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안의 세계
사람은 자신이 본 것만으로 세상을 안다고 믿는다.
눈앞에 놓인 사물의 윤곽을 더듬고, 타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읽고, 오래된 벽에 번진 얼룩의 모양을 살피면서 세계는 이 정도면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알게 되는 것은, 삶의 대부분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보다 눈에서 사라진 뒤에 더 오래 남는다는 사실이다.
빛은 사물을 드러내지만, 어둠은 사물의 깊이를 드러낸다.
낮에는 아무렇지 않던 것들이 밤이 되면 다른 얼굴을 갖는다. 창문에 비친 나무의 그림자, 비어 있는 의자, 아무도 읽지 않는 바카라 한 권, 오래 닫힌 서랍의 손잡이. 낮 동안 아무 의미도 없던 것들이 어둠 속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선명해진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것들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오래 존재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사람의 얼굴보다 그 사람이 혼자 있을 때의 자세를 유심히 보았다.
사람들 앞에서는 누구나 자신에게 익숙한 얼굴을 꺼내어 쓴다. 단정한 사람은 단정한 표정을 하고, 강한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얼굴을 하고,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사람은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하루를 건넌다. 그러나 혼자가 되는 순간 사람에게서 조금씩 불필요한 것들이 떨어져 나간다. 힘이 들어가 있던 어깨가 내려가고, 공기반 소리반으로 가득찼던 입술이 굳게 다물리고, 한참 동안 같은 곳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때 드러나는 것은 표정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솔직한 무게다.
사람이 하루를 얼마나 무겁게 들고 왔는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피로가 어디에 고여 있는지, 오래 참아온 마음이 어느 관절에 걸려 있는지. 나는 그것이 한 사람의 진짜 얼굴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늘 결과만 본다. 보여지는 것이 전부인 세상이다.
꽃이 피어난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땅속에서 얼마나 오래 어둠을 견뎠는지는 묻지 않는다. 나무가 푸르게 서 있는 것을 보면서도 그 나무가 겨울 동안 무엇을 잃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단한 것들은 대개 자신이 견뎌온 시간을 말하지 않는다. 돌은 비를 맞았다고 말하지 않고, 벽은 겨울을 견뎠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래된 계단은 수많은 발자국을 기억하면서도 누구의 발이었는지 증언하지 않는다.
그저 닳아 있다.
나는 그 닳음에서 삶을 본다. 내 자신의 삶도 타인의 삶도 달의 뒷면을 보고 말하는 것처럼 정확히 말해야한다.
사람에게도 닳은 곳이 있다.
자주 사용해서 닳은 마음이 있고, 너무 오래 견뎌서 무뎌진 감각이 있으며, 수없이 되풀이된 실패 때문에 더 이상 실패라고 부르지 않는 일이 있다. 그런 것들은 이력서에 적히지 않는다. 누군가를 소개하는 몇 줄의 문장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한 사람을 만든 것은 어쩌면 그런 기록되지 않은 시간들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우리가 한 사람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할 때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의 표면에 붙어 있는 몇 가지 사실뿐이다.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말을 자주 하는지.
그러나 그 사람이 무엇을 견디면서 지금의 얼굴을 갖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한 사람의 생은 아무리 A4지를 가득채운 약력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생은 오히려 삭제된 문장들에 가깝다. 말하지 않은 것. 포기한 것. 끝까지 붙들었다가 놓은 것.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실패. 혼자 감당하기로 결정했던 날들. 그리고 아무도 박수치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웠던 수많은 새벽. 나는 그런 것들이 인간의 안쪽에 층층이 쌓인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층이 하나씩 깊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요새 짙게 물들고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사람의 얼굴에서 나이를 읽는 일이 어려워진다.
젊은 얼굴에도 오래된 슬픔이 있고,
늙은 얼굴에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마음이 있다.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어떤 하루는 십 년처럼 길고,
어떤 십 년은 한 계절처럼 지나간다.
시계는 그것을 구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안다.
자신에게 유난히 길었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지만 그날 하루를 견디는 것만으로도 생의 전부를 사용한 것처럼 느껴졌던 날이 있었다는 것을.
그런 날을 지나온 사람은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겉으로는 똑같은 얼굴로 다음 날을 맞이하지만, 안쪽의 어떤 부분은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삶은 그렇게 사람을 조금씩 바꾼다.
