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의 교차로

익산의 교차로


익산역에 서면 이 도시의 성격이 한눈에 들어온다. 호남선과 전라선, 장항선이 이곳에서 만나고 갈라진다. 서울에서 KTX를 타면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하고, 여기서 다시 전주와 여수, 군산과 서천 방향으로 철도가 뻗어나간다. 하루 1만 8천~2만 명이 이용하는 익산역은 호남의 철도 관문이다. 익산은 오래전부터 길이 만나는 도시였다.


『지역의 질서』에서 익산은 특별한 도시다. 1982년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생활권 체계에서 당시 이리는 독립적인 생활권 중심도시가 아니었다. 이 온라인카지노북에서는 당시 생활권 중심이었던 정주(정읍)을 대신해 익산을 선택했다. 40여 년 동안 전북의 공간질서가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군산에서 익산을 거쳐 완주·전주 북부로 이어지는 지역에는 전북의 주요 산업기반이 연속적으로 자리한다. 군산의 항만과 제조업, 익산의 철도와 제조·식품산업, 완주·전주 북부의 자동차·수소·탄소산업이 서로 연결된다.


현재 이 지역은 전북 북부 생활권이자 산업권이다. 군산은 일제강점기부터 항만과 행정·상업 기능을 갖춘 큰 도시였고 오늘날에도 독자적인 산업도시다. 전주는 전북의 행정·상업 중심이다. 그 사이에서 익산은 철도를 기반으로 성장했고 산업과 교육, 의료 기능을 축적했다. 전북혁신도시 역시 행정구역상 전주·완주에 있지만 전국 철도망에서 접근할 때 익산역이 중요한 관문이다.


익산의 강점은 모든 기능을 독점하는 데 있지 않다. 전북 북부의 산업과 도시들을 연결하는 교차로라는 데 있다.


왕도에서 철도도시로

익산의 역사는 철도보다 훨씬 오래됐다. 금마와 왕궁 일대에는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을 비롯한 백제의 유산이 집중돼 있다. 백제 무왕대의 왕궁과 사찰이 남긴 흔적은 익산이 한때 백제 왕도의 중요한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금마·왕궁은 익산 시내와는 다른 역사문화 중심을 형성한다.


조선시대의 익산 역시 지금처럼 하나의 중심으로 구성된 지역이 아니었다. 오늘날 익산시에는 과거 익산·함열·용안·여산 등 서로 다른 군현의 공간이 포함돼 있다. 금마를 중심으로 한 익산, 북부의 함열, 동북부의 여산과 용안 등 각자의 역사와 생활권을 가진 지역들이 근대 이후 하나의 도시가 됐다. 오늘날 익산이 여러 중심을 가진 것은 현대의 도시개발만으로 만들어진 현상이 아니다. 그 뿌리는 오래된 다핵적 공간구조에 있다.



이 질서를 완전히 바꾼 것이 철도였다. 1912년 호남선과 군산선이 연결되면서 이리는 농산물과 사람이 모이는 철도 결절점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성장은 일제의 식민지 농업경제와 분리해서 볼 수 없다.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과 농산물을 모아 군산항으로 보내는 철도망에서 이리는 중요한 중간 거점이었다. 춘포에 일본인 농장과 근대적인 농촌 시가지가 형성된 것도 이런 과정의 일부였다.


1917년 이리지형도

흥미로운 것은 철도가 만든 이리 원도심의 구조다. 최초의 이리역에서 나오면 영정통, 지금의 중앙로1길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역이 원도심에 더 가까웠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금처럼 역과 원도심 사이를 가르는 넓은 익산대로가 없었다. 영정통이 역에서 이어지는 남북 메인스트리트였다면, 신정통인 지금의 익산대로16길에는 금융기관과 행정기관이 자리 잡았다. 철도와 상업, 금융과 행정이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집적된 전형적인 근대 철도도시였다.


이리역은 이후 두 차례 자리를 옮겼다. 첫 번째 이전은 1929년경으로 추정된다. 전라선 광궤 개축을 전후해 신역사가 지금의 익산대로16길, 구 신정통 앞으로 옮겨오면서 도시의 중심도 함께 이동했다. 역전 기능에 금융·행정 기능이 더해지면서 신정통이 새로운 중심가로 부상했다. 최초의 역–영정통 구조가 1차 이전을 거치면서 역–신정통 구조로 바뀐 것이다.


두 번째 변화는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 이후 찾아왔다. 이듬해 신역사가 현재 위치에 준공됐고, 재건과 도시 근대화 과정에서 익산대로와 중앙로가 확장됐다. 이때부터 넓은 중앙로가 새로운 중심가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번 변화는 이전과 달랐다. 새로 확장된 대로가 역과 기존 원도심 사이에 놓이면서 역에서 내려 기존 상업가로로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가던 관계가 약해졌다.


익산 원도심의 역사는 그래서 중앙로1길에서 익산대로16길로, 다시 중앙로로 이동한 중심가의 역사이기도 하다. 역이 움직일 때마다 도시의 중심도 움직였다. 철도가 이리라는 근대도시를 만들었다는 말은 이런 의미다.


