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들리지 않는 걸 듣는

닫힌 문

by은수

턱시도가 돌아왔다. 녀석을 찾아 헤맨 지 꼭 스무날이 되던 날이었다. 내 마음속에서 녀석은 몇 번이나 죽고, 다시 몇 번을 살아 돌아왔다. 어느 날은 만신창이 몸으로 왔고, 다른 날은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지 않는 날이 길어질수록, 이제 가망이 없는 걸까? 인사는 못했지만, 이제 마음으로 녀석을 보내줘야 하는 걸까? 되뇌었고, 그때마다 포기할 수 없는 아쉬움이 발목을 잡았다.

그날, 나는 내 방 바카라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고, 주위는 조용했다. 그때 아주 멀리서, 꿈결처럼 희미한 울음소리가 두어 번 들렸다. 울음 끝이 짧게 끝나는 냥! 소리, 분명 턱시도 소리였다. 나는 귀를 의심하면서도 밖으로 나가봤다. 하지만 녀석의 흔적이나 더 이상의 울음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이제 급기야 환청까지 듣게 된 건가?'

낙담하며 다시 주저앉으려던 그때였다. 나는, 어떤 생각이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먼저 튀어나오는 걸 느꼈다.

나는 다시 뛰었다.

'왜 이 생각이 이제야 떠올랐을까.'


나는 아파트 동을 따라 1층 베란다 아래로 몸을 낮췄다. 지하실로 이어지는 작은 창문들. 평소라면 눈여겨볼 일 없는 그 어둡고 낮은 틈에 대고 나는 녀석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몸을 숙이고, 흙먼지와 거미줄을 헤치며 몇 개의 창문을 지났다. 대부분은 닫혔거나 방충망이 쳐 있었다. 그런데 한 창문 앞에 이르렀을 때, 방충망도 없이 어둠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게 보였다. 아!

나는 창문 가까이로 기어 들어가 녀석을 불렀다. 그때, 그 안에서 녀석의 요란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녀석이 살아있었다.


나는 어둠을 향해 휴대폰 불빛을 비췄다. 창문 아래, 3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깊은 지하 창고 바닥. 작은 몸 하나가 그곳에 있었다. 턱시도였다. 녀석은 그곳에서 물 한 모금 없이 스무날을 버텨낸 것이다.


그곳으로 들어갈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마침 경비 아저씨도 부재중이었다. 나는 평소 녀석이 좋아하던 살코기 간식을 어둠 속으로 던져주며, 곁을 지켰다.

잠시 후, 잠긴 지하실 문이 열리자, 녀석이 나에게 달려와 몸을 비볐다. 녀석과 내게 다시 평화가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어둡고 까마득한 지하창고에 녀석이 있었다&턱시도가 나를 계속 봤다

막상, 녀석을 찾고 나니 팔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녀석에게 서둘러 물과 사료를 챙겨주고, 경비 아저씨께도 따뜻한 음료를 건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오늘 생명 하나 살려주셨어요!”

그 말에 아저씨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뭘 했다고요.”

“문 안 열어 주셨음 못 구했는걸요?”


나는 그 순간을 몇 번이나 다시 떠올렸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그곳으로 이끈 걸까. 돌이켜보면, 그건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길 위의 생명들을 마주할 때면, 어른의 도움 없이는 단 하루도 온전히 버틸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내가 겹쳐 보이곤 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그대로 방치될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기억이, 인간이 만든 세상 속에서 인간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는 이 작은 존재들을 차마 포기할 수 없게 했다.


사실, 그동안 몇 번이나 지하실을 떠올렸었다. 고양이들은 몸이 아프면 지하실 같은 구석에 숨어든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열린 문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을 상상했지, 창문 아래로 떨어져 고립됐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또 하나, 턱시도의 어미인 치즈냥이의 이상한 행동도 있었다. 턱시도가 사라진 뒤로 치즈냥이가 밥을 먹으러 오긴 했지만, 정작 먹는 양은 형편없이 줄었었다. 밥에는 관심이 없고, 내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며 요란한 긴 울음소리를 내곤 했다.

특히, 그날 아침엔 내게 뭔가를 말하는 듯 지하 창문 쪽을 계속 바라보며 울었다.


그 모든 장면은 어느 순간 퍼즐처럼 맞춰지더니, 틀림없는 확신으로 나를 이끌었다. 마침내 그 울음이, 도와달라는 신호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사랑은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일이라 했던가. 나는 이 일을 통해, 녀석들이 말을 하지 못할 뿐,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감정을 나눈다는 사실을 더욱 명확히 알게 됐다.


구조 직후 내게 몸을 붙인 턱시도& 한달음에 달려론 치즈냥이 놀란 모습

[나를 달래는 기록 #17]

누군가는 지금도 닫힌 문 너머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소리는 작아서 안 들리는 게 아니었다. 그저 들을 준비가 됐을 때에야 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살려는 존재가 끝내 생을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자신의 소리를 세상으로 밀어 올리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턱시도 냥이의 무사 귀환을 함께 염려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려요. 모두의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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