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다움

우리다움


지역을 둘러싼 언어는 대체로 어둡습니다. 지방소멸, 인구감소, 청년유출, 빈집, 쇠퇴 같은 말이 지역을 설명하는 익숙한 언어가 됐습니다. 실제 상황이 녹록지 않으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역의 질서』를 쓰며 전국의 도시를 다니다 보면 다른 변화도 감지됩니다. 지역이 자신을 바라보고 설명하는 언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 변화에서 제가 주목하는 단어가 ‘다움’입니다. 지역이 ‘우리에게 무엇이 없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든 변화는 언어에서 시작됩니다.


제가 지역에서 ‘다움’이라는 말을 처음 의식한 곳은 전주였습니다. 전주시는 2014년부터 ‘전주다움’을 시정의 언어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2015년부터는 월간 시정소식지를 『전주다움』이라는 이름으로 발행했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전주다움』은 일반적인 시정 홍보물이라기보다 전주의 사람과 동네, 음식과 문화, 생활방식을 기록하고 소개하는 도시 카지노 게임에 가깝습니다.


이름을 ‘전주시 소식’이 아니라 ‘전주다움’이라고 붙인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질문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도시보다 무엇이 부족한가, 무엇을 더 건설해야 하는가를 묻기 전에 ‘전주다운 것은 무엇인가’를 묻게 됩니다. 지역발전의 출발점을 결핍이 아니라 정체성에서 찾는 것입니다.


‘다움’은 이제 전주만의 언어가 아닙니다. 남원에는 지역의 역사와 생활문화를 기록하고 보여주는 남원다움관이 있습니다. 순천문화재단은 2021년 ‘순천다움 문화기획 아카데미’를 열어 지역에서 문화사업을 기획할 사람들을 교육했습니다. 강릉에서도 ‘강릉다움’이라는 말을 자주 접합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자신의 도시 이름 뒤에 ‘다움’을 붙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한 작명 유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거 지역발전의 언어는 대체로 따라잡기였습니다. 산업단지, 관광단지, 신도시, 랜드마크처럼 다른 지역에서 성공한 것을 우리 지역에도 가져오는 방식이었습니다. ‘다움’은 반대 방향의 질문입니다. 서울에는 있는데 우리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지역이 모방의 언어에서 정체성의 언어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름에서 다움으로

지역발전은 다름에서 시작합니다. 모든 지역에는 서로 다른 자연환경과 역사, 산업, 음식, 건축, 생활문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경쟁력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다름을 발견하고 그것을 주민과 사업자가 공유하며 오늘의 생활과 산업으로 발전시킬 때 비로소 ‘다움’이 됩니다. 다름이 주어진 차이라면 다움은 만들어가는 정체성입니다.


다움은 그래서 문화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역의 음식이 식당과 브랜드가 되고, 오래된 건물이 새로운 가게와 숙박공간이 되며, 전통기술이 현대적인 상품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지역의 생활문화에서 새로운 창업과 상권이 나오고, 그것을 경험하기 위해 외지인이 찾아오기 시작할 때 다움은 경제적 자산이 됩니다. 지역발전은 다름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다름을 다움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주는 이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한옥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옥마을을 현대적인 생활문화의 무대로 만들었고, 한식과 한복, 한지와 전통주도 오늘의 소비와 산업으로 연결했습니다. 한복대여와 모던한복, 가맥과 공방, 전주국제영화제와 남부시장 청년몰 같은 새로운 문화도 등장했습니다. 최근에는 도서관도시와 나무도시라는 새로운 도시문화까지 만들어왔습니다. 전주는 전통을 보존하는 도시라기보다 자신의 전통과 생활문화를 끊임없이 현대적으로 번역하는 도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주를 ‘K-도시’라고 부릅니다. 가장 한국다운 도시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한국다움은 전통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과거의 전통을 오늘의 생활 속에서 다시 사용하고, 그것을 새로운 상품과 공간, 라이프스타일로 발전시키는 능력까지 포함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의 강점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는 데 있지 않고, 전주다운 자원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도시문화를 만들어낸다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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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움의 도시

『지역의 질서』를 쓰면서 저는 24개 중견도시 가운데 네 도시를 특별히 ‘다움’의 도시로 바라봤습니다. 강릉, 순천, 전주, 제주입니다. 이미 발행한 강릉과 순천 편의 제목은 각각 ‘강릉다움’과 ‘순천다움’입니다. 강릉에서는 오래된 지역의 생활문화가 커피와 음식, 독립공간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이어지는 힘을 발견했고, 순천에서는 순천만과 정원, 원도심과 문화콘텐츠를 연결해 자기 방식으로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힘을 보았습니다. 마지막 제주 편의 제목도 ‘제주 스타일’입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제주다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주의 제목은 ‘K-도시 전주’입니다. 전주는 자신의 다움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도시의 새로운 표준을 발신하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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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모든 지역이 똑같은 방법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려울수록 자기 안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지역발전은 다름에서 시작합니다. 다름을 발견하고 키우면 다움이 되고, 다움은 그 지역만의 경쟁력이 됩니다. 지방소멸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또 하나의 거대한 개발계획보다 먼저 던져야 할 간단한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지역은 우리 지역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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