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어는 ‘근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조선시대에도 목포진이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아는 목포라는 도시는 1897년 개항 이후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항구가 열리고 상인이 들어오고 철도가 놓이면서 작은 포구는 불과 수십 년 만에 전국적인 도시로 성장했다. 근대는 목포의 과거를 설명하는 한 시대가 아니라 목포라는 도시 자체를 만든 힘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다음 질문이 필요하다. 근대 이후의 목포는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
근대 당시 목포의 변화가 얼마나 빨랐는지는 외국인의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19세기 말 목포에 들어온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목포를 새롭게 번성하는 신흥도시로 묘사했다. 땅값과 물가가 빠르게 오르고 있었고, 내륙의 광주에서는 얻기 어려웠던 근대적인 생활의 편리함도 누릴 수 있었다. 광주가 전남의 행정 중심지였다면 목포는 새로운 문물과 상품이 들어오는 상업도시였다.
개항 이후 영사관과 우편·금융·행정기관이 들어왔고 도로와 항만이 정비됐다. 호남선이 목포까지 연결되면서 항구의 배후지는 호남 내륙 전체로 확대됐다. 1930년대 목포는 인구 6만 명 규모의 전국적인 항구도시로 성장했다. 오랜 역사도시가 근대화된 것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 자체가 도시를 만든 곳이 목포였다.
목포를 키운 것은 항구 자체가 아니었다. 항구를 통해 움직인 상품과 사람이었다. 호남평야의 쌀과 목화, 서남해의 소금이 목포에 모였다. 이른바 ‘삼백’이다. 목포항은 이 물산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식민지 수탈의 통로였지만, 동시에 호남 내륙과 서남해 도서를 전국과 해외시장에 연결하는 상업 거점이기도 했다.
그래서 목포의 역사를 수탈의 역사만으로 읽어서는 이 도시의 경제적 성격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항구에는 상품이 모였고 상품을 따라 상인이 모였다. 시장과 창고, 금융과 운송업이 성장했다. 목포의 근대는 식민지의 역사인 동시에 상업도시가 형성된 역사였다.
그 전통은 해방 이후 기업으로 이어졌다. 행남자기, 조선내화, 보해양조 등 전국적인 기업들이 목포에서 성장했다. 도자기와 내화벽돌, 술처럼 업종도 다양했다. 산업기반이 강하지 않은 지방도시에서 여러 향토기업이 등장했다는 것은 항구를 통해 축적된 상업과 생산의 문화가 기업가 정신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목포의 향토기업들은 하나둘 생산기반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거나 쇠퇴했다. 한때 목포 경제를 상징하던 기업들이 빠져나가면서 목포는 중요한 생산 기반을 잃었다. 근대 목포를 성장시켰던 상업과 생산의 결합도 점차 약해졌다.
목포의 힘은 원래 시 경계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개항 이후 목포는 호남 내륙의 농산물과 서남해의 수산물이 모이는 항구였고, 해방 이후에도 무안·신안·영암을 비롯해 해남·진도·완도까지 연결하는 서남권의 상업·교통·교육·문화 중심지 역할을 했다. 섬 주민에게 목포항은 육지로 나가는 관문이었고, 주변 군 주민에게 목포는 병원과 학교, 시장과 문화생활을 이용하기 위해 찾아오는 도시였다.
그 중심성은 지금도 상당 부분 남아 있다. KTX 목포역과 목포항이 육상과 해상교통의 거점 역할을 하고 의료와 상업·문화 기능도 주변 지역 주민을 끌어들인다.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이 목포뿐 아니라 무안·신안·영암·함평까지 관할하는 것도 목포가 행정구역을 넘어 지역 중심지로 기능해온 역사를 보여준다.
