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새콤달콤

그래 망할 새콤달콤!!!

by빨양c

# 소설 소개: 마흔살, 출판사 편집자. 어느 날 20년 전 투고된 미출간 원고를 발견한다.

육아에 지치고, 온라인 게임에 치이고, 사람에게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원고 속 여자의 삶이 소름 끼치도록 내 삶과 닮아 있다. 이 여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이 원고에는 내 미래까지 적혀 있을까.



부릉-

주니어 카시트에 진경이를 앉히고 꾸역꾸역 안전벨트를 당겨 채운다.

서둘러 운전석에 앉아 무슨 정신인지도 모르게 액셀을 밟아 재낀다.


그래 출발.

드디어 출발이다.

워킹맘의 흔한 아침 준비는 여기까지다.


이제 그래도 어느 정도 분리가 되어있는 이 차 안에서의

불안한 고요함을 느끼며

무사히 온라인 게임에만 도착하면 한시름 돌리리라.

조금만 힘을 내면 되리라.


아! 빨강양말은 어떻게 되었냐고?


호호. 양말에서 폭발할 줄 알았겠지만,

나는 폭발하지 않았다.


이미 이전에도 벌어졌던 일이라

이미 그때에도 폭발했던 일이라,

반성에 반성을 거듭해서,


어린이집 등원을 코앞에 둔 현관문 앞에서 벌어진

양말 싫어! 의 대 참사를 막는 노하우를 생각해 두었다.


먹을 거.

먹을 거면 아무거나 되지만, 휴대가 간편한 먹을 거.

오늘은 새콤달콤이 내 주머니에 준비되어 있었다는 사실.


룸미러로 뒷좌석을 보니 아이가 새콤달콤을 신나게 입속에서 빨아 재끼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뭔가 불길한 고요함이지만, 애써 불길한 느낌을 무시하고 운전에 집중한다.


평소처럼 신호에 걸리고, 평소처럼 껴들어대는 차들을 무시하며,

평소처럼 고속도로에 올라,

평소처럼 1,300원을 내는 하이패스를 통과할까

좀 돌아가서 시간 좀 걸리더라도 돈을 아껴야 할까 고민한다.


물론 고민만 할 뿐 답은 정해져 있다.

1,300원이 대수랴. 서둘러 온라인 게임으로, 아니 어린이집으로 달려가야지.

내 귀염둥이를 근무시간 동안 무사히 보호해 줄 소중한 어린이집.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은 소중한 어린이집 선생님들.


내 발길이 엑셀을 힘껏 밟는다.

옆 차로 Volvo XC90 차가 뒤처진다.

무광으로 빛을 다 흡수하는 멋쟁이 볼보네.


언젠가 돈에 여유가 있게 되는 어느 날이 오면,

제일 먼저 차를 바꾸고 싶다. 바로 저 볼보 엑쓰씨90으로. 엑쓰씨 90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폼난다. 그리고 무척 탄탄해 보인다. 맞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다. 절대 내 욕심이 아니다.


"으아아앙!!!!!!!!!!!!!!!!!!!!!!!!"

역시 엑스씨90 답게 배기음도 끝내준다.


'엥? 아니, 가만..

배기음 부아아앙이 아니고, 으아앙..?'


"진경이 왜 그래? 응? 왜 울어?"

그래. 갑자기 왜 울지? 나는 혼신을 다해 안전운전을 하며, 볼보에 한눈을 팔긴 했지만,

볼보를 봤다고 진경이가 울리는 없고...


"이거 떠러져써!!!!!!!"


그러면 안 되지만, 나는 잽싸게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려 상황을 파악해 본다.

진경이 손에 가녀리게 들려 휘날리고 있는 보라색 새콤달콤 껍데기와

어쩜 저렇게 입이 큰지 으앙 우는 소리만 가득한 텅 빈 입안.

그리고 세차를 얼마나 안 했는지 모래가 나뒹구는 뒷좌석 바닥에서 떨어진 자신을 한탄하고 있는 보라색 새콤달콤.


빠아아앙!!!!


뒷좌석을 향하던 고개가 반사적으로 앞쪽으로 돌아온다.

믿었던 내 짝사랑 볼보 엑쓰씨90씨가 내게 운전 똑바로 하라고 큰 소리로 빠아아앙!! 클락숀을 울린다.

웅장하기도 하지. 정신이 바짝 드네.

역시 볼보다. 내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 주다니.


"진경아~ 괜찮아 괜찮아. 껍데기 까다보면 떨어질 수도 있는 거야. 엄마 운전 중인 거 보이지? 방금 멋진 차.. 아니 엄청 큰 차가 빵빵했지? 안전 운전하라는 뜻이야. 봐봐. 엄마 손 뻗어도 주워줄 수가 없잖아. 그치? 엄마가 얼른 어린이집으로 우주선처럼 슝~~~ 날아가서 도착하자마자 주워줄게. 알았지? 울지 않아도 됩니다 공주님~"


"으아아아앙!!!!!!!!!!!!!!!"

진경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내 말에 더 큰 울음으로 답을 돌려준다. 순간 울음소리가 볼보 클락숀보다 더 큰 것 같다. 한진경이 아니고 한볼보라 해야 하나. 아님 한90씨?


"한진경! 그만 울어!!! 엄마 지금 운전 중이라 위험한 거 보이지? 떨어진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네가 잘못한 거잖아. 왜 엄마한테 그래?? 엄마가 뭘 잘못했어? 어?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으아아아아앙 내 새콤달콤!!!!!!!!!!!!!!!!!!!!"


내 폭발에 면역이라도 생긴 걸까?

분명 이 정도 했으면 예전에는 멈췄던 것 같은데 진경이는 관심 없다는 듯 더 큰 소리로 울어댄다.

이쯤 되면 나도 울고 싶어진다.

고속도로라서 다행이다. 온갖 시끄러운 아침 출근 차 소리에 두 모녀의 발악하는 울부짖음이 묻힐 수 있어서.


이럴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 얼마 전에 5살 아이를 위한 훈육방법 유튜브 영상을 5편 연속 몰아봤던 것 같은데 이렇게 상황이 터지면 당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이 나도, 그때 그 유튜버 어린 엄마처럼 사근사근 상냥하게 아이를 대할 수가 없다. 상황이 이모양인데 그 유튜버를 데려다 놓아도 그때 그 영상처럼 차분하게 진경이를 진정시킬 수 있을까. 망할 유튜버들. 망할 볼보. 망할 출근.


"내 새콤달콤!!!!!!!!!!!!!"


그래, 그놈에 망할 새콤달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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