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할 수 없어서

사랑한다는 말

by현월안



가끔 인간극장을 본다. 그 진솔한 이야기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어느 날 인간극장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할아버지가 '여보 사랑해요.'라고 말한다. 그의 아내 할머니는 평생 처음 들어본다며 얼굴에 주름을 다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다. 그렇다. 누군가에겐 사랑한다는 말은 천금같이 귀한 말이다. 금기 같아서 그래서 허투루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시간이 또 세월이 사랑을 값싸고 흔한 감정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인간극장 속 할머니는 오랜 세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던 어색한 표정이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그래 맞아, 어떤 이에게 사랑은 흔한 감정이 아니고,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가슴속에만 묻어두었던 귀한 언어였다는 것이다.



사랑은 원래 그렇게 값비싼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쉽게 말할 수 없어서, 그래서 더 깊이 간직되었다. 사랑을 표현하는 일은 어쩌면 가장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일이기에, 그것을 말 대신 삶으로 견디었을 것이다. 함께 늙어가고 묵묵히 곁을 지키고, 또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미는 표현으로. 말 수가 적었던 시대의 사랑은 그래서 더 무거웠고, 더 오래 감춰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사랑은 이제 일상적인 인사처럼 가볍게 오간다. 메시지 끝에 덧붙여지는 '사랑해'라는 말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그 말의 진심과 또 그 기분을 담고 있다. 사랑은 넘쳐나고 그만큼 또 쉽게 소비되고 잊힌다.



사랑은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기가 쉽지 않다. 침묵이 상대에게 닿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아무리 깊은 정이 있어도, 그것이 표현되지 않는다면 상대는 알 수 없다. 사랑은 느끼는 것이고 또, 전해져야 완성되는 감정이다.



문제는 그 말에 담긴 의미일 것이다. 사랑은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한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그 값은 물질이기도 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과 또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과 그리고 때로는 자존심을 내려놓는 용기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랑'이라 부르던 것은 무엇이었을까를 떠올려본다. 상대를 향한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나의 만족을 위한 감정이었는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기심은 아니었는지. 가장 가까운 이들, 가족과 아이들을 떠올릴 때 그 물음은 더 선명해진다. 그런데 인간은 가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장 인색한 말을 건네며 살아간다. 사랑한다는 말은 아끼고, 오히려 서운함과 불만은 쉽게 쏟아낸다.



어쩌면 사랑은 얼마나 많이 말하는 것보다 '어떻게 말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그 안에 담긴 온기는 다르다. 마음이 담긴 한마디는 형식적인 열 마디보다 오래 남는다. 사랑은 말의 수가 아니라, 말의 온도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색하고 또 친근하고 신비로운 감정이다.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완전히 정의할 수 없고,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의미로 나타난다. 그리고 끊임없이 돌보고 가꾸어야 하는 것의 이름이다. 말과 행동과 시간과 마음이 함께 어우러질 때 사랑은 성숙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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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더 천천히 더 유연하게 그리고 더 따뜻하게. 자주 말해야 한다. 그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기다려온 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사랑을 이해하게 되는지도.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