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도시 전주


K-도시 전주


한국에서 ‘아, 여기는 다르구나’ 하고 감탄을 자아내는 도시는 드물다. 전주가 그 드문 도시 가운데 하나다. 한옥마을에 들어서면 한옥과 한복, 한식과 공예, 소리와 역사가 한 공간에서 만난다. 길 하나를 건너면 남부시장이 나오고, 조금 더 걸으면 전라감영과 객사, 영화의거리와 객리단길이 이어진다. 남쪽 서학동에서는 예술가들이 살면서 작업한다. 오래된 도시의 역사 위에 새로운 생활문화가 겹겹이 쌓여 있다.


전주는 2023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됐다. 아시아를 향한 포부도 좋지만 먼저 한국에서 가장 한국적인 도시가 되는 것은 어떨까. 나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를 K-도시라고 부르고 싶다. K-푸드가 한국적인 음식, K-패션이 한국적인 패션을 뜻하듯 K-도시는 한국적인 라이프스타일이 도시 전체에 스며 있는 도시다. 한옥과 한식, 한복과 한지에서 시작해 음식과 술, 영화와 디자인, 골목과 정원까지 한국적인 생활방식을 보여주고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내는 도시다. 여러 도시가 그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전주가 K-도시에 가장 근접해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K-도시의 가능성을 한옥마을 하나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K-스타일이 한 관광지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도시의 여러 공간과 일상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마포·용산·성동의 부상에서 주목해야 할 것도 유명한 골목상권 몇 곳이 아니다. 하나의 상권에서 시작한 변화가 인접한 동네로 퍼지고, 결국 도시의 넓은 지역이 서로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동네로 채워지는 과정이다. 전주에서도 이미 그런 변화가 시작됐다.


천만그루 정원도시 전주


전라도의 수도

전주의 중심성은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후백제의 왕도였고 조선시대에는 전라감영이 자리 잡았다. 당시 전주는 지금의 전주시나 전북만을 위한 도시가 아니었다. 전라감영을 통해 오늘날의 전북과 전남, 제주에 해당하는 넓은 지역의 행정과 사법, 군사 기능이 모였다. 사람과 물자, 정보와 문화도 전주로 집적됐다.


이 오랜 중심성은 전주의 문화에 흔적을 남겼다. 경기전과 전주향교, 풍남문과 객사, 전라감영이 남았고 음식과 공예, 소리와 생활문화가 축적됐다. 한옥마을이 다른 지역의 한옥마을과 다른 이유도 한옥의 숫자에만 있지 않다. 경기전에서 전동성당, 오목대, 전주향교로 이어지는 공간에는 다른 도시가 쉽게 복제할 수 없는 역사적 자산이 중첩돼 있다.


근대 이후 전주의 행정적 관할 범위는 크게 축소됐지만 중심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주는 여전히 전북의 행정·사법·교육·의료·금융·상업·문화 기능이 집중된 도시다. 과거에는 넓은 지역을 관할하는 중심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주변 사람들이 필요한 기능을 찾아오는 생활권의 중심이다.


대체불가 전주한옥마을


인재와 소비, 자본을 끌어들이다

전주의 중심성을 이해하려면 기관의 숫자보다 사람들이 왜 전주로 왔는지를 봐야 한다. 『지역의 질서』에서 사용하는 6대 앵커의 관점에서 보면 전주의 힘은 더욱 선명해진다.


교육이 대표적이다. 전주는 전통적으로 전북의 인재를 끌어들였다. 전주고를 비롯한 명문학교에 지역의 우수한 학생들이 모였고 대학 단계에서는 전북대학교가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전주는 오랫동안 전북의 젊은이가 공부하기 위해 찾아오는 도시였다.


의료와 사법도 마찬가지다. 전북대병원을 비롯한 대형 의료기관은 전주시민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다. 법원과 검찰 역시 주변 시군을 배후지역으로 가진다. 모든 지역에 같은 수준의 대학과 병원, 사법기관을 설치할 수 없기 때문에 고차 기능이 전주에 모이고, 그 집적이 다시 사람을 끌어들인다.


