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찢어진 자리로 오는 봄

질주

by은수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막내딸은 학교생활을 무척 행복해했다. 체육대회를 앞두고 맞춘 노란색 반티에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사인이 빼곡했다. 아이는 계주 대표로 출전하게 됐다며 며칠 전부터 잔뜩 들떠 있었다.


계주라면 체육대회의 꽃이 아닌가.

딸은 이기고 싶은 건 당연 하지만, 무엇보다 체육대회마다 꼭 한 명쯤 생기는 ‘넘어지는 아이’가 되거나, 바통을 떨어뜨려 반의 승패에 치명적 역할을 하게 되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다고 했다.


예선전이 있던 날엔 몸이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았다. 하지만 본선 날은 달랐다. 아이는 있는 힘껏 운동장을 질주했고,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넘어지지 않았고, 바통도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눈치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다음 날부터 아이는 오른쪽 허벅지 통증을 호소했다. 나는 당연히 심한 운동 뒤에 오는 근육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숙사로 돌아간 뒤에도 아이는 통화할 때마다 통증이 더 심해진다고 했다.

‘막내라 좀 엄살이 있긴 하지.’

나는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며, 참지 말고 진통제를 먹으라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아이가 보내온 사진 속 허벅지에는 짙은 피멍이 덮여있었다. 나는 그제야 단순 근육통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철렁 내려 앉았다.


아이는 결국 조퇴를 하고 절뚝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초음파 화면 속 하얗게 갈라진 근육 결을 바라보던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근육이 파열됐어요.”

얼마나 아팠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상처를 가볍게만 여긴 미안함과 함께 이상하게도 슬며시 웃음이 났다.

‘근데, 대체 얼마나 잘 해내고 싶었으면, 근육이 찢어질 만큼 달렸을까.’


나는, 아직 자기 한계를 모른 채 앞으로 뛰어드는 어리고 젊은 생에 대한 애틋함이 마음 가득 차올랐다.

돌이켜보면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아왔다. 마음이 먼저 달려 나가고, 몸은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그때는 아픈 줄도 몰랐다. 아니, 멈추는 일이 더 두려웠다. 그때는 뒤처지는 것이 꼭 사라지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료를 마친 아이는 특수 압박 붕대로 허벅지를 단단히 감은 채 내 팔에 몸을 기댔다. 우리는 절뚝절뚝 발맞춰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어느새 거리는 5월 장미로 가득했다. 그때, 화단 한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딱 한 송이만 남은 동백꽃과, 그 아래 떨어져 말라버린 동백꽃들의 무덤. 그리고 그 곁에서 태연히 올라오는 연둣빛 새잎들. 그 풍경은 마치 모든 소진이 끝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어떤 생은 자기 몸을 다 써버린 뒤에야 다음 생을 밀어 올린다. 떨어진 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제 몸으로 흙을 덮고 어린잎들의 시간을 지켜줬다.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자꾸만 찢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 믿음이 자주 상처를 입었지만, 생은 이상하게도 꼭 그 틈으로 다시 자랐다. 찢긴 자리로 바람이 들고, 상처 난 자리로 다음 계절이 스며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딸은 얼음찜질을 하면서도 계주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친구들이 자기 이름을 불러준 순간과 마지막까지 속도를 늦추지 않았던 일, 아슬아슬하게 따라 잡힐 뻔했던 순간들. 나는 들뜬 얼굴로 떠드는 아이를 바라보다 끝내 웃고 말았다. 그래, 살아 있는 것들은 원래 저렇게 온 힘을 다해 앞으로 기울어지는 존재였다.


화단 아래 새잎들은 나날이 더 짙은 초록이 될 것이다. 떨어진 동백꽃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자기 몫의 계절을 향해 몸을 밀어 올리면서 말이다.


[나를 달래는 기록 #19]

상처는 삶의 실패가 아니라, 너무 힘껏 살아낸 흔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찢어지며 자랐고, 그 틈으로 다시 다음 계절을 피워 올린다는 사실이 오늘의 나를 달래주었다.


파열된 막내의 근육에도 곧 봄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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