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벽이 되는 일

by구시안
뒷골목 구시안.png


눈길들이 치유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투원반처럼 멀리 던져 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러고 싶다. 별이 총총 박힌 앞얼굴이 오가는 순간에 저 멀리 나를 넘어 바깥으로. 두드려서라도 떼어내고 싶은 것이 있다.


헤엄치는 말을 어스름이 가져가는 시간이 되어서야, 달아나기 시작한 붉은 앵무새들이 내 입속에서 미사여구를 읽어낸다. 불게 갇힌 벽돌 사이에 자리하여 생각한다. 이번에도 다를 것은 없을 것이라고.


어느 계절의 유배지에서 건져 올린 붉은 뼈 바람이 스치고 간 자리에 남은 가장 단단한 침묵. 너는 천 년의 마름을 견딘 가난한 태양의 혈흔이자, 한때 두 손으로 빚어낸 가장 뜨거운 기도의 서판이다.


어깨와 어깨를 포개어 쌓아 올린 서랍마다 이름 없는 이들의 숨소리가 퇴적암처럼 엉켜 있고, 모서리는 마모되었으나 눈물마저 삼킨 각(角)은 무너지는 세상을 지탱하는 마지막 균형이다.


집이란 무엇인가 잠시 머물다 허물어질 가짜 지평선 아래서 바닥을 다지는 자의 헐벗은 손바닥을 기억하는 일. 우리는 누군가의 터전이 되기 위해 제 몸의 물기를 말끔히 지우고 붉은 문신을 새겼다.


균열이 가도 흩어지지 않는 것들의 깊이에 대하여 가장 무거운 침묵이 가장 높이 세워지는 순간에 대하여 비바람 속에서도 식지 않는 불꽃의 앙금은 오늘도 찬란히 금 간 벽채의 그림자를 밀어 올린다.


연대와 희생을 갖고 있는 붉은 벽돌을 생각한다.

그 밀도가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단단한지 모르지만, 물러 터진 사람의 마음보다는 단단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허공을 향해 쌓아 올린 마지막 성벽이 아니며 지나간 세월의 무덤을 두르는 차가운 담장도 아니다. 다만, 부서진 틈새 사이로 스며드는 새벽빛을 견디며 제 안의 뜨거웠던 불길을 마저 삭이는 일의 연속일 뿐.

세상의 모든 수직이 무너져 내릴 때 바닥에 엎드려 스스로 모서리가 된 자들은 알 것이다. 가장 깊은 그늘을 견뎌낸 붉은 결은 결코 부서지지 않는 하나의 지평선을 이룬다는 것을.


이제 바람은 지붕 위를 넘어 더 먼 길을 떠나고 우리가 이룩한 침묵의 반올림 위로 이름 없는 새 한 마리가 가벼운 날개를 툭, 털며 앉는다. 그 순간, 억겁의 무게로 굳어 있던 흙의 뼈마디가 비로소 가장 환한 봄을 향해 미세하게 균열하기 시작한다.


당신의 벽돌이 무슨 색인지 관심이 없다.

줄의 꺾인 금에서 소리 없이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영원한 금 한 줄이 그어진 세월이 더 믿음직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말은 필요 없다.

저녁마다 선회하며 착륙하는 언어는 이미 차고 넘쳐나기에.


밤처럼 단호하게 비단 누군가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기 위한 성벽은 필요하다는 이유에 나는 아직 벽돌을 올리고 있다. 흩뿌려진 재산이 기억이 전부라도 상관없는, 먼지에 쌓여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그 향기가 내 것이라면 상관없는 것이다.


어두운 맥박 속에서

그 벽돌 안에서 숨을 쉬며 들어앉아

수직으로 뻗은 중정처럼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는 흡수관을 입에 물고

그 속에 고요히 자리하여 있는 것이 내게는 편안한 일이다.


말들로 만질 수 없는 이별을 사양한다.

얼굴은 조용히 피하면 그만이다.

갑자기 꺼진 램프처럼

혹은

갑자기 켜진 램프처럼 환해질 때, 그 자리에 나 홀로 있더라도 상관없는 일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결코 아니라고 말하는 곳에서

더 이상의 의심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를 경험하는 것이

이 붉은 벽돌 안에서는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고 살아갈 뿐이다.


누구에게 기대지 않는다.

오로지 나에게 기대어 볼 뿐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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