금융에는 전북은행이 있다. 지역은행 본점이 있다는 것은 지역에서 만들어진 자본을 모으고 다시 지역 기업과 가계에 배분하는 금융 기능이 전주에 집적돼 있다는 뜻이다. 대학이나 병원처럼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중심도시를 지탱하는 중요한 앵커다.


전주의 백화점과 원도심 상권은 전주시민뿐 아니라 주변 지역의 소비를 끌어들이는 광역 상업 앵커로 기능해왔다. 특히 백화점이 상징적이다. 백화점은 단순한 유통시설이 아니다. 어느 지역 사람들이 어느 도시까지 쇼핑하러 오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중심지 기능이다.


전주에는 현재 전북특별자치도에서 유일한 백화점인 롯데백화점 전주점이 있다. 롯데·신세계·현대라는 국내 백화점 빅3 가운데 하나의 점포가 전북에서는 전주에만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전주의 상업 중심성을 보여준다. 앞으로 종합경기장 일대에 MICE와 호텔, 백화점이 결합하면 이 상업 중심성은 덕진권에서 새로운 형태로 강화될 수 있다.


결국 전주는 전북의 학생이 공부하러 오고, 환자가 치료받으러 오고, 주민이 쇼핑하러 오며, 기업과 가계의 돈이 모이는 도시였다. 한옥마을이 유명해지기 훨씬 전부터 작동해온 전주의 중심성이다.


객리단길


K-브랜드를 만드는 도시

전주의 문화적 중심성에는 중요한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좋은 문화자산을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문화와 생활방식에서 새로운 브랜드와 소비방식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전주가 K-도시에 근접해 있다고 보는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출발점에서 전주한옥마을을 빼놓을 수 없다. 2000년대 한국에서 동네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부상하기 시작할 때 북촌, 홍대와 함께 전주한옥마을은 서로 다른 유형의 동네 마케팅을 보여준 대표적인 지역이었다. 북촌이 역사와 한옥, 홍대가 인디문화와 창작자, 전주한옥마을이 전통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기반으로 했다면, 세 지역의 공통점은 특정 동네의 고유한 문화와 장소성을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유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그중에서도 전주한옥마을은 이후 전국으로 확산된 한옥마을의 전형을 만들었다. 한옥 몇 채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옥과 한식, 한복, 한지, 공예, 전통주와 숙박을 한 동네에서 경험하고 소비하게 했다. 전주한옥마을은 하나의 관광지를 성공시킨 것을 넘어 한국적인 생활문화를 공간화하고 브랜드화하는 방법을 보여준 장소였다.


한옥마을이라는 공간 브랜드에서는 다시 새로운 상품과 경험 브랜드가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한복남이다. 한복을 판매하는 데 머물지 않고 ‘한복을 입고 여행한다’는 경험을 상품으로 만들었다. 전주한옥마을에서 확산된 한복대여 문화는 이후 서울의 고궁과 다른 관광지로 퍼졌다. 리슬은 다른 방향에서 한복을 혁신했다. 황이슬 대표는 전통 한복을 현대인이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패션으로 바꿨다. 한복남이 한복의 경험을 브랜드화했다면 리슬은 한복의 패션을 브랜드화한 것이다.


전주에서 성장한 브랜드가 모두 전통문화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PNB풍년제과는 1951년 전주에서 시작해 3대째 이어지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진 브랜드로 성장했다. 특히 수제 초코파이는 여행객을 통해 전주를 대표하는 상품이 됐고 주요 백화점에도 진출했다. 지역의 일상적인 먹거리도 상품과 경험으로 재해석하면 전국적인 브랜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패션에서는 육육걸즈가 눈에 띈다. 2008년 전주에서 온라인 쇼핑몰로 시작해 전국적인 고객을 확보하고 자체 패션 브랜드를 키웠으며 수도권 대형 쇼핑몰까지 오프라인 매장을 확장했다. 전주에서 현대적인 대중 패션 브랜드가 성장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전주의 브랜드 생산 능력이 한옥과 한복 같은 전통문화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술과 음식에서도 같은 능력이 나타난다. 이강주는 지역의 전통주를 현대적인 상품과 브랜드로 발전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가맥은 조금 다르다. 슈퍼에서 간단한 안주와 맥주를 즐기던 전주의 생활습관 자체가 하나의 도시문화가 됐다. 특정 기업의 상표가 아니라 전주의 생활문화 자체가 브랜드가 된 경우다. 전주한지도 특정 기업의 상품을 넘어 지역의 소재와 생산기술, 공예문화를 결합한 집단 브랜드로 볼 수 있다.