철도가 만든 산업도시

철도가 이리에 가져온 것은 사람과 상업만이 아니었다. 해방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철도는 산업을 집적시키는 기반이 됐다. 원료를 들여오고 제품을 내보내기 좋은 교통 조건을 바탕으로 제조업이 성장했고, 이리는 전북을 대표하는 산업도시 가운데 하나가 됐다.


익산의 오래된 산업 가운데 하나는 석재산업이다. 황등을 중심으로 석재 채굴과 가공이 발달했고, 석재는 익산을 대표하는 산업자원이 됐다. 여기에 귀금속과 보석가공산업이 성장하면서 익산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보석산업 도시가 됐다. 석재와 보석은 모두 원료를 가공해 부가가치를 만드는 산업이었다. 철도와 제조업이 결합한 익산의 산업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후 익산 산업의 무게중심은 식품으로도 확장됐다. 하림을 비롯한 식품기업이 성장했고 왕궁 일대에는 국가식품클러스터가 들어섰다. 밀과 농산물, 육가공과 식품제조에서 푸드테크와 그린바이오로 이어지는 새로운 산업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하림과 닭고기 문화, 보석가공, 밀과 로컬푸드는 오늘날 익산의 산업이면서 동시에 도시의 콘텐츠가 될 수 있는 자원이다.


이러한 산업기반은 앞에서 살펴본 전북 북부의 산업축 속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익산의 서쪽에는 군산항과 국가산업단지가 있고, 동남쪽에는 완주와 전주 북부의 산업지역이 이어진다. 익산은 그 한가운데에서 서로 다른 산업지역을 철도로 연결한다.


따라서 산업도시 익산의 중심성은 규모보다 연결에서 나온다. 전북 북부 산업권과 전국 철도망이 만나는 교차로라는 것이 익산의 차별적인 위치다.


여섯 개의 앵커

전북 북부 생활권의 중심도시라는 관점에서 보면 익산에는 상당히 다양한 중심 기능이 집적돼 있다.


첫째는 교통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익산역은 세 철도 노선이 만나는 결절점이며 KTX와 SRT를 통해 수도권과 연결된다. 여기서 전주·전남 동부와 군산·충남 서해안으로 다시 철도망이 갈라진다. 익산의 가장 강력한 중심 기능이다.


둘째는 산업이다. 석재와 보석가공에서 제조업과 식품산업으로 이어진 산업의 축적은 익산이 단순한 소비도시가 아니라 생산기반을 가진 중견도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셋째는 교육이다. 중심에는 원광대학교가 있다. 원광대는 의학·치의학·한의학·약학을 비롯한 전문교육 기능을 갖춘 종합대학으로 익산뿐 아니라 주변 지역에서 학생을 끌어들인다. 대학이 자리한 신동에는 대학가와 상업·주거 기능이 형성돼 독자적인 도시 중심으로 성장했다. 남성고와 이리고 같은 전통 있는 학교도 익산의 교육 기능을 뒷받침해 왔다.


넷째는 의료다. 원광대학교병원은 대학과 결합해 익산의 의료 중심성을 강화한다. 중견도시의 중심성에서 고차 의료서비스는 특히 중요하다. 일상적인 소비는 주변 도시에서도 가능하지만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는 일정 규모 이상의 중심도시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문화다. 자원 자체는 풍부하다. 미륵사지와 왕궁리의 백제문화, 원불교의 정신문화, 이리와 춘포의 근대 철도유산, 석재와 보석의 산업문화가 서로 다른 시대의 익산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자원들이 하나의 도시문화로 집적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백제문화는 금마·왕궁에, 대학문화는 신동에, 근대유산은 원도심과 춘포에 흩어져 있다.


여섯째는 상업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익산의 중심가는 철도역의 이동과 함께 중앙로1길에서 익산대로16길을 거쳐 중앙로로 이동했다. 이후 도시가 확장되면서 신동과 영등·어양·부송 등에도 새로운 상권이 형성됐다. 상업 기능이 쇠퇴했다기보다 여러 곳으로 분산된 것이다.


여섯 앵커를 종합하면 익산의 특징이 드러난다. 교통·산업·교육·의료는 상당히 강하고 역사문화 자원도 풍부하다. 그러나 이 기능들을 한 곳에 모아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적 중심부가 약하다. 익산의 다음 과제는 새로운 기능을 하나 더 유치하는 것보다 이미 가진 기능을 연결하고 집적하는 데 있다.


다핵도시의 도전

익산은 중심이 없는 도시가 아니다. 중심이 많은 도시다. 역사적 중심과 현대의 도시 확장이 겹치면서 익산에는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여러 중심이 형성됐다. 문제는 중심의 수가 아니라 이들이 충분히 연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 문제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익산역과 중앙동이다.


익산역은 하루 1만 8천~2만 명이 이용하는 전북의 철도 관문이지만 상당수 이용객은 역에서 환승하거나 다른 목적지로 이동한다. 바로 앞 중앙동은 오히려 상업 기능이 약해졌다. 청년몰, 문화의 거리, 도시재생 등 여러 사업이 추진됐지만 역의 막대한 유동인구를 원도심의 경제활동으로 충분히 전환하지 못했다.


