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자리에서 나는 향기
어떤 사물도 강렬한 향기가 있다.
걸려 있던 두꺼운 자물쇠를 뚫고 들어오는 향기. 그것은 빈집에서 세월의 독한 냄새 가득한 공간에서 풍기는 것과 닮았다. 먼지가 끼고 추억에 잠긴 독특한 향기를 내는 향수병을 느낀다.
나비가 되기 전 서글픈 번데기의 꿈틀거림처럼.
수 천 개의 생각을 하며 허물을 벗기까지 잠들어 있는 것도 아닌 무거운 어둠 속에 부드럽게 떨리는 육체를 생각하면서, 날개를 빼어내 날아오를 때를 생각하며 탁한 공기 속에 취해 품은 상상의 나래에 파닥거리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거리의 악사가 켜는 바이올린이 흐느끼는 선율을 뒤로하고, 우울한 왈츠에 나른하고 어질 한 머리를 유지하기보단, 슬프고도 아름다운 향수병을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허무함을 눌러 버리는 일이 되었다.
천년 묵은 도시가 내뿜는 새로운 향기에 취해 갈 때쯤, 매혹적이면서도 옛사랑의 향수에 젖어 고물 향수병을 파는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이다. 을씨년스러운 날이 이어지고, 하루에 벗어던진 옷들을 옷장 구석에 내던지고, 창문을 열고 앉아, 시간을 깊게 하고, 관능을 파고드는 욕망에 젖어 어둡고 적막한 쾌락을 용량 넘치도록 가득 채워 향기를 더한다.
하얗고, 따사롭고, 구름이 베일이 되어 내려온 날도 언젠가 보았던 바닷가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지평선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다. 흐린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살이, 젖어 있는 풍경이, 가슴 한 구석에 남아 향기를 남기고 무정한 겨울이 다가오는 순간까지 아름다운 고양이 한 마리가 방안을 거닐 듯 돌아다닌다.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바라보는 풍경이 다락방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십자가들의 향연에, 수많은 굴뚝을, 도시의 돛대들을, 창공에 별들을, 달이 그 파리한 마법을 쏟아붓는 순간까지 향기에 취해 있어도 누구 하나 말을 시킬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푸르스름한 지평선에
사람들의 이름이 수를 놓고
언젠가 했던 입맞춤을 생각하고,
아침과 저녁을 노래하는 작은 새들의 노래를 듣다가,
작고 소박한 창가에 밀려드는 향수에 취해
가슴속에서 태양을 끌어내어 달에게 맡기고 앉아
불타오르는 생각들로 따사로운 대기를 만들어 내는 시간에 나만의 향기를 더해 담아본다.
유리병 속에 갇힌 바다는 잠잠하다.
빛이 굴절되는 푸른 수심 아래, 시절을 담그고 남은 고요가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다.
아스라이 번지는 투명한 기억의 단면. 어쩌다 파도 소리가 코끝을 스치면, 병목에 맺힌 작은 물방울은 이내 눈물이 되어 미끄러진다.
깨질 듯 위태로운 평온 속에서 나는 고향을 앓는다.
돌아갈 수 없는 계절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면, 마음은 바닥을 드러낸 오목한 유리처럼 시리도록 선명해진다.
시들지 않는 내가 품은 꽃에 물을 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