장소를 브랜드로 만드는 실험은 한옥마을 이후에도 이어졌다. 남부시장 청년몰은 오래된 전통시장 2층의 유휴공간에 청년 상인과 창작자가 들어와 음식점과 카페, 바카라방, 공방과 작은 상점을 만든 사례다. 시장을 철거하고 새 시설로 교체한 것이 아니라 기존 상인문화 위에 새로운 세대의 문화를 얹었다. 노포와 청년몰, 야시장이 공존하는 모습은 전주가 잘하는 오래된 층을 지우지 않고 새로운 층을 더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현대문화에서는 전주국제영화제가 대표적이다. 2000년 시작한 영화제는 독립·예술영화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축해왔다. 중요한 것은 매년 열리는 행사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의거리와 영화 관련 공간이 원도심에 자리 잡고 영화의 기획과 제작을 지원하는 활동이 축적되면서 ‘전주’라는 도시 이름 자체가 독립영화와 영화문화의 브랜드가 됐다. 전통문화가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공간화됐다면 영화는 원도심에 현대문화의 새로운 층을 더했다.


전주가 만들어낸 것은 상품과 문화, 장소 브랜드만이 아니다. 도시의 생활방식 자체를 브랜드로 만드는 실험도 있었다. 김승수 시장 시기의 정원도시와 도서관도시가 대표적이다. 천만그루 정원도시는 공원 몇 곳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거리와 공터, 학교와 산업단지까지 도시 전체의 녹색환경을 바꾸려 했다. 나무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이 걷고 머물며 생활하기 좋은 도시환경을 만들려 했다는 점이다.


도서관도시는 이 철학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2019년 개관한 전주시립도서관 꽃심은 기존의 공부방 같은 도서관에서 벗어나 시민이 바카라을 읽고 만나고 머무는 공간을 지향했고, 전국 최초의 트윈세대 전용공간 ‘우주로1216’을 만들었다. 한옥마을도서관, 연화정도서관, 학산숲속시집도서관, 첫마중길 여행자도서관, 서학예술마을도서관처럼 동네와 장소의 성격에 맞는 도서관을 도시 곳곳에 배치했고, 이를 다시 ‘도서관 여행’이라는 관광 콘텐츠로 연결했다.


김승수의 『도시의 마음』을 읽으면 이러한 사업의 배후에 있던 도시철학을 엿볼 수 있다. 도서관과 정원, 팔복예술공장과 선미촌 같은 공간을 통해 도시를 단순한 시설의 집합이 아니라 사람의 삶과 관계를 담는 장소로 바라본다. 도서관은 바카라을 보관하는 시설이 아니라 시민을 환대하고 동네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공간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원도시와 도서관도시는 전주가 상품뿐 아니라 새로운 도시생활 모델까지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 실험이었다.


이 사례들을 한데 놓으면 전주의 특징이 선명해진다. 전주한옥마을은 동네를, 한복남은 문화경험을, 리슬은 현대한복을, PNB풍년제과는 먹거리를, 육육걸즈는 현대 패션을, 이강주는 전통주를 브랜드화했다. 가맥은 생활문화를, 전주한지는 소재와 공예를, 남부시장 청년몰은 장소를, 전주국제영화제는 현대 영상문화를 도시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정원도시와 도서관도시는 이 작업을 도시생활 자체로 확장하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이것들이 서로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옥과 한복, 한식과 한지는 한옥마을에, 영화와 골목문화는 원도심에, 예술가의 생활과 작업은 서학동에, 시장문화는 남부시장에, 정원과 도서관은 시민의 일상에 자리 잡고 있다. 팔복에서는 오래된 산업공간마저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전환되고 있다. 전주에서는 특정 관광지에만 K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여러 공간과 생활에 K-스타일이 스며 있다.


