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으로 이사 가는 여인
철학서 토론 모임을 하는 크루 중에 40대 후반의 예쁜 여인이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토론에 참여하던 그녀가 쉬는 시간 틈을 이용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두 달 뒤에 이사를 가게 됐습니다. 미리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서울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남편의 고향 지리산 자락으로 가서 살기로 했단다. 그녀는 자폐아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진한 삶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곤 했다. 주말마다 지리산 근처를 오가면서 그녀 부부는 시골생활을 계획하고 꿈꾸었다고. 그러던 차에 맘에 드는 곳을 찾았고, 자그마한 공동체를 이룰 좋은 이웃을 만나게 되면서 계획은 급진전했다고 했다.
삶은 준비된 자에게만 길을 내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어떤 길은 준비가 끝났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길이 열리기 시작한다. 그날 그녀의 목소리는 그런 결심을 품고 있었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그러나 단단하게 마음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울림이었다.
도시는 늘 분주하다. 시간은 쫓기듯 흐르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그 최선이 때로는 나를 갉아먹는 방식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그녀 역시 그 흐름 속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온라인 게임과 가정, 그리고 특별한 돌봄이 필요한 아이를 키우는 삶은 하루하루가 선택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서울을 떠나기로 했다. 그것도 충분한 준비나 확실한 계획이 아니라, '지금 떠나야 할 것 같아서'라는 직관을 따라 내린 결정. 철학서 토론 모임 우리 크루 사람들은 모두가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리고 질문공세가 시작됐다.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할 작정인가? 생활비는 어떻게 해결하나? 농사에 자신이 있느냐?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에 가서 살면 심심하지 않겠느냐? 등등.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했다. "모든 준비가 된 다음에 가면 너무 늦을 것 같아서요. 큰 욕심부리지 않으면 할 일은 좀 있지 않을까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까 사실, 인생 그거 뭐 별거 있나 싶기도 하고.
흔히 삶은 계획을 세우고 변수들을 줄이고 또 가능한 한 안전한 경로를 선택하려 한다. 그러나 삶은 예측하고 준비하려 하지만, 또 살아 있는 결을 무디게 만들기도 한다. 그녀는 그 질서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대신, 살아보겠다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지리산 자락이라는 곳은 속도를 늦추는 선택이고, 관계의 밀도를 바꾸는 결정이다. 도시에서는 수많은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지만 시골에서는 몇 안 되는 이웃과 깊게 연결된다. 경쟁보다 함께 그리고 또 효율보다 느림이 중요해지는 삶일 것이다.
자폐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 선택은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교육은 어떤 삶을 보고 자라느냐가 중요하니까 말이다. 자연 속에서의 시간과 느린 변화의 리듬,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배우는 배려의 감각. 그것은 교과서로는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녀는 어쩌면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주기 위해, 그래서 또 더 좁은 공간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선택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대단히 용감하기도 하고 또 단순하게 삶을 정리하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은 삶을 복잡하게 만들고 또 그 복잡함 속에서 방향을 잃는다. 그래서 더 그녀의 그 결정에 잠시 멈춰 서게 만든다.
그날 그녀가 말 한 뒤, 그곳에는 한참 정적이 흘렀다. 그것은 저마다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방향이 내가 원하는 것인지. 그녀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결심이 또 다른 누군가의 질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삶은 내가 선택한 자리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도시든 시골이든, 그 자체가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원해서 머무는 자리라면, 그곳은 이미 절반쯤은 행복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녀는 이제 그 나머지 절반을, 자신의 시간과 손길로 채워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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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행복을 기원한다. 지리산의 풍경 속에서 또 낯선 계절의 변화 속에서도, 조용히 그리고 단단하게 뿌리내릴 것이다. 그녀의 삶이 더 넓어질 것이라고. 그리고 그 넓어진 삶의 자리마다 그녀만의 방식으로 빚어낸 행복이 자리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