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은 그런 나이다.
# 소설 소개: 마흔살, 출판사 편집자. 어느 날 20년 전 투고된 미출간 원고를 발견한다.
육아에 지치고, 온라인 게임에 치이고, 사람에게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원고 속 여자의 삶이 소름 끼치도록 내 삶과 닮아 있다. 이 여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이 원고에는 내 미래까지 적혀 있을까.
03:29.
또다.
어제도.
그제도.
그전날에도.
그렇게 언젠가부터 계속.
새벽 3시 29분.
그 시간만 되면 잠에서 깨고 만다.
아이를 재우다가 내가 먼저 일찍 뻗어버려서 그런 걸까?
저녁 9시쯤 애를 재우기 시작한 기억은 나는데,
애가 언제 잠들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당연히,
내가 언제 잠들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3:29라는 숫자를 확인한 후 패턴은 같다.
아이가 잘 자고 있는지 손을 뻗어 확인하고,
팔뚝과 허벅지에 손을 뻗어 춥지 않은지 본능적으로 확인한다.
그리고 어릴 적 내 습관처럼
분명 잠들 때는 나란히 일자로 누워있었는데,
3:29에는 꼭 머리를 내 쪽으로 들이밀고 가로 대 짜로 뻗어 침대 매트리스 2/3을 차지한 채 쿨쿨 자고 있는
아이를 다시 나란히 일자로 눕힌다.
헉. 손목이 부셔질 것 같다.
아이를 낳고 내 속도 모르고 활짝 열렸던 내 마디마디는 도무지 닫힐 생각이 없는지
계속 아프다.
어느새 17kg에 육박하는 다섯 살 진경이는 그런 내 손목을 더 아작 낸다.
표현이 좀 거칠지만, 아작 나는 손목을 애써 주무르며 아이 이마를 쓰다듬는다.
아작은 아작이고, 아이를 사랑하는 건 사랑이다.
다시 핸드폰 액정을 밝히니, 시간은 04:00 언저리가 되어있다.
빌어먹을 미라클 모닝.
잘난 인스타와 유튜브 등등에서는 새벽 4시 일어나서 미라클 모닝을 경험한 사람들의 스토리가 떠다닌다.
나는 미라클도 원하지 않고 모닝도 원하지 않는데,
03:29라는 숫자는 내게 미라클 모닝을 선물했다.
역시나 빌어먹을 미라클 모닝이다.
인스타를 연다.
예전에는 다들 반짝반짝 예쁘고 화려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만 보였는데,
요즘은 생계형 인스타가 태반인 것 같다.
팔로워를 늘려서 광고든 강의든 협찬이든 받아서 살아가려 아등바등 애쓰는 인스타라니.
아니, 그런 모습을 내가 찾아서 알고리즘이 내 눈앞에 갖다 놓는지도 모른다.
역시나 미라클 모닝이다.
나는 다른 미라클 모닝들처럼 바카라을 읽지도, 명상을 하지도, 요가를 하지도, 또 필사 따위를 하지도 않는다.
아, 출판사 편집자로서 필사는 3초 생각했는데 4초 만에 접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미라클 모닝을 원하지 않는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망할 남편은 매트리스와 벽 사이에 낑겨서 자고 있다.
왜 저 입은 항상 벌리고 잘까. 침이 줄줄 새어 나와 매트리스 매트를 적시고 있다.
사랑하는, 나의 분신 진경이는 어느새 또 머리를 내 쪽으로 가로 대짜로 누워 자고 있다.
참 잘 잔다.
부녀가 자는 모습을 깨어있는 내가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니,
이게 미라클 모닝 아닌가 싶다.
다들 쿨쿨 잠만 잘 자는데, 나는 3:29이면 깨서 이렇게 텅 빈 시간을 홀로 눈 뜨고 있으니 이게 미라클 아닌가.
알람이 울린다. 다섯 시 반.
금방이라도 벽속으로 들어갈 것 같았던 남편이 손을 허우적 대더니 본인 핸드폰 알람을 끈다.
내가 꺼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자기의 일은 뭐다? 스스로 하는 거다.
요즘 다섯살 진경이에게 내가 매일 하는 말이다.
어쩌면 남편 들으라고 하는 말 같기도 하다.
아니 확실해.
남편이 일어난다.
하지만 나는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났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세차게 코를 고는 척 연기한다.
남편은 그런 내 연기 따위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한 손길로 진경이 이마를 쓰다듬고는, 작은 쪽- 뽀뽀를 남긴다.
그리고는 방을 나서 화장실로 향한다.
다행이다.
제발 나한테는 저 침 범벅 입술이 다가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기에.
시간이 흐르고, 6시가 되니 남편이 현관문을 나선다.
강아지 캔디가 짖고, 고양이 빌리는 호랑이같은 야옹을 남편의 뒤에 남긴다.
남편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자기 갈길을 간다.
돈 벌러 가는 길, 힘내고 오라고 해줄 법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백상예술대상을 꿈꾸며 잠자는 연기를 혼신을 다해서 한다.
쾅.멍멍.야옹.
좋다.
이제 연기를 그만해도 된다는 소리 3콤보가 내 귀에 닿았다.
잠시 앉아 멍하니 창밖에 펼쳐진 산속 나무들을 바라본다.
이게 맞나 싶다.
마흔이 됐을 때 "이게 맞나?" 싶었던 생각이,
마흔 하나가 되니, "이게 맞나 싶다."로 두 글자만 추가되어 바뀌었을 뿐.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 기분이다.
랄랄랄라~
응 맞다. 사치다.
내 핸드폰 기상 알람이 그따위 답을 찾는 건 사치니,
이제 부리나케 남편의 잔재물로 넘쳐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씻고,
아이를 깨우고, 깬 아이를 달래로 어르고, 좋은 엄마로 남기 위한 혼신의 노력을 다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돈 벌러 가라고 크게 울어댄다.
나도 울고 싶어 지지만 울 수 없다.
기상 알람이 우는 건 내가 멈춰줄 수 있지만,
내가 울어버리면 내 터진 울음을 스스로 멈출 자신이 없다.
마흔은 그런 나이다.
<다음 편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