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쓰지 말고, 오래 쓰고 싶다

문학에 기대어

by구시안
문학 구시안.png


쉽게 쓰지 말고, 오래 쓰고 싶다.


나에게 글을 쓰는 시간이란 밤이다.

쉬는 날을 제외하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다시는 밤에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쉽지가 않다. 밤이 깊어질수록 생각은 많아지고, 하루 동안 미처 꺼내지 못했던 감정들이 어둠을 틈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이왕이면 모든 것을 낮에 끝내려 했다. 스스로 허락한 시간을 지나 깊은 밤을 보내고 나면, 그 다음 하루의 일과가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삶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일과 하루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글을 쓰려면 결국 남겨지는 시간은 밤뿐이다.


어쩌면 다시 밤과 친해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일을 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익숙해진 일이라고 해서 쉬운 일은 아니다. 하루를 온전히 살아낸 뒤, 남은 시간의 한 귀퉁이를 떼어내 문장 앞에 앉는 일. 어떤 날에는 그 작은 시간마저 허락되지 않는다. 쓰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쓸 수 없는 날도 있고,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도 마음이 이미 하루의 끝에 다 닳아버린 날도 있다.


그런 밤이 다시 찾아왔다.

나는 늦은 시간 바카라상 앞에 앉아 다른 사람들이 올려놓은 글을 읽는다. 하루가 끝난 뒤 각자의 자리에서 건너온 문장들. 누군가는 외로움을 쓰고, 누군가는 사랑을 쓰고, 누군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하루의 한 장면을 오래 들여다본다.


밤을 수놓는 언어들의 향연.

낮에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던 감정들이 어둠 속에서 조금씩 선명해진다. 낮의 말들이 사람과 세상을 향해 있었다면, 밤의 말들은 조금 더 깊은 곳을 향한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마음의 안쪽, 하루 동안 눌러두었던 생각, 지나간 사람의 이름 같은 것들이 문장 사이에서 별처럼 떠오른다.


나는 그 글들을 읽으며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밤을 들여다본다.

누군가에게 밤은 기다림이고, 누군가에게는 후회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겨우 자신으로 돌아오는 시간일 것이다. 같은 어둠 아래에서도 사람마다 다른 밤을 살아간다. 서로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장이라는 작은 불빛을 켜놓고, 각자의 밤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 단어들이 깊어졌다.

밤이 깊어진 만큼 문장도 깊어지고, 문장이 깊어진 만큼 사람의 마음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낮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말 하나가 밤에는 오래 머문다. 별것 아닌 문장 하나가 이상하리만큼 마음에 걸리고, 이미 알고 있던 단어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밤은 늘 그랬다.

사람들이 하루를 내려놓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다시는 밤에 글을 쓰지 않겠다고 했던 마음도 어느새 희미해졌다.

결국 내가 피하려 했던 것은 밤이 아니라, 밤이 데려오는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낮에는 견딜 수 있었던 것들이 밤이 되면 문장이 되고, 문장이 된 것들은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밤은 쓰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마주 보는 시간이다.


하루의 마지막에 남은 몇 시간을 잘게 쪼개 문장 위에 올려놓는다. 피곤함도, 망설임도,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도 함께 올려놓는다. 그리고 한 줄씩 써 내려간다.


오늘도 누군가는 자신의 밤을 쓰고 있고,
나는 나의 밤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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