목포의 생활권은 두 층으로 볼 수 있다. 목포–무안–신안–영암이 일상적인 통근·통학과 행정·산업·상업 기능을 공유하는 핵심 생활권이라면, 해남·진도·완도까지 포함한 서남권은 목포의 교통·의료·문화 기능을 이용하는 더 넓은 연계권이다. 목포의 도시적 위상은 인구 20만 명 안팎의 행정시만 보아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흥미롭게도 목포의 주요 앵커 중 상당수는 이미 시 경계 밖에 있다. 국립목포대학교의 주 캠퍼스는 무안군 청계면에 있고 전남도청은 무안 남악에 있다. 영암 삼호에는 대불국가산업단지와 조선산업이 자리 잡고 있으며, 신안의 섬들은 목포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목포라는 중심도시를 둘러싸고 행정·교육·산업·관광 기능이 여러 지역으로 분산된 구조다.
문제는 생활권이 커지는 동안 목포의 구심력은 오히려 약해졌다는 점이다. 외부적으로는 무안의 산업화와 인구 증가에 이어 2005년 전남도청이 남악으로 이전하면서 무안의 독자적인 중심성이 커졌다. 신안도 연륙·연도교 확충으로 목포항을 반드시 거쳐야 했던 구조에서 점차 벗어났고, 섬·정원·문화예술을 활용해 자체적인 관광 목적지로 성장했다. 영암에는 대불산단과 조선산업이 성장했고 해남에서도 솔라시도를 비롯한 새로운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 변화가 반드시 목포 생활권 전체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목포대와 전남도청, 대불산단, 무안국제공항, 신안의 섬 관광, 해남의 새로운 개발까지 포함하면 오히려 목포를 둘러싼 지역의 경제적 자원은 과거보다 다양해졌다. 문제는 주변 지역의 성장이 아니라 각각 성장한 거점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연결하는 구심점이 약해졌다는 데 있다.
도시 내부에서도 중심의 분산이 일어났다. 목포의 전통적인 중심은 목포역과 유달산, 만호동·유달동, 항구가 압축되어 있는 원도심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하당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주거와 상업 기능이 동쪽으로 이동했고, 2000년대에는 전남도청 이전과 남악신도시 개발로 중심이 다시 목포시 경계를 넘어 동쪽으로 이동했다.
하당을 목포의 1기 신도시, 남악을 2기 신도시라고 할 수 있다. 하당은 목포 안에서 원도심의 인구와 상업 기능을 끌어갔고, 남악은 목포와 무안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행정·주거·상업 중심을 만들었다. 원도심–하당–남악으로 이어진 동진은 목포 도시권의 외연을 확대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중심을 공동화했다. 목포의 문제는 도시가 성장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중심을 만들 때마다 이전의 중심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성장했다는 데 있다.
그런데 목포를 걸어보면 다른 쇠퇴한 지방도시와는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다. 중심 기능은 빠져나갔지만 도시의 물리적 구조가 상당 부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유달산 아래에서 목포역과 목원동, 유달동·만호동을 지나 항구까지 이어지는 공간에는 근대도시의 흔적이 압축되어 있다.
옛 일본영사관 건물인 목포근대역사관 1관이 대표적이다. 주변에는 목포진과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등 개항 이후 형성된 건축물과 거리 구조가 남아 있다. 목포는 근대건축 몇 채가 점처럼 남은 도시가 아니라 근대도시의 거리와 골목, 필지와 건물이 면으로 남아 있는 도시다.
여기서 시선을 일제강점기에만 묶을 필요도 없다. 해방 이후 지어진 이른바 불란서주택과 스페인식 기와집, 소금창고와 상가, 오래된 음식점과 시장도 목포가 지나온 20세기를 보여주는 건축자산이다. 목포 원도심 전체를 하나의 ‘20세기 도시박물관’으로 읽는다면 적산가옥 중심의 근대문화유산 관광에서 훨씬 풍부한 도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항구와 도시의 관계도 다시 만들어야 한다. 목포는 바다 때문에 만들어진 도시지만 원도심을 걸으면서 바다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기는 쉽지 않다. 항만과 매립지가 도시와 수변을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목포역과 근대역사문화공간, 만호동·유달동에서 항구와 수변까지 이어지는 보행축을 복원한다면 근대도시와 항구를 다시 하나의 도시 경험으로 연결할 수 있다. 근대 항구도시의 재생에서 수변의 회복이 중요한 이유다.
