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게 내려온 배식차가 가르쳐 준 것
“우리 일이 병원에서 제일 힘듭니다.”
요양보호사가 웃으며 말한다. 환자의 기저귀를 갈고 몸을 씻기며 식사를 돕는 일이 하루 종일 이어진다는 것이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간호사가 더 힘들죠”라고 받아친다. 환자의 작은 변화까지 살펴야 하고 밤낮이 뒤바뀌는 3교대도 견뎌야 한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나도 가만있을 수 없어 “조리실도 만만치 않습니다”라고 한마디 보탠다.
병원에는 직급표는 있어도 고생 순위표는 없다. 그런데도 가끔 우리는 자기 일이 가장 높은 칸에 올라 있다고 생각한다.
조리실의 고단함이라면 나도 제법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뜨거운 솥 앞에서 몇 시간을 보내는 일, 정해진 시각까지 여러 종류의 식이를 틀리지 않게 맞추는 긴장을 안다. 배식이 끝났다고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돌아온 식기를 씻고 작업대를 정리해야 다음 끼니를 준비할 수 있다.
한 요양보호사는 늘 가장 늦게 식당으로 내려왔다. 환자들의 식사가 끝나면 빈 식판을 실은 배식차도 내려와야 했는데, 그가 늦으면 조리실의 다음 작업도 따라서 밀렸다. 너무 늦는 날에는 내가 직접 병동에 올라가 배식차를 끌고 내려왔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몇 번 반복되자 불만이 생겼다. 조금만 서둘러 주면 될 텐데 왜 늘 저렇게 늦을까. 기다리는 동안 마음속에서 이유를 만들어 냈다. 일이 굼뜬가 보다. 원래 느긋한 사람인가 보다. 다른 사람의 시간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상상력은 글을 쓸 때보다 남을 판단할 때 더 부지런한 모양이다. 확인한 것은 배식차가 늦었다는 사실뿐인데, 나는 그 사람의 성실함까지 제법 자세히 설명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어느 날도 그는 가장 늦게 내려와 식사를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왜 늘 이렇게 늦게 식사하세요?”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식사가 끝나고 나면 환자들이 배설을 많이 하는데, 자신이 맡은 병동에는 기저귀를 차는 중환자가 많다고 했다. 한 사람씩 몸을 돌려 눕히고 기저귀를 갈고, 몸을 닦고 침상을 정리하다 보면 내려오는 시간이 늦어진다는 것이었다.
말을 마친 그는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밥맛도 없어요.”
그 한마디 앞에서 내가 만들어 놓았던 이유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나는 그가 식당에 늦게 내려오는 모습만 보았다. 그전에 병실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환자의 몸을 돌려 눕히고 뒤처리를 마친 뒤 식탁 앞에 앉는 일이 어떤 마음일지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조리실에서 배식차를 기다렸다. 그는 그 시간에 스스로 몸을 돌볼 수 없는 환자 곁에 있었다. 내가 세고 있던 지연 시간 안에서 그 사람의 일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조리실의 불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배식차가 늦으면 세척이 밀렸고, 다음 작업도 촉박해졌다. 그 사정까지 틀린 것은 아니었다. 내가 잘못한 것은 늦어진 이유를 모르면서도 게으름이나 무관심 때문이라고 결론 내린 일이었다.
일정이 밀린다는 말과 사람이 불성실하다는 말은 달랐다. 나는 그 둘을 너무 쉽게 이어 붙였다.
그날 이후 한 끼가 끝나는 시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주방에서는 음식을 보내고 빈 식판이 돌아오면 식사가 끝났다고 여긴다. 병동에서는 식사를 돕고 난 뒤에도 환자의 몸을 돌보는 일이 이어진다. 내 작업의 다음 순서만 바라볼 때는 그 시간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 일을 끝내기 위해 배식차가 필요했다. 그에게는 식당으로 내려오기 전에 마쳐야 할 일이 있었다. 어느 한쪽의 사정만으로 다른 쪽의 하루를 설명할 수 없었다.
누가 가장 힘든지 묻던 대화도 떠올랐다. 나는 조리실의 더위와 분주함을 자세히 말할 수 있었다. 그만큼 자세히 요양보호사의 하루를 말할 수는 없었다. 간호사의 밤 근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잘 아는 고단함이 있다는 사실과 고단함의 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그 뒤에도 배식차가 늦는 날은 있다.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급해지고 짜증이 날 때도 있다. 사정을 한 번 들었다고 조리실의 시간이 넉넉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늦는 사람을 탓하려는 순간이면 숟가락을 내려놓던 손이 떠오른다.
“밥맛도 없어요.”
그 말이 지연 시간을 모두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늦어지는 일이 반복되면 서로 사정을 확인하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사람의 태도를 판정하는 데서 시작할 일은 아니었다.
내가 저 사람의 하루를 살아 본 적이 있는가.
없다. 그날도 내가 알게 된 것은 그의 하루 가운데 잠깐의 사정뿐이었다
조리실에서 기다리는 내 시간이 길게 느껴질 때면 그 사실부터 떠올리려 한다. 배식차가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 그 위에서 무슨 일이 이어지고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는 것.