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에서 밥으로, 다시 식판이 사라질 때까지
병동에서는 한 숟가락도 당연하지 않다. 5병동의 A 환자는 죽 한 숟가락을 입까지 가져가는 데 한참이 걸린다. 숟가락을 든 손이 계속 떨리고, 입에 닿기도 전에 죽이 흘러내린다. 국은 숟가락으로 뜨기 어려워 그릇째 들어 마신다. 곁에서 보면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평소에는 한 동작처럼 지나가는 일이 그 앞에서는 여러 동작으로 나뉘어 보인다. 손가락으로 숟가락을 붙들고, 팔을 들어 입까지 가져가고, 입을 벌려 받아들인 뒤 삼킨다. 내 몸의 부서들은 평생 회의 한 번 하지 않고도 꽤 성실하게 협업해 온 셈이다.
3병동의 Y 환자를 보면서는 먹는다는 일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큰 변화가 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Y 환자는 한동안 얼굴에 붕대를 감고 생활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병동을 오가는 모습을 몇 번 보았지만 말을 나눈 적은 없었다. 어느 날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가다가 병동 입구에서 가족들과 면회하는 모습을 우연히 마주쳤다. 그날은 붕대가 잠시 풀려 있었다. 드러난 상처에 놀라 나도 모르게 시선을 거두었다.
그런데 가족들의 반응은 달랐다. 곁에 있던 두 사람은 울다가 웃다가 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많이 좋아졌네.”
나는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 내 눈에는 상처가 먼저 보였는데 가족은 좋아졌다고 했다. 그들이 이전에 어떤 모습을 보았는지 나는 몰랐다. 얼마나 오래 곁을 지켰는지도 알지 못했다. 내가 처음 마주한 얼굴을 그들은 전날의 얼굴, 그보다 더 전의 얼굴과 함께 보고 있었을 것이다.
얼마 뒤 Y 환자의 식이를 죽식에서 일반식으로 바꾼다는 연락이 왔다. 주방에서는 이름표를 확인하고 죽 대신 밥을 준비했다. 식이가 바뀌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그날도 처음에는 준비할 밥과 죽의 수량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병동에서 들려온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Y 환자가 밥을 먹다가 울었다고 했다. 눈물을 조금 흘린 정도가 아니라 대성통곡을 했다고 했다. 다시 밥을 먹게 되어서 그렇게 울었다는 것이었다.
밥알을 씹고 삼킬 수 있게 된 일이었다.
밥을 먹으며 크게 울었다는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매일 수십 그릇씩 담던 밥 가운데 한 그릇이 누군가에게는 그런 것이었다.
그 뒤로 돌아온 Y 환자의 식판을 보면 눈길이 갔다. 그의 식판은 늘 어수선했다. 밥알과 국물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고 반찬이 가장자리까지 흩어져 있기도 했다. 전에는 음식을 많이 흘렸다고만 생각했을 흔적이었다. 밥을 먹으며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다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치열하게 먹었구나.
식판만으로 식사하는 모습을 다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입으로 음식을 받아들이고 삼키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는 그분의 사정을 알고 나니, 흘린 음식부터 치우던 손이 잠시 느려졌다. 한 숟가락을 먹는 동안 어떤 수고가 있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의료진이 계속 상처를 살피고 처치를 이어 갔고, 그분은 한동안 일반식을 먹을 만큼 상태가 좋아졌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병동 입구에서 들었던 가족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도 많이 좋아졌네.”
이제야 그 말에 조금 가까이 간 듯했다.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어도 회복은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놀라 시선을 거둔 얼굴에서 가족들이 반가운 변화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밥 한 그릇 앞에서 흘렸다는 눈물을 통해 뒤늦게 이해했다.
죽을 밥으로 바꾸는 데는 주방에서 그릇 하나를 달리 놓으면 되었다. 그분이 그 밥 앞에 앉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을 지나왔는지는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달 뒤 Y 환자의 식이가 경관유동식으로 바뀌었다. 더는 입으로 먹는 식사를 준비하지 않게 되었다. 그분의 식판을 놓지 않았고, 이름표를 찾아 꺼낼 일도 없어졌다.
주방에서는 변화가 조용히 지나갔다. 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을 덜 준비하면 되었다. 정해진 수량에 맞춰 식판을 놓으면 작업은 평소처럼 이어졌다. 그런데 나는 그분의 식판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꾸 떠올렸다.
어수선한 식판을 받아 들며 ‘치열하게 먹었구나’라고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때는 다음 끼니에도 비슷한 식판이 돌아올 줄 알았다. 다시 밥을 먹게 된 기쁨이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뒤로 3병동 요양보호사를 마주치면 가끔 묻는다.
“Y 환자 잘 계세요?”
그분이 나를 기억하는지는 모른다. 몇 번 스쳐 보았을 뿐 제대로 인사를 나눈 사이도 아니다. 내가 자신의 식판을 준비했다는 사실조차 모르실 수 있다.
그래도 안부가 궁금하다. 밥을 먹으며 울었다는 이야기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상처를 보고 놀랐던 나와 달리 좋아졌다며 웃던 가족들의 얼굴도 함께 떠오른다. 식판이 돌아오지 않는 지금도 그 이야기와 표정은 남아 있다.
내게는 작은 바람이 하나 생겼다. 언젠가 Y 환자가 다시 입으로 식사할 수 있게 되어 그분의 이름표를 식판 위에 올려놓는 날이 왔으면 한다. 그때 내가 지은 밥과 끓인 국을 보내 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
잘 먹었다는 말을 듣지 못해도 괜찮다. 식판이 깨끗하게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
그저 다시 한 번, 그분의 밥 한 그릇을 준비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