이것이 전주가 가진 중요한 산업적 자산이다. K-도시의 목표는 K-문화를 많이 보유하거나 전시하는 데 있지 않다. 도시 전체에 K-스타일이 축적되고 그 속에서 새로운 K-브랜드가 계속 만들어지는 데 있다. 한옥마을과 원도심은 새로운 브랜드를 시험하는 테스트마켓이 되고, 창업가와 크리에이터는 전주의 음식·패션·건축·공예·숙박·술·영화·콘텐츠를 새로운 상품과 경험으로 바꾼다. 도서관과 정원 같은 공공공간에서는 새로운 한국적 도시생활을 실험할 수 있다.


전주한옥마을이 보여준 것도 결국 이것이다. 전주는 한옥을 브랜드화한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생활방식이 모인 동네를 브랜드화했다. 이제 그 경험을 한옥마을 밖으로 확장해 새로운 K-브랜드와 산업이 계속 탄생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다음 과제다.


K-도시는 K-문화를 전시하는 도시가 아니라 도시 전체에 K-스타일이 스며 있고, 그 생활문화에서 새로운 K-브랜드를 계속 만들어내는 도시다.



서서학동


한옥마을에서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전주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도시가 교토다. 이해할 만하다. 오랜 역사도시이면서 전통 건축과 공예, 음식과 상업을 현대 산업으로 발전시킨 교토는 전주가 참고할 만한 도시다. 전주 역시 한옥과 한식, 한복, 한지, 공예와 국악이라는 풍부한 전통문화 자산을 가지고 있다. 전주한옥마을은 이러한 자산을 한곳에서 경험하고 소비하게 만들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한옥마을의 전형을 만들었다.


그러나 전주가 교토를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교토가 오랜 역사도시의 전통산업과 도시경관을 축적해온 도시라면, 전주에는 다른 가능성이 있다. 한옥마을에서 시작된 문화적 에너지가 주변 원도심으로 계속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한옥마을이었다. 다음에는 남부시장과 영화의거리가 살아났고, 객리단길과 웨리단길이 등장했다. 남쪽으로는 서학동, 북쪽으로는 동문거리와 노송동·현무길로 새로운 콘텐츠가 퍼지고 있다. 한옥마을을 방문하지 않아도 원도심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도시가 만들어지고 있다.


따라서 한옥마을의 다음 단계도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하는 데만 있지 않다.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전통문화는 쉽게 관광상품으로 얕아질 수 있다. 전주시민이 한식을 먹고, 한복과 공예를 소비하며, 한옥을 생활공간으로 선택해야 생산자와 기업도 성장한다. 관광객은 그렇게 형성된 생활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찾아온다. 전통문화의 관광화에서 생활화·산업화로 가야 한다.


한옥마을이라는 이름에 비해 실제 한옥 생활공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과제다. 기존 한옥을 보존하는 데 머물지 않고 주변 원도심으로 한옥 건축과 생활문화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한옥을 설계하는 건축가와 디자이너, 시공기업과 투자자가 전주에 모이고 새로운 한옥 주거와 숙박, 상업공간이 만들어진다면 한옥 자체가 하나의 산업이 된다. 보존의 한옥마을에서 관광의 한옥마을로 발전했다면, 이제 생활과 산업의 한옥마을 3.0으로 갈 차례다.


