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바이올렛 : Deep Violet

어둠이 가장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색

by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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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끝내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오래 식어버렸고, 슬픔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지나치게 아름다운 것들. 나는 그것들을 한데 모아 보라색이라고 불렀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서조차 완전히 검어지지 못한 마음, 소멸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만의 빛깔을 포기하지 않는 것들의 색.


Deep Violet.


그것은 단순히 짙은 보라가 아니었다. 붉은색이 자신의 열정을 모두 소진한 뒤에야 도달하는 침묵이었고, 푸른색이 끝내 차가움을 견디지 못하고 깊은 곳으로 가라앉은 흔적이었다. 두 색이 서로를 밀어내고 상처 입히는 동안, 그 사이에서 태어난 어떤 색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은 채 고요히 깊어졌다. 나는 그 색에서 오래된 인간의 얼굴을 보았다. 사랑하면서도 파괴하고, 잊었다고 말하면서도 기억하며, 떠나온 곳을 미워하면서 평생 그곳으로 돌아갈 길을 찾는 얼굴을.


밤이 깊어지면 사물들은 본래의 이름을 조금씩 잃어간다. 유리잔은 투명함을 버리고 검은 빛을 머금으며, 창밖의 나무들은 자신이 한때 푸르렀다는 사실을 감춘다. 낮 동안 명확했던 경계들은 어둠 속에서 흐려지고, 우리는 비로소 사물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 오래 고여 있던 시간을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인간이 밤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어둠이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낮 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을 너무 많이 드러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한때 밝은 것을 믿었다. 선명한 색과 분명한 대답, 망설임 없이 자신을 증명하는 사람들. 세상은 빛을 가진 자에게 더 많은 자리를 내어주었고, 나는 그 빛에 가까이 가기 위해 내 안의 어두운 부분들을 하나씩 잘라냈다. 슬픔은 감추어야 했고, 질투는 부끄러워해야 했으며,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공허는 바쁜 일상으로 덮어두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밝아지는 대신 나 자신에게서 멀어졌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애쓰는 동안, 정작 나는 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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