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를 걷다 보면
이른 저녁을 먹는 날에는 동네 한 바퀴를 걷는다. 하루의 분주함이 조금씩 가라앉고, 거리에는 저마다의 삶이 저녁빛에 녹아드는 시간이다. 익숙한 골목과 상가를 지나며 계절의 변화와 동네의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걷다 보면 세상은 거대한 사건보다 작은 변화들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다.
동네 상가에는 변화가 빠르다. 어제까지 불을 밝히던 가게가 어느 날 문을 닫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혀 다른 간판이 걸린다. 횟집이 있던 자리에 고깃집이 들어서고, 찜닭집이 사라진 자리에 또 다른 음식점이 생긴다. 돈가스집이 문을 열고 또 초밥집이 새로 생긴다. 가게는 바뀌고 간판은 달라지지만, 그 자리를 채우는 사람들의 마음은 대단한 희망이 들어 있을 것이다.
동네를 걷다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바로 옆 고깃집이 얼마 전 폐업했는데, 그 자리에 또 다른 고깃집이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 이미 실패한 자리에 같은 업종으로 뛰어드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모습은 대단한 용기다. 인간은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곳에는 자신의 돈과 시간과 인생을 걸지 않는다. 그 자리에 새로 간판을 단 사람은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한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이번에는 다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인간을 '희망하는 존재'라고 말했던 것처럼. 미래를 향해 나를 던질 수 있는 힘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자영업자는 그 말을 절실하게 살아내는 사람들 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자리에서도 다시 문을 열고 새벽부터 재료를 준비하고 손님이 오지 않는 날에도 내일을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네의 가게들은 저마다의 희망이 걸린 곳이다. 특히 음식점들은 순환이 빠르다. 수많은 체인점들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처음에는 화려한 간판과 개업 축하 화환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만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날 갑자기 임대 문의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를 쓸쓸함이 밀려온다. 그 안에는 누군가의 꿈과 밤잠을 설친 걱정과 가족의 기대가 함께 접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래 살아남는 가게도 있다. 우리 동네에는 간판조차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빵집이 있다. 화려한 광고도 없고 빵 종류도 많지 않다. 문을 여는 시간도 길지 않다. 배달 주문이 되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런데 그 빵집은 몇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큰 나무가 태풍에 먼저 쓰러지더라도 작은 풀은 바람에 몸을 낮추며 살아남는 것처럼.
어쩌면 삶에는 많이 버는 것보다 적게 잃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다. 화려하게 확장하는 것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를 유지하는 것이 지혜일 수도 있는 것처럼. 사실 그런 소소함이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는 힘인지도 모른다. 그 작은 빵집은 거창한 꿈을 꿈꾸지 않았을지 모른다. 대신 그날 팔 수 있는 만큼 빵을 굽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일하고, 꾸준히 이어가는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 느린 지속성이 긴 시간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동네를 걷다 보면 자영업의 세상은 마치 인간 삶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어떤 이는 크게 도전하고, 어떤 이는 또 근근이 버틴다. 어떤 이는 화려하게 시작하고 어떤 이는 조용히 오래간다. 누구는 실패하고 누구는 살아남는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내일도 계속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품고 산다.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내일을 준비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동네를 걷다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내 돈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쓰인다. 그곳에서 흘렸을 땀과 기대를 알 것 같기 때문이다. 동시에 새로 문을 연 가게를 보면 묘한 동정심도 생긴다. 세상이 어렵다고 말하는 시대에 누군가는 돈을 투자하고 실패의 가능성을 감수하고 또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용기다.
어쩌면 인간은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걷고 실패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도전하고, 또 끝이 보이지 않아도 희망을 품는다. 그래서 동네의 간판들은 단순한 업의 흔적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희생차럼 보인다. 오늘도 동네에 사라진 간판과 새로 생긴 간판 사이를 지나며 생각한다. 세상은 참 쉽지 않다. 그러나 쉽지 않기에 인간은 더 도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을 닫은 가게에도 새로 문을 연 가게에도, 그리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작은 빵집에도 저마다의 긴 서사가 있다.
~~~~~-----==~--ㅁ
간판은 바뀌어도 그 안에 담긴 꿈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세상은 그런 분들의 용기 때문에 오늘도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