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어

나와 그림자

by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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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폭풍우 몰아친 밤이 지나간 다음날처럼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햇살아래 그림자가 드러났다.


어느 골목 어귀 벽에 기대어 있는 나를 짊어진 그림자를 발견한다.

눈에 보이는 파괴와 명백한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표정도 형태도 없는 검은 것이 늘어져 있었다.

위선적인 애정으로 가려줄 검은 장막이 필요 없어 보여 그대로 따라다니게 내버려 두기로 한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해 보이지만, 침묵의 병을 앓게 두기로 한다.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혼동해 보이기도 하여 잠시 그렇게 기대어 있으라고 말해주었다.

좀 더 완전한 삶은 없다고.

그럴싸한 완벽한 행복은 없다고.

꿈의 실현을 원한다면 그냥 거기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다.


그저 너나 나나 인간이기에 필요한 것을 원하고, 인간이기에 필요하지는 않아도 원하는 것이 생길 뿐이라고 말을 더해줬다. 똑같이 갈망한다면 너와 나는 싸우게 될 거라고.


지금의 완벽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마치 일용한 양식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니, 그냥 흘러가자고 말해준다. 하늘의 달을 손에 넣을 방법이 있기라도 한 듯 달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 너나 내가 갖고 있는 그저 불타오르다 사라질 낭만주의의 병폐인 그룹에 속한 것뿐이라고 말해준다.


저급한 영역보다 그것이 낫다며.

우리의 내밀한 영역에서도 똑같은 병폐가 발생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자고 말이다.


마음에 그렸던, 개성이 강하고 위풍당당한 인간으로 살아보려고 노력이나 해보자고. 그럴 때마다 그런 삶을 시도하는 나 자신이 우스워서 견딜 수 없더라도, 그게 너고 나라고.


인간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런 유혹을 비웃는 사람마저도,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 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겠냐마는 너나 나나 상관없는 삶이니 조용히 살아가자고 말해준다.


승리를 거두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이미 세상천지 넓렸으니, 나에게 이런 고귀한 역할을 부여해 볼 때가 만약이라도 찾아온다면 천박하게 웃지는 말자고 말해준다.


골목길 너머로 보이는 조잡한 건물들 사이에 꿈에서 조차 나를 졸렬하게 만드는 너절한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그저 너와 나는 조용히 기대어 살자고 말해준다.


모든 환상보다는

지금의 햇살이 보여주는 것들이 무언인지, 오래되고 더럽고 짝이 모자라 쓸모없는 카드는 만들지 말자고 말해준다.


사람들이 흘리고 간 식탁보를 가는 일도 제법 괜찮다고.

수취인 불명의 우편물 같은 것들 사이에서 무게로 달아 팔려가는 신세는 되지 말자고 말해준다.


그렇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서로에게 기대어 고요히 살자고 말해준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