외부적으로도 과제는 같다. 앞에서 살펴본 전북 북부 생활권에서 익산의 경쟁력은 군산이나 전주의 기능을 복제하는 데 있지 않다. 항만·산업의 군산, 행정·상업·문화의 전주와 경쟁하기보다 철도와 산업, 교육과 의료를 기반으로 이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이때 익산이 강화해야 할 기능이 문화적 중심성이다. 문화시설 몇 개를 더 짓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들이 찾아와 걷고 머물며 먹고 쇼핑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중심부의 힘, 즉 문화력을 키우는 것이다. 교통·산업·교육·의료에서 이미 확보한 중심성에 문화적 중심성이 더해질 때 익산은 전북 북부 생활권의 중심도시로서 훨씬 완성도 높은 기능을 갖출 수 있다.


문화의 거리 (구 영정통)


원도심에 문화력을 이식하라

익산의 미래도 다시 철도에서 시작할 수 있다. 과거 철도가 이리를 만들고 산업을 불러들였다면 이제는 철도가 만들어내는 사람의 흐름을 도시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전국과 전북 산업권을 연결하는 외부의 연결성을 원도심의 내부 연결성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출발점은 익산역이다. 역세권에 대규모 복합시설 하나를 짓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역 안에서 쇼핑과 식사까지 모두 해결하게 만들면 오히려 원도심으로 나올 이유가 줄어들 수도 있다. 역세권 개발과 원도심의 가로를 동시에 연결해야 한다. 익산역과 네 개의 메인스트리트를 하나의 체계로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첫 번째는 익산대로다. 현재 6차선의 넓은 도로는 도시의 대표 가로인 동시에 역과 원도심 사이의 보행 장벽이기도 하다. 차로를 줄이고 보행공간을 확대해 역에서 내려 자연스럽게 원도심으로 들어가게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일부 지하화와 지상의 보행공원 조성도 검토할 수 있다.


익산대로16길


두 번째는 익산대로16길, 옛 신정통이다. 이곳은 1차 역 이전 이후 이리의 중심가가 됐고 금융기관이 집중됐던 거리다.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을 보존하고 옛 은행 건물 등을 카페·베이커리·편집숍·문화공간으로 활용하면 익산의 근대 금융·철도유산을 경험하는 거리가 될 수 있다. 이미 옛 은행 건물을 활용한 금종제과 같은 사례가 가능성을 보여준다.


세 번째는 중앙로1길, 옛 영정통이다. 최초 이리역에서 도시로 들어오는 메인스트리트였던 이 길을 다시 문화가로로 만드는 것이다. 차량 통행을 최소화하고 보행환경을 개선하면서 독립서점과 공방, 편집숍, 갤러리, 코워킹 공간과 로컬 크리에이터를 집적할 수 있다. 비마이크, 기찻길옆골목바카라방, 무슨이리야, 게스트지구인 같은 로컬 콘텐츠도 이미 존재한다.


네 번째는 중앙로다. 1978년 이후 넓어진 동서축을 자동차 중심의 도로에서 다시 도시의 메인스트리트로 바꾼다. 차로를 줄이고 보행공간을 늘리면서 익산에서 성장한 음식과 브랜드를 모을 수 있다. 역할머니와 다사랑치킨처럼 익산에서 시작한 음식문화의 흔적도 이 거리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이 네 길을 각각 개발해서는 안 된다. 익산대로–익산대로16길–중앙로1길–중앙로를 하나의 보행·상업·문화 네트워크로 연결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는 새로운 원도심을 만드는 사업이 아니라, 철도역의 이동과 도시 확장 과정에서 약해진 중심가들의 연결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서로 다른 시대의 중심가를 하나의 도시공간으로 다시 묶는 것이다.


하드웨어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에 문화력을 이식해야 한다. 미륵사지와 왕궁리의 백제, 원불교, 철도와 근대건축, 석재와 보석, 하림과 식품산업 등 도시 전체에 흩어진 익산의 자원을 원도심으로 가져와 동시대의 콘텐츠로 번역해야 한다. 독립서점과 공방, 식당과 카페, 디자인 스튜디오와 콘텐츠 기업, 메이커스페이스와 문화시설이 그 자원을 상품과 경험으로 바꾸게 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익산은 이미 교통·산업·교육·의료의 중심 기능과 풍부한 역사문화 자원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중심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흩어진 기능을 연결하고 그 한가운데에 강한 문화적 중심부를 만드는 일이다.


그 출발점은 100여 년 전 이리가 도시가 된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역에서 내리면 곧바로 도시가 시작되는 구조다. 익산역의 사람을 원도심으로 끌어들이고, 원도심에 집적된 문화가 다시 도시 전체로 퍼져나가게 한다면 철도의 중심성은 상업과 문화, 산업과 인재의 중심성까지 강화할 수 있다.


익산역이 도시를 살리려면, 원도심이 목적지가 되어야 한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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