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마중
그날, 바다는 가만가만 흔들리는 아기 요람처럼 조심스러웠다. 나는 바다를 향해 좌석이 배치된 카페 한 자리에 앉아 먼바다를 굽어보았다. 날은 조금 흐린 편이었지만, 수면 위로 찰랑대는 윤슬에 눈이 시렸다.
그때, 굉음과 함께 비행기 한 대가 낮게 날아왔다. 마치 카페 창에 부딪힐 듯 아슬아슬하게 건물 위를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며, 카페 안 관광객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그곳 카페는 가까운 바다와 낮게 나는 비행기로 이미 입소문이 난 곳이었다. 그 활기찬 소란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떠나고 싶던 곳에 당도한 듯한 안도감을 느꼈다.
요즘은 새벽에 눈을 뜨면, 바카라상에 앉아 하루치 글을 쓰는 일상이 자연스러워졌다. 이른 아침, 무엇이든 한 편의 글을 쓰고 나면, 남은 시간도 조금은 가볍게 지나갔다. 하지만 그날 아침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외출 준비부터 서둘렀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아들이 사는 오피스텔이었다.
작년에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독립한 것도 어느덧 1년 4개월에 접어들었다. 아들은 고등학교 졸업 전에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자신이 다니는 헬스장에서 새벽 아르바이트까지 한다고 했다.
학교에 다니며 두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무척 힘들 텐데… 문득 안쓰러운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나는 왜 그렇게까지 무리를 하느냐고 바로 묻지 않았다. 대신, 그날 아침 아들 방으로 향했다.
아들은 새벽 아르바이트를 갔고, 나는 비어 있는 방에 들어섰다. 아들에게는 미리 말을 해뒀었다. 우선, 나는 세탁기부터 돌려놓고, 청소를 시작했다. 마른빨래는 정성껏 개어 제자리에 놓아두고, 마지막으로 아들이 돌아오면 먹을 아침상까지 차리고 나면, 아들의 공간은 빛이 든 것처럼 온기가 돌았다.
나는 아들을 기다리진 않고, 아들이 오기 전에 집을 나섰다. 기왕 온 김에 아들 얼굴을 보고 갈 수도 있겠지만, 진정한 우렁각시 역할은 딱 거기까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이 마주할 따뜻함,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그 감각이 아들의 마음에 작은 여유를 만들어주기만 바랐다. 더구나 그것은 동시에 내 외로움까지 덜어주는 일이기도 했다.
아들 집에서 나온 나는 무작정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바다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버스로 몇 정거장만 가면 바다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일었다.
카페에 도착한 나는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너른 바다 위로 물질하는 해녀가 보였다. 그녀가 쉬지 않고 자맥질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내 마음도 그날의 물결처럼 잔잔해지는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건너편 바닷가에 플라스틱 상자를 실은 오토바이 한 대가 섰다. 남자가 오토바이에서 내려 바다 쪽으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 물마중이다.‘
바닷가 마을에 살 때는 흔히 보던 풍경이었다. 해녀 물질이 끝날 즈음이면, 남자들이 끌고 온 오토바이나 경운기가 바닷가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대부분 해녀의 남편이거나 가족이었다.
4.3 사건으로 남자가 귀해진 제주에서, 해녀들은 자식을 키우기 위해 가장의 역할을 짊어지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런 제주의 역사적 비극이 만든 문화는 지금껏 이어왔다. 바다로 뛰어든 여자들과 뭍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남자의 물마중.
남자는 여자가 건넨 묵직한 망사리를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해산물의 무게만 나누는 것이 아니었다. 차가운 심해에서 홀로 버틴 여자의 시간과 고단함을 함께 나누는 순간이었다.
고무옷을 입고, 물에 젖은 여자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바위 위로 올라오자 남자가 여자를 부축했다. 익숙한 그 모습은 자연스러웠다.
뭍으로 완전히 올라온 여자가 오토바이 뒤에 주황색 테왁을 싣고 그제야 허리를 편다. 그리곤 남자의 뒷자리에 올라앉자, 오토바이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해녀가 떠난 바다에 남아 물마중에 대해 생각했다.
부모라 해도 자식이 스스로 져야 할 삶의 무게를 전부 들어줄 수 없었다. 겨우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가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왔을 때, 수고했다 말해주며 그 무게를 잠시 나누어 드는 게 전부였다.
나는 아들의 빈방에 남겨두고 온 나의 온기가 아들에게는 작은 물마중이 되었기를 바랐다. 그 생각에 이르자, 돌덩이 같은 걱정과 미안한 마음이 마치, 물 위에 뜬 테왁처럼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나를 달래는 기록 #14]
내가 아들 방에 남겨둔 온기는 그의 하루를 대신 살아준 흔적이 아니라, 그가 돌아왔을 때 건네는 나의 물마중이었다.
삶은 때로 차가운 바닷속 같지만, 뭍에서 나를 기다리는 손 하나만 있어도 우리는 기꺼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나는 누군가의 삶을 대신 짊어지는 존재가 아닌, 그 무게를 함께 나눠드는 사람이 되는 상상으로 그날의 나를 달래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