 향해 마지막 경련을 연주한다. 잡을 수도, 머무를 수도 없지만 공기 중에 짙은 냄새를 남기고 떠나는 저 이별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그저 잠시 그윽한 향으로 흩어지는 존재일 뿐.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고 소용돌이는 한순간에 흩어져 형체를 잃지만, 방 안에는 여전히 그가 태우고 간 시간의 냄새가 아늑하고 서글프게 남아 있었다.
불을 붙이는 순간, 종이와 풀잎 사이에 작은 지옥 하나가 잉태된다. 후- 하고 내뿜는 숨결을 따라 가폐(假肺)를 나온 영혼들이 하얀 기체로 몸을 푼다.
허공으로 솟아오른 문장들. 형태를 얻자마자 스스로를 해체하는 저 지독한 자유를 보라. 잡으려 손을 뻗으면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흘러내려 기억의 눈꺼풀 뒤편으로 달아나는 미망(迷妄).
생(生)이란 본래 그리 고체(固體)가 아니었다. 우리가 단단하다고 믿었던 서약과 명예, 손에 쥐려 몸부림치던 사소한 욕망들까지도 시간이라는 희박한 공기 속에서 끝내 한 줄기 연기로 흩어질 환영에 불과했으니.
어둠의 정적 속에서 제 몸을 태워 빛을 내는 작고 붉은 불꽃. 재는 아래로 떨어져 땅의 정직함을 얻고, 연기는 위로 올라가 하늘의 무심함을 닮아간다. 몸을 녹여 공기를 채우는 저 짧은 열망의 궤적.
바람이 지나가면 형체는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겠지만, 폐부 깊숙이 새겨진 쌉싸름한 착각과 공기 중에 은은히 감도는 시간의 탄내만큼은 계절의 귀퉁이에 서늘하게 멈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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