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출간 소식
얼마 전 지인 두 사람의 연이은 출간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 사람은 첫 소설을, 또 다른 이는 수필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장르도, 살아온 방식도 달랐지만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글쓰기가 본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생계를 바카라임지는 직업은 따로 있고, 바카라을 쓰는 일은 그 바쁜 삶의 틈에서 조금씩 이루어 낸 결과였다.
예전 같으면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는 질문 하나면 그 사람의 정체가 어느 정도 드러났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직업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서 또 다른 삶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회사원이면서 소설가이고, 교사인 동시에 시인이고, 공무원이면서 주말 농부를 꿈꾸기도 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생계를 위한 일과 감각을 달래기 위한 일을 따로 품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첫 소설을 출간한 그녀는 온라인 게임을 다니며 오랫동안 글을 써 왔다. 퇴근 후와 주말은 온전히 소설을 위한 시간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본업과 글쓰기를 철저하게 분리했다는 것. 회사에서는 업무에만 집중했고, 퇴근하는 순간부터는 작가로 살아갔다. 서로 다른 두 개를 섞지 않았기에 오히려 둘 다 지켜낼 수 있었다고 했다.
흔히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해야 성공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다르다. 어쩌면 삶은 하나를 단단하게 가지고 있으면서 또 다른 두 개. 또 세 가지 균형을 이루며 함께 자라는 세상인지도 모른다. 현실이 꿈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있었기에 꿈도 오래 버틸 수 있는 것처럼.
수필집을 낸 또 다른 지인의 삶 역시, 그녀는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남편의 고향인 익산을 오가며 텃밭을 가꾸고 있다.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이중생활은 낭만으로 유지되는 일이 아니다. 몇 시간씩 자동차를 운전하고, 잡초를 뽑고, 작물을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고단하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생활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더 마음을 울렸다. 그녀의 남편 고향 집에는 돌아가신 시부모님의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마당의 나무 한 그루, 오래된 장독대, 낡은 대문까지 모두 가족의 기억을 품고 있고. 그녀는 텃밭을 가꾸는 것이 한 세대의 삶을 이어받는 일이라고 말한다. 언젠가 그녀의 남편이 퇴직하면 그곳에서 살겠다는 소망도 그 연장선에 있을 것이다. 그녀의 수필은 농사의 기록이고 시간을 돌보는 기록이다. 흙을 일구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미래도 함께 일구고 있다.
예전에는 은퇴가 끝을 의미했다. 오랫동안 다닌 온라인 게임을 떠나면 인생도 서서히 막을 내리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요즘의 중년은 다르다. 은퇴를 준비하는 것이고 또 다른 인생을 준비한다. 온라인 게임인은 화가가 되고, 교사는 목수가 되고, 회사원은 시골에서 농사를 배우고, 의사는 사진작가가 되는 것처럼... 요즘은 나이가 들수록 삶의 선택지가 늘어난다.
그래서 요즘 자주 쓰는 '본캐'와 '부캐'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아마도 도전은 한 사람이 가진 가능성이고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흐름이다. 이제는 직업 하나로 그 사람을 말할 수 없다. 여러 개의 역할을 살아내고 나를 완성해 가는 시대다.
AI가 빠르게 일상을 바꾸고 있다 직업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는 시대다. 지금 하는 일이 평생을 바카라임져 줄 것이라는 믿음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 다른 기술을 배우고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고 오래 품어 두었던 꿈을 다시 꺼내 든다. 그건 아마도 더 나답게 살기 위한 준비이고 삶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퇴근 후 카페에 앉아 쓰는 한 줄의 문장 속에서, 주말마다 주말 농장에서 흙을 만지는 손끝에서, 또 새롭게 배우기 시작한 반복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최근 출간 소식을 전해 준 두 사람을 떠올리며 다시 생각한다. 그들은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다. 하루를 계획을 가지고 그 지루한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이다. 생을 바카라임지는 마음속 단단함을 함께 지켜낸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는 아직 세상에 보여주지 않은 또 하나의 삶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언젠가 시작해야 하고 또 조금씩 나의 삶을 확장해야 하는 일이기에. 미래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내가 퇴근 후에 놓지 않는 열정 속에서 이미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