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링에서 내려오는 방법

싸울래?

by은수

-싸움은 반드시 승패가 나야 끝나는 게 아니라,

한쪽이 그만하겠다고 선언할 때 끝난다.-


세상에는 아무리 이겨도 끝나지 않는 싸움이 있다.

오히려 이기려 들수록 더 깊이 빨려 들기 십상이다.

돌이켜보면 하루도 안 싸운 날이 있었나 싶다.

사랑받기 위해,

버려지지 않기 위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싸웠다.


이런 싸움도 지겨워졌을 때는 세상으로부터 몇 걸음 멀어지고 싶다. 그렇게 숨어드는 곳이 글쓰기다.


나는 지난 며칠,

세상으로부터 최소한의 생존 반응만 남겨둔 채

내가 쓰고 싶은 것에 집중했다.

겉으론 글을 쓰거나 바카라을 읽는 시간이었지만,

어쩌면 그것은 명상이나 기도의 시간 일 수도 있다.

긴 묵언의 시간은 깊은 잠과 같았고,

마치, 한 생이 끝났던 것처럼 아득했다.


내가 없어도 세계는 이렇게 흐르겠구나.

마침내 이 생각에 이르자, 불현듯

겸손한 마음이 들어왔다.


지난번 갔던 바닷가 마을이 떠올랐다.

그때, 난 관광객처럼 마을을 돌아다녔다.

제주에는 아름다운 바다가 많지만,

나는 작은 마을을 끼고 있는 바다를 좋아한다.

날씨는 맑았고, 오밀조밀 작은 집들과 낮은 돌담.

수수한 바다.

그곳은 애초에 싸움이라곤 없던 곳일 것만 같다.

나는 그 고요함을 그대로 닮고 싶다.

그 고요하고 순한 것을 데려오고 싶었다.


지루한 싸움을 끝낼 수만 있다면,

나는 기권을 알리는 하얀 수건 따위 힘껏 던지고,

그만, 링 아래로 내려오고 싶다.

다만, 날렵한 자세로!


[나를 달래는 기록 #19]

우리는 모든 링 위에서 끝까지 버티고 서 있을 필요가 없다.

때로는 기권이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승리의 깃발을 흔드는 일이 아니라,

먼지투성이 싸움 끝에 돌아와 마시는 차 한 잔처럼,

내 안의 고요를 다시 불러오는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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