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색을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기에, 비로소 다정했던 당신의 채도

by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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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모든 사물이 저마다의 고유한 결을 지닌 채 스스로를 증명하려 애쓰는 계절이었다. 어떤 존재는 타오르는 붉은빛으로 자신의 안쪽을 남김없이 소모했고, 어떤 존재는 푸르고 서늘한 그늘을 드리우며 침묵의 깊이를 더했다. 그 무수한 빛의 홍수 속에서, 나는 유독 하나의 존재 앞에서 길을 잃었다. 당신은 색이 없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선명한 채도로 눈을 멀게 하지도 않았다. 당신의 존재는 언제나 스펙트럼의 경계선 그 어딘가, 빛이 꺾이고 굴절되는 가장 아스라이 먼 곳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가 나눈 시간들은 대기가 품은 습도처럼 눅눅하게 때로는 바스락거리는 건조함으로 다가왔으나, 그 모든 순간 속에서도 나는 당신의 윤곽을 온전히 칠할 색을 찾아내지 못했다. 아침의 창가로 스며드는 연한 회색빛 은총이었을까, 아니면 깊은 밤 가라앉는 남색의 서늘한 심연이었을까. 당신은 내게 다가와 온기를 나누고 때로는 쓸쓸한 여백을 남겼지만, 그 온기와 여백이 어떤 물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는 끝내 가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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