큰 사건보다 작은 침묵으로.
거대한 파도보다 오래 스며드는 물처럼.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다가 자신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
눈빛인지,
입술의 모양인지,
생각하는 방식인지.
다만 이전의 자신에게는 없었던 어떤 고요가 얼굴에 내려앉아 있다.
그것은 체념과도 다르고 포기와도 다르다.
한때는 설명해야만 견딜 수 있었던 것들을 이제는 설명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게 된 사람의 얼굴이다.
나는 그런 얼굴을 오래 바라본다. 상처가 사라진 얼굴이 아니라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힌 얼굴. 무언가를 잃고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얼굴이 아니라, 무너진 뒤에도 자기 몸의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담아 다시 하루를 만든 사람의 얼굴.
사람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지나가야 하는 시간.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는 시간.
성과도 없고, 칭찬도 없고, 결과도 없는 시간.
그 시간은 바깥에서 보면 공백이다.
그러나 인간의 내부에서는 가장 치열한 일이 일어난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어디까지 견딜 것인가.
무엇을 더는 설명하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끝까지 자기 것으로 품고 살아갈 것인가.
나는 삶이 결국 그것을 결정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보이는 것은 늘 변한다. 이미 세상은 하루에도 천 번은 변한다.
건물은 허물어지고, 계절은 지나가고, 얼굴은 늙고, 손에 쥔 것들은 언젠가 다른 사람의 것이 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들은 이상할 정도로 오래 남는다. 한 사람이 건넨 한마디. 한때 품었던 신념. 어떤 날의 냄새. 비가 내리던 저녁의 공기. 누군가에게 받았던 친절.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끝까지 지켜냈던 자존심. 그리고 스스로에게 했던 약속. 그런 것들은 형태가 없어서 버릴 수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쪽으로 더 깊이 가라앉는다. 마치 물에 떨어진 돌처럼. 수면에서는 파문이 사라졌는데, 바닥에는 아직 돌 하나가 남아 있는 것처럼.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완전히 떠날 수 없다.
과거는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를 등에 지고 걷는 것이 아니라 몸속에 넣고 걷는다. 그러므로 어떤 날에는 이유 없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무 일도 없는데 오래된 피로가 찾아오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어떤 장소 앞에서 걸음이 느려진다.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몸은 먼저 안다. 몸은 기억보다 정직하다. 말은 잊을 수 있어도 몸은 기억한다. 무너졌던 자세를, 떨렸던 손을, 숨을 참았던 순간을,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방향을.
그러므로 나는 이제 보이는 것만 믿지 않으려고 한다.
잘 서 있는 사람도 오래 흔들렸을 수 있고,
아무 말 없는 사람의 안쪽에서는 거대한 문장이 계속 쓰이고 있을 수 있다.
평범해 보이는 하루 하나가 어떤 사람에게는 다시 살아보기로 결심한 첫날일 수도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얼굴 하나가 실은 수많은 일을 견뎌낸 끝에 도착한 얼굴일 수도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이해는 어쩌면 함부로 해석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을 보고,
보이지 않는 것 앞에서는 잠시 멈추는 것.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남겨두는 것.
타인의 침묵에 자신의 이야기를 덧씌우지 않는 것.
그리고 한 사람에게 아직 말하지 않은 계절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삶에는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편했다.
모든 것을 밝히려는 빛은 때때로 너무 잔인하다. 어떤 것은 어둠 속에 남아 있어야 오래 견딜 수 있다. 어떤 상처는 이름을 얻는 순간 오히려 다시 아파지고, 어떤 기억은 꺼내어 말하는 순간보다 조용히 품고 살아갈 때 더 온전해진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어 있는 것도 아니다.
멈춰 있다고 해서 끝난 것도 아니다. 밤의 나무는 자라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뿌리는 땅속에서 아무런 박수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란 것은 결국 지상으로 나온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사람도 그러할 것이라고.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 견딘 것들이 언젠가 한 사람의 문장이 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날들이 어느 날 그 사람의 눈빛이 되고, 수없이 삼킨 말들이 마침내 그 사람의 침묵을 만든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서.
끝내 남는 것은 보여준 모습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름도,
사진 속의 얼굴도,
한때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것들도 아닐 것이다.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오직 하나.
아무도 보지 않았던 시간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것이 한 사람의 생을 가장 정확하게 증명하는 고요한 문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