이런 점에서 특히 서학동이 흥미롭다. 예술가들이 작업실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고 일한다. 공방과 작은 상점, 카페와 문화공간이 그 사이를 채운다. 한옥마을의 관광경제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직주락이 가능한 크리에이터 타운이 형성되고 있다. 한옥마을의 다음 단계가 반드시 더 큰 한옥마을일 필요는 없다. 한옥마을에서 시작된 문화적 생산이 주변 동네의 일상과 경제로 확산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전주 원도심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적 조건도 갖고 있다. 큰 강이나 산, 철도, 거대한 대로가 동네들을 심하게 분절하지 않는다. 한옥마을에서 남부시장–웨리단길–객리단길–영화의거리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서학동, 북쪽으로는 동문거리–현무길–노송동로 뻗어갈 수 있다. 서로 다른 성격의 동네가 걸어서 연결되는 넓은 원도심 자체가 전주의 자산이다.


이것이 내가 전주에서 보는 ‘마용성 모델’이다. 마포·용산·성동의 힘은 하나의 성공한 거리를 반복해서 복제한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동네에 서로 다른 상권과 콘텐츠가 생기고, 창작자와 기업이 들어오면서 도시의 넓은 지역을 채운 데 있다. 전주 역시 한옥마을을 원도심 전체에 복제할 필요가 없다. 한옥마을은 전통문화, 남부시장과 객리단길은 상업, 영화의거리는 영화, 서학동은 예술과 공예처럼 각 동네가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교토에서 배울 것은 전통문화의 생활화와 산업화다. 그러나 전주가 ‘한국의 교토’가 될 필요는 없다. 전주는 한옥마을에서 시작된 K-스타일을 서로 다른 동네로 확산시키고, 각 동네에서 새로운 생활문화와 브랜드가 나오는 자기만의 모델을 만들 수 있다. 한옥마을에서 원도심으로, 관광도시에서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이것이 전주가 교토와 다른 방식으로 ‘가장 한국적인 도시’를 만들어가는 길이다.


전주의 세 가지 도전

하지만 전주의 과거 중심성이 미래까지 자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주의 도전은 세 개의 공간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전라권, 전주생활권, 전주시 내부다.


첫 번째 도전은 전라권의 질서 변화다. 2026년 7월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출범했다. 정부는 이를 단순한 행정통합을 넘어 ‘5극3특’의 핵심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교육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교육부는 2026년 9월 부산대·전남대·충남대를 ‘국가대표 거점국립대학’으로 선정했다. 여기에 광주·전남의 AI·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이 결합되면 전라권에서 전북과 전주의 상대적 위상이 약화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전주의 답이 광주를 따라가는 것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전주다움을 더 강하게 밀고 가야 한다. 광주는 오랫동안 예향과 문화도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최근 첨단산업 육성에 정바카라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문화적 자산과 새로운 산업전략을 어떻게 함께 발전시킬지는 광주의 과제다.


전주는 같은 산업전략을 복제하기보다 이미 비교우위를 가진 영역을 더 분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K-스타일이다. 한옥을 건축산업으로, 한식을 외식·식품산업으로, 한복과 공예를 패션·디자인산업으로 확장한다. 전통주와 한지, 영화와 음악, 로컬 브랜드까지 연결하면 전통문화의 복원이 아니라 현대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생산하는 산업이 된다. 무엇보다 전주는 이미 한복남과 리슬, 이강주와 가맥 같은 브랜드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 전주의 전략은 모방이 아니라 차별화와 상생이다.


두 번째 도전은 완주를 비롯한 주변 지역과의 관계다. 전주·완주 통합 논의가 반복되는 것 자체가 두 지역의 실제 생활이 행정경계를 넘어 연결돼 있다는 증거다. 혁신도시는 아예 전주와 완주에 걸쳐 형성돼 있다. 교육·의료·사법·쇼핑·금융에서도 전주의 영향력은 시 경계를 넘어간다. 하지만 생활권이 하나라는 사실이 반드시 행정구역도 하나여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역의 질서』에서 중요한 것은 행정구역보다 사람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생활권이다.


과거 전주는 주변의 인재와 소비를 빨아들이며 성장했다. 앞으로는 그 중심성을 주변에 돌려줄 필요가 있다. 완주의 농업과 자연, 산업을 전주의 문화·관광·대학·의료·금융·상업 플랫폼과 연결할 수 있다. 완주의 생산자와 크리에이터가 전주의 시장을 이용하고, 전주를 찾은 관광객이 완주의 농촌과 자연으로 이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전주의 힘은 완주를 행정적으로 흡수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주변 지역이 자발적으로 전주의 문화력과 시장을 이용하고, 그 혜택이 다시 주변으로 확산되는 데서 나온다. 이것이 인구감소 시대에 필요한 상생형 중심성이다.