목포의 가능성은 근대건축에만 있지 않다. 원도심에서는 이미 목포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해산물과 상업, 공동체 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콘텐츠를 외부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목포가 원래 가지고 있던 자원을 새로운 비즈니스와 라이프스타일로 바꾸는 움직임이다.
건맥1897협동조합은 만호동 건해산물상가거리의 건어물을 ‘건맥’이라는 새로운 문화로 바꿨다. 주민들이 함께 공간을 운영하면서 건어물과 맥주를 결합한 펍과 숙박을 만들었다. 피시테리안은 민어를 비롯한 목포의 수산물을 파인다이닝과 가공식품의 언어로 재해석했고, 조아홍은 홍어를 새로운 상품으로 만들려 했다. 모두 목포의 해산물 자원을 현대적인 로컬 콘텐츠와 브랜드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만인계마을기업의 만인살롱은 조금 다른 의미에서 주목할 만하다. 만인계는 목포에 전해 내려온 계의 공동체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주민들이 출자하고 참여하는 마을기업으로 다시 만든 사례다. 만인살롱은 식당이면서 주민과 여행자, 로컬 크리에이터가 만나는 사랑방 역할을 한다. 목포의 근대가 상인과 주민의 협력으로 만들어졌다면 만인계는 그 공동체적 전통이 오늘날에도 새로운 형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괜찮아마을을 이끄는 홍동우 대표의 마을호텔 실험도 흥미롭다. 새로운 대형 호텔을 짓는 대신 원도심에 흩어진 게스트하우스와 숙박공간을 연결하고 식당·카페·상점·공유공간까지 묶어 마을 전체를 하나의 숙박 경험으로 만드는 구상이다. 골목이 호텔의 복도가 되고 동네 식당이 레스토랑이 되는 방식이다. 근대도시의 기존 건축물과 상권을 철거하지 않고 네트워크로 연결해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목포다운 로컬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러한 변화는 2019년 괜찮아마을을 방문했을 때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괜찮아마을은 목포를 ‘창업 휴양지’로 해석했다. 도시에서 지친 청년들이 목포에서 머물며 관계를 만들고 자신의 일을 찾도록 했다. 낡은 원도심을 결핍의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삶과 일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라본 것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40~50대 귀로컬인이다. 2023년 목포 도시재생대학에서 만난 수강생 상당수가 다른 지역에서 목포로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은 원도심에 사는 이유를 걸어서 1차, 2차, 3차를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이 목포로 이주한 뒤 연고가 없던 친구 다섯 명을 다시 목포로 불러들였다고 했다.
이것이 원도심의 경쟁력이다. 새 아파트나 대규모 문화시설만으로 만들기 어려운 밀도 높은 생활환경과 관계망이 이미 존재한다. 건맥1897과 피시테리안, 만인계와 괜찮아마을은 서로 다른 사업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근대도시에 축적된 음식과 건축, 상업과 공동체를 오늘의 생산 자원으로 다시 사용한다는 점이다.
목포는 원도심 도시재생도 일찍 시작했다. 만호동과 유달동의 1897 개항문화거리, 서산동 보리마당 등 원도심 곳곳에서 사업이 진행됐다. 공간을 정비하고 오래된 건물을 활용하면서 원도심에 다시 관심을 불러오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도시재생의 목표를 방문객을 늘리고 낡은 공간을 고치는 데 두어서는 부족하다. 질문은 원도심을 어떻게 재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원도심에서 어떤 경제를 만들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목포에는 그 답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이미 많다. 민어와 홍어, 건어물 같은 수산물, 중깐을 비롯한 음식문화, 근대건축과 항구, 섬과 다도해, 오래된 상업과 기업의 전통이 있다. 건맥1897과 피시테리안 같은 사례는 이러한 자원이 현대적인 상품과 브랜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몇몇 크리에이터의 개인적 노력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브랜드가 계속 나올 수 있는 생산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목포 원도심에는 로컬스쿨이 필요하다. 교육만 하는 학교가 아니라 식가공·디자인·DIY·건축을 지원하는 메이커스페이스를 갖춘 도심형 생산지원 거점이다. 로컬푸드 크리에이터가 새로운 제품을 시험하고 디자이너가 패키지를 만들며, 오래된 건물을 고쳐 쓰고 창업자가 브랜드와 사업모델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제조기업에 테크노파크가 있고 농업인에게 농업기술센터가 있듯이 로컬 기업과 크리에이터에게도 기술과 디자
인을 지원하는 기반이 필요하다.
