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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꺼풀과 감기의 컬래버레이션

머리는 온통 따뜻한 쌍화차를 생각한다

by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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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돈 주고 쌍꺼풀을 한다는데, 실컷 자고 일어났더니 '쌍꺼풀'이 생겼다.

또 하나 친구가 생겼는데, 환절기 '감기'라는 녀석이다. 쉬는 날에 맞춰서 오랜만에 등장한 이 녀석이 싫다. 조금 더 두꺼운 옷을 꺼내 입고 나갈 준비를 하면서도 이 흔한 감기조차 친구로 달구 친해져야 한다는 사실이 그리 반갑지는 않았다.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어차피 길어봤자 며칠 있다가 고요히 사라질 녀석이다. 코를 훌쩍거리다가 핑크색 투구를 집어 뒤집어쓰고 거울에 서서 신기하게 생긴 쌍꺼풀을 잠시 바라본다.


접혀서 커진 눈.

부릅 떠보고 감았다 떠봐도 없어지지 않는다.

더 환해지거나 달라진 건 없는.

얼굴은 여기저기 열꽃을 피운다.

머리는 온통 허름한 다방에 쌍화차를 생각한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치르는 세속의 의식은 ‘몸의 흔적’을 감당하는 일이다. 예컨대 눈꺼풀 위에 그어진 얇은 주름 하나, 혹은 제 몸의 온도조절계가 고장 나 일시적으로 찾아오는 감기 같은 것들.


쌍꺼풀은 유전자라는 가혹한 디자이너가 인간의 눈가에 남긴 미학적 오차다. 접혀 들어간 살가죽 한 점 때문에 눈은 그늘을 품고, 그 그늘 덕분에 눈빛은 깊어진다. 누군가는 눈썹 밑의 그 작은 주름을 갖기 위해 메스를 대고 수술실의 조명 아래 눕는다. 하지만 눈꺼풀을 찢어 만든 접힘이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자연스러운 주름이나, 결국은 내 안의 빛과 외계의 빛이 충돌할 때 생겨나는 그늘의 상징일 뿐이다. 눈을 감으면 사라지고, 눈을 뜨면 선명해지는 얇은 주름.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매일 아침 눈꺼풀에 끊어 넣는 가벼운 가로줄표다.


반면, 감기는 영혼의 미학적 오차가 아니라 생명의 균열이다. 바이러스라는 아주 작고 무례한 손님이 찾아와 내 몸의 문을 걷어차면, 나는 비로소 내가 단단한 돌이 아니라 피와 살로 이루어진 무른 존재임을 깨닫는다. 열이 오르면 세상의 마찰력이 느껴진다. 스치는 바람도 찌르는 가시가 되고, 넘기는 침 한 모금도 작은 칼날을 삼키는 일이 된다. 감기는 인간이 유일하게 공평하게 나눠 가지는 통증의 민주주의다. 왕도, 시인도, 길거리의 방랑자도 콧물을 흘릴 때만큼은 똑같이 무력하고 진실해진다.


문득 깨닫는다. 쌍꺼풀과 감기는 모두 ‘열림과 닫힘’ 사이의 생애적 징후라는 것을.


쌍꺼풀은 외부를 향해 눈을 열 때 생겨나는 주름이다. 세상을 더 깊이, 더 그럴듯하게 바라보겠다는 욕망의 흔적이다. 그러나 감기는 세상을 향한 문을 잠시 닫으라는 몸의 비명이다. 눈꺼풀을 감고, 이불을 턱 밑까지 올려 덮고, 타인과의 거리를 두라는 몸의 다정한 자갈채움이다.


우리는 늘 쌍꺼풀을 짓듯 세상을 향해 또렷하고 세련된 눈빛을 보내고 싶어 한다. 나를 더 선명한 윤곽으로 남기고 싶어 애를 쓴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계절의 모퉁이에서 예고 없이 감기를 맞닥뜨릴 때, 비로소 또렷했던 선들은 흐려지고 눈꺼풀은 무거워진다.


눈을 감으면 쌍꺼풀은 거짓말처럼 펼쳐져 사라진다. 선이 사라진 매끄러운 눈꺼풀 아래서, 우리는 뜨거운 숨을 내쉬며 고열의 밤을 견딘다.


아름다워지려는 찰나의 주름(쌍꺼풀)과, 약해진 나를 증명하는 며칠간의 통증(감기). 인간의 삶이란 어쩌면 이 두 가지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눈을 떠 세상을 또렷이 담아내다가도, 제 온도를 견디지 못해 으슬으슬 떨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밤.


오늘, 감기 기운으로 뜨거워진 눈꺼풀을 무겁게 내려놓는다. 눈을 감자마자 쌍꺼풀의 그늘은 지워지고, 오롯이 나만의 열기만 남아 어둠 속에서 조용히 끓어오른다.


세상을 보느라 수고한 눈에, 그리고 세상을 견디느라 애쓴 몸에 내려지는 가장 감각적이고 다정한 휴업 명령. 그것이 내가 앓는 감기이자, 내가 눈을 감는 이유다.


무거웠던 눈꺼풀이 천천히 올려지고, 사라졌던 가로줄 하나가 다시 고스란히 겹쳐진다. 선이 짙어지며 눈앞의 세상이 한층 또렷하고 선명하게 차오른다. 으슬으슬했던 계절을 통과해 낸 눈빛에는 이전에는 없던 투명한 깊이가 고여 있다. 감기가 내 몸의 낡은 온도를 털어낸 자리에, 쌍꺼풀은 다시 세상을 마주할 미학적 서명을 새겨 넣는다.


삶이란 결국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눈을 감아 통증을 품는 시간과, 눈을 떠 다시 그늘을 지으며 세상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시간의 끝없는 번갈아듦.


감기가 몸을 씻어 내린 정갈한 아침, 나는 다시 얇은 주름 하나를 얹은 채 세상을 향해 맑은 눈을 뜬다. 단단해진 몸과 짙어진 눈빛으로, 살아있다는 이 사소하고도 눈부신 축제를 향해.


그런데 왜 이렇게 콧물은 어벙이처럼 흐르는 것일까.

Shit.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로 한다. 햇살을 쪼여야겠다.


Blind


쌍꺼풀과 감기의 컬래버레이션.

그래도 쉬는 날이니 즐겁다고 세뇌한다.

쌍꺼풀도 생기고

감기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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