세 번째 도전은 전주시 내부다. 전주는 중심이 없는 도시가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중심들이 충분히 연결되지 않았다. 크게 보면 원도심, 효자동–혁신도시, 덕진호수라는 세 축이 있다. 원도심은 역사와 K-문화의 중심이다.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남부시장, 서학동, 전라감영, 영화의거리, 객리단길, 동문거리와 노송동까지 이어진다. 전주의 역사·문화·관광·로컬상권이 가장 높은 밀도로 집적된 곳이다.


효자동–혁신도시는 현대 전주의 행정·업무·주거 중심이다. 도청 이전으로 성장한 효자동과 전주·완주혁신도시를 하나의 축으로 보면 전주 서남부에 새로운 생활권이 형성됐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혁신도시는 전주와 완주의 경계에 걸쳐 있어 전주시 내부 통합과 전주생활권 통합이 만나는 공간이다.


남은 것은 덕진호수축이다. 전북대학교라는 교육 앵커와 덕진공원이라는 공공공간이 있고, 종합경기장 일대에는 MICE와 상업·숙박 기능이 들어온다. 이들을 각각의 시설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덕진공원–MICE단지–전북대를 하나의 거점으로 만든 뒤 원도심과 연결해야 한다. 방법은 거점화 → 연결 → 빈틈 채우기다. 직접 걸어보면서 동선이 끊기는 곳과 머물 이유가 없는 곳을 찾아 카페와 음식점, 로컬숍, 문화공간, 창작공간 같은 새로운 앵커를 넣는다. 덕진호수축은 한옥마을을 복제해서도 안 된다. 원도심이 역사와 전통문화라면 이곳은 대학·청년·MICE·여가·현대문화의 거점이어야 한다.


그러면 세 축의 역할은 명확해진다. 원도심은 역사·K-문화·관광, 효자동–혁신도시는 행정·업무·주거, 덕진호수는 대학·MICE·여가·상업이다. 서로 다른 세 중심 사이를 보행과 대중교통, 상권과 콘텐츠로 채우는 것이 전주시 내부 통합의 핵심이다.


전주다움으로 간다

전주는 새로운 정체성을 발명할 필요가 없다. 이미 강력한 정체성을 가진 도시다. 문제는 전주다움을 얼마나 넓고 깊게 만들 것인가다.


그 출발점은 결국 전주가 이미 보여준 브랜드 생산 능력이다. 한복남과 리슬은 전통을 새로운 경험과 패션으로 바꿨고, 가맥과 이강주는 지역의 음식문화를 브랜드로 만들었다. 남부시장 청년몰은 오래된 시장 위에 새로운 세대의 문화를 얹었다. 천만그루 정원도시는 도시환경 자체를 전주다운 생활문화로 만들려 했다. 다음 한복남과 리슬, 다음 가맥과 청년몰이 계속 전주에서 나와야 한다. 한옥마을과 원도심은 그들의 테스트마켓이 되고, 전주의 골목은 실험실이 되며, 시민의 일상은 가장 중요한 소비시장이 되어야 한다.


전주의 과제는 이미 도시 곳곳에 형성된 K-스타일을 더 넓고 깊게 만드는 것이다. 한옥마을에서 시작된 문화적 에너지가 원도심과 서학동, 팔복으로 확산되고, 새로운 브랜드와 산업으로 이어져야 한다. 동시에 그 문화력이 완주와 전북의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가야 한다.


전통을 보존하는 데 머물지 않고 오늘의 생활로 바꾸고, 다시 내일의 산업으로 만드는 도시. 전주다움을 지키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한국적 라이프스타일을 생산하는 도시. 그것이 ‘K-도시 전주’가 가야 할 길이다.























화, 금 연재
이전 16화지리산의 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