건축환경도 함께 바꿔야 한다. 오래된 건물 한두 채를 문화공간으로 고치는 방식에서 벗어나 목원동·유달동·만호동의 거리와 골목 전체를 보행자와 창작자에게 친화적인 건축마을로 만들어야 한다. 근대건축과 해방 이후 건축물을 보존하면서 빈 점포와 창고를 작업실·상점·주거·숙박공간으로 활용하고, 목포역에서 원도심을 지나 항구와 수변까지 걷는 길을 연결해야 한다.
목포의 원도심 거점경제는 관광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로컬푸드와 디자인, 숙박과 콘텐츠, 건축과 문화가 결합해 작은 기업들이 계속 등장하는 창조지구가 되어야 한다. 과거 쌀과 목화와 소금이 모여 상인과 기업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지역의 문화와 음식, 건축과 사람이 모여 새로운 로컬 브랜드를 만드는 생산거점이 되어야 한다.
여기까지가 목포의 근대도시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라면, 더 큰 질문이 남는다. 목포의 미래를 계속 ‘근대도시’라는 정체성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근대는 목포의 가장 강력한 유산이지만 미래의 정체성까지 근대에 가둘 필요는 없다. 오히려 목포가 근대도시였던 이유, 즉 외부의 사람과 상품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산업과 생활양식을 만들어낸 개방성과 생산력을 오늘의 조건에서 다시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포의 미래는 목포시 경계 안에서만 찾을 수 없다. 목포대는 무안에 있고 전남도청은 남악에 있으며 대불산단은 영암에 있다. 신안에는 섬과 해양관광 자원이 있고, 무안국제공항과 해남의 새로운 개발까지 포함하면 목포를 둘러싼 서남권에는 오히려 새로운 성장거점이 늘어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을 다시 목포에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다. 흩어진 거점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연결하는 중심도시가 되는 것이다. 목포와 무안·신안 사이의 대중교통 연계, 교육 분야의 공동협력, 목포와 신안의 상생사업, 목포·해남·진도·완도·신안의 해양관광 협력처럼 행정구역을 넘어 생활권 단위로 움직이려는 시도도 이미 시작되고 있다.
목포 역시 중심도시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과거처럼 주변 지역의 물산과 인구를 빨아들이는 중심지가 아니라 무안의 행정·산업, 신안의 섬·관광, 영암의 조선산업, 해남의 새로운 개발을 연결하고 여기에 목포의 교통·의료·상업·문화 기능을 제공하는 플랫폼형 중심도시가 되어야 한다. 주변 지역이 성장할수록 목포의 구심력이 약해지는 구조를 주변 지역이 성장할수록 목포생활권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의 도시적 중심에는 다시 원도심이 있어야 한다. 목포역에서 근대역사문화공간과 목원동·유달동·만호동을 지나 항구와 수변으로 이어지는 지역을 서남권의 창조지구로 만든다면, 목포는 생활권의 문화와 창업, 로컬 브랜드가 모이는 장소가 될 수 있다. 건맥1897과 피시테리안, 만인계와 괜찮아마을의 실험은 그 가능성이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목포는 근대가 만든 도시다. 그러나 미래까지 근대도시로만 남을 수는 없다. 한 세기 전 목포의 경쟁력은 근대건축 그 자체가 아니라 항구와 철도, 상인과 기업을 통해 서남권의 사람과 물산을 연결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데 있었다. 오늘의 목포가 계승해야 할 것은 근대의 외형보다 그 역동성이다. 근대도시의 골격을 새로운 생산과 창조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목포와 무안·신안·영암, 더 넓게는 해남·진도·완도의 자원을 연결하는 새로운 생활권의 구심점을 만드는 것, 그것이 ‘목포의 근대 이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