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인사도 못 했는데

흩어진 안부를 물으며

by은수

그날 나는 일곱 살 현이와 그림바카라을 읽고 있었다. 현이가 유독 좋아하는 <두더지의 소원>이었다. 그동안 나는 이 바카라을 수 십 번도 더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자꾸 목이 메었다. 이 바카라이 이렇게 슬픈 내용이었나?


눈 오는 추운 겨울날이었다. 혼자 집으로 돌아가던 두더지는 버스를 기다리며 눈으로 곰 친구를 만들었다.

“추워? 내가 따뜻하게 해 줄게.”

두더지는 자신의 털모자를 벗어 눈 곰의 머리에 씌워줬다. 둘은 함께 버스를 타고, 따뜻한 차 안에서 나란히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곰 친구는 사라지고 없었다. 남겨진 건, 모자 하나뿐이었다. 결국 혼자 버스에서 내린 두더지가 말한다.

‘인사도 못했는데…’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입 속에서 웅얼거렸다.

며칠째, 나는 어떤 존재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밥을 주던 아침 여섯 시와 저녁 여섯 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내 몸이 먼저 반응하던 그 시간들이 이제는 정적의 시간이 됐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일을 하다가도 문득 녀석이 대문 앞에 와 있을 것만 같아, 간식 가방을 들고 세 개 동이 전부인 작은 단지를 홀린 듯 돌곤 한다.

고양이에게 있어 영역을 벗어난 2주의 부재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더구나 늘 그림자처럼 함께 다니던 어미는 여전히 때가 되면 나타나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봤던 날도 우리 집 현관 앞까지 올라 와 밥을 달라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처음 며칠은 곧 돌아오겠지 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넘고 열흘이 넘어가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녀석이 돌아오지 않는 게 아니라, 못 돌아오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결국 전화를 걸었다. 시에서 운영하는 로드킬 처리 담당자였다. 확인이 필요했다. 그에게 나는 며칠 사이, 이 근처에서 턱시도 고양이가 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사고가 워낙 많기도 하고요. 로드킬 당하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럼, 며칠 사이에… 이 근처에서 사고 난 고양이가 있었는지만 확인 부탁드립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말했다.

“한 건 있긴 한데요. 로드킬은 아니었고요. 그 고양이는 까만색이 아니라… 노란색이었습니다.”


순간, 나는 내가 찾던 턱시도가 아니란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 바로, 마음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며칠 전, 내가 만들어둔 밥자리에 낯선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와 있었다. 여러 날을 굶었는지, 어디가 아픈 건지 노란 고양이는 몹시 지쳐 보였다. 그런 모습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먹을 걸 줄까? 하지만 그 생각은 곧 다른 생각에 밀려났다.


턱시도 녀석이 곧 돌아올 텐데, 그럼 또 영역 다툼이 생길 거라는 핑계를 앞세웠다. 결국 턱시도 녀석을 지킨다는 명분이었다. 나는 지쳐 웅크린 노란 고양이를 밀어내듯 아파트 단지 밖에 밥그릇을 놓아주었다. 그것이 내 선의의 끝이었다. 녀석은 그 밥조차 먹지 못한 채, 그날 길 위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나는 선택적으로 다정한 사람이었다.

돌아오지 못하는 녀석을 애타게 기다린다며, 외면한 또 다른 생명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이 내가 기다리는 녀석의 미래라면 어떡하지? 나는 그제야 눈 곰 친구를 잃어버린 그 황망한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두더지는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돌아온 친구를 만나는 다정한 기적을 선물 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길 위에서 인사 없이 사라진 존재가 다시 돌아오는 일은 기적보다 드물다.

나는 다시 돌아올 눈 곰을 기다리던 두더지의 마음으로 턱시도 녀석의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그은 경계 밖에서 쓸쓸히 눈 감았을 노란 냥이를 향해 뒤늦은 작별 인사를 건넨다.

[나를 달래는 기록 #15]

모든 생을 다 품을 수는 없겠지만, 외면한 생에 대해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다. 나는 한 존재를 기다리느라, 내 곁을 스쳐 간 또 다른 존재에게 끝내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이제, 내 앞에 도착할 어떤 생에게도 늦지 않게 손을 내밀겠다고 다짐하며, 길 위에 흩어진 안부를 조용히 불러 모아 